찬송이야기

죄짐을 지고서 곤하거든

Johnangel 2015. 10. 12. 23:35

메릴랜드의 마운튼레이크 파크에서 열린 캠프 집회에서, 목사는 초대교회 사도들의 열정을 가지고 주일 아침 예배 설교를 하였다.

그의 구령의 열정은 성령의 열기를 불러 많은 사람들이 제단 앞으로 나아와 무릎을 꿇고 울면서 구원의 요청을 하였다.

한 지성적인 여인이 울면서 회개를 하였지만 어찌 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모리스 부인(Mrs. Morris)이 그 여인을 품에 안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걱정과 근심을 주님께 맡기세요"

그러자 찬양 인도자인 길모어 박사(Dr. H. L. Gilmour)가"지금 당신 마음에 예수를 영접하십시오"

그러자 이번에는 설교자 베이커(L. H. Baker) 목사가 덧붙였다.

"지금 마음 문을 여십시오」. 마지막으로 모리스 부인이「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예배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온 모리스 부인은 이 말들이 머리 속에서 뱅뱅 돌았다.

그는 생각을 가다듬고 시상과 악상을 정리하여 작사 · 작곡을 동시에 해 나갔다.

 

죄짐을 지고서 곤하거든 네 마음에 주 영접하며

새 사람 되기를 원하거든 네 구주를 영접하라   

의심을 다 버리고 구주를 영접하라                

맘 문 다 열어놓고 네 구주를 영접하라   

        

집회가 끝나기 전에 작사 · 작곡이 완성되어 이를 급히 인쇄하여 함께 불렀다.

길모어 박사는 곧 판권을 등록하고, 이 찬송은 커크패트릭과 길모어가 공동으로 편집하여 홀맥출판사에서 출판한《오순절교회 찬송가》'Pentecostal Praises, 1898' 제72장에 처음 실렸다.

 


작사 · 작곡자 모리스 부인의 처녀 적 이름은 렐리아 네일러(Lelia Naylor)다. 그의 아버지는 딸이 아주 어렸을 적에 세상을 떠났다. 렐리아 자매들은 어머니를 도와서 여성모자 가게에서 일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이웃집의 피아노를 빌려 피아노 레슨을 하여 가계를 도왔다. 렐리아는 10살 되었을 때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였다. 그는 그 때 일을 이렇게 고백하였다.

“나는 10살 되었을 때 교회에 가사 나의 마음을 하나님께 다 드렸다.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계속 기도하고 또 기도하였다. 어느 분이 내 머리에 손을 얹고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가, 울지 마라. 하나님께서는 너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주셨다.”

렐리아는 일찍부터 감리교회에 나가서 12살 때부터 교회의 오르간주자로 섬겼다. 19살에 찰스 모리스(Charles H. Morris)와 결혼하여 남편을 따라 감독파 감리교회로 교적을 옮겨 찬양대를 하며 주일학교 교사로 열심히 섬겼다. 렐리아는 바느질을 하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갑자기 새 노래가 흘러나왔다. 곡조도 새 곡조였다. 그는「마음속에서 울려나온 노래」라고 생각하고 피아노로 쳐보았다. 그리고 악보로 옮겼다. 그러나 감춰두었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났다. 그는 마침내 이것이「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달았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성령이 내 맘에 임하시도록 마음 문을 열었다. 작곡을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주께서 가사를 주시고 곡조도 주셨다.”

어는 날 렐리아는 이런 사실을 친정 엄마에게 털어놓았다. 엄마는 어디 들어보자, 며 그의 신작 찬송들을 경청하였다. 마침내 그의 엄마는 렐리아의 작곡 악보를 들고 찬양대 지휘자인 프랭크 데이비스(Frank Davis)에게 가서 보여주었다. 프랭크는 참으로 좋다, 며 찬양집회에 소개도 하고 출판하는 일도 도와주었다. 계속 작사 ․ 작곡을 한 렐리아는 자기가 작곡한 찬송을 가지고 마운튼레이크파크(Mountain Lake Park)에서 열리고 있는 캠프 집회로 갔다. 거기 찬양 인도자는 치과의사로서 자원 봉사하는 작곡가 헨리 길모어(Henry Gilmour)였다. 렐리아의 작곡을 본 길모어는 그의 노래들을 부흥집회에서 불렀을 뿐만 아니라 출판하는 일도 도와주었다. 이후 렐리아가 작곡하여 가지고 나타나면 그는 단상에 앉히고 함께 찬양을 하였다.

1913년 렐리아의 눈이 어두워갔다. 그런데도 아들이 마련해준 커다란 흑판에다 더듬더듬 작곡을 하였다. 마침내 완전 맹인이 되자 출가한 딸 패니(Fanny)를 정규적으로 불러다 구술로 악보를 그리게 하여 작곡을 계속하였다. 그의 말년의 작곡 중 10여 편이 패니의 도움을 받아 작곡된 것이다. 여기 이 찬송도 그 작품 중의 하나다. 렐리아의 딸 메리(Mary)와 사위는 중국 선교사로 갔다. 말년에 렐리아는 자기 찬송들이 미국은 물론 인도 ․ 중국 ․ 한국 그리고 아프리카에서까지 출판되어 불려진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딸과 사위가 중국에 선교사로 가 수고하고 있지만, 자기는 본국에 편히 있으면서 찬송으로 복음을 선포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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