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1294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로마서 5:12-21)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로마서 5:12-21)                                              우리는 지난 시간 롬5:1-4절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그 권리와 의무는, 첫째는 하나님의 화평을 누리는 삶, 둘째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삶, 셋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 넷째는 환난 가운데 소망을 완성하는 삶이라고 했습니다.어떻게 우리가 이런 삶을 살 수 있습니까?5절에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속에 차고 넘침으로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이란 어떤 사랑일까요?6절을 읽겠습니다.“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그렇습니다.우리가 기억..

설교원고 2024.11.29

즐거워하느니라 (로마서 5:9-11)

즐거워하느니라 (로마서 5:9-11)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다 죄인입니다.죄에 대한 양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하나도 차이가 없습니다.그런데 우리가 죄인이라는 말을 워낙 자주 쓰다 보니, 이 말이 더 이상 우리에게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왜냐하면, 그만큼 우리가 영적으로 무디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천 년 전 바울이 살던 시절에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바울은 10절에서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라는 말로 표현하심으로써“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죄인인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원수라는 단어는, 대단히 부정적인 단어입니다.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첫..

설교원고 2024.11.27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로마서 5:2)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로마서 5:2)                                                   하나님께서 주시는 화평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특권이자, 의무입니다.그리스도인만이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화평을 누릴 수 있고,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그 화평의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2절을 읽겠습니다.“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은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 거하므로 은혜의 삶을 살아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입니까?은혜를 뜻하는 헬라어 “카리스”는 성경에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첫째, “은혜로운”말입니다.눅4:21-22절을 보면 “주님께서 회당에서 말씀하시..

설교원고 2024.11.12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 (창세기 12:1-5)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 (창세기 12:1-5) 하나님의 말씀은 원래 입체적이며 살아있는 말씀입니다.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을 평면적이고 단선적으로만 보고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평면에만 갇혀 있는 것 아니라 유기적이고 통전적”인 것입니다.따라서 성경을 읽을 때 선결되어야 할 점은 “창조하신 구조를 따라 본질과 원리”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본질”과 “원리”는 무엇일까요?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구조”입니다. 믿음은 물론 순종입니다.그러나 단순하게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을 순종했기 때문에 복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본문의 의미와는 전혀 다릅니다.왜냐하면 “하나님의 마음”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

설교원고 2024.10.23

화평을 누리자 (로마서 4:23-25)

화평을 누리자 (로마서 4:23-25)                                             23절을 읽겠습니다.“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하나님께 삶을 의탁하는 믿음을 보인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인 약속, 곧 “에팡겔리아”를 이루어 주신 것은, 단순히 아브라함만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24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우리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 삶을 의탁하여 믿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에팡겔리아” 즉 “하나님의 약속 된 축복을 이루어 주시리라.”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알려 주기위해, 그 본보기로 아브라함..

설교원고 2024.10.21

바라고 믿었으니 (로마서 4:18-22)

바라고 믿었으니 (로마서 4:18-22)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신 아브라함은 우상숭배자였습니다.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부르신 다윗은 시골 베들레헴의 양치기에 불과했습니다.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로 삼으신 사람들은 갈릴리 바다 근체에 살던 가난하고 배운 것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이처럼 주님께서 쓰셨던 사람들이 결핍된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점은 부족한 우리에게 커다란 희망을 줍니다.따라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뭔가 부족하고 결핍된 처지에 놓여 있다면,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참다운 비전을 가질 수 있는 하나님께 감사할 조건이기 때문입니다.1. 비전은 야망이 아닙니다.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지라고 선포합니다.그런데 야..

설교원고 2024.10.01

그가 믿은 바 (로마서 4:10-17)

그가 믿은 바 (로마서 4:10-17)                                       바울의 질문은 10절에서 이렇게 시작됩니다.“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임한 은총을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그런데 아브라함의 믿음이 하나님께 언제 의로 여김 받았는지,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았을 때였는지 아니면 할례를 받지 않았을 때였는지, 바울이 묻고 있는 것입니다.당시 할례는 오늘날의 세례에 해당하는 것으로써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결단의 예식입니다.그러므로 질문을 바꿔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이미 결단한 때였는지, 아니면 그러한 결단이 없었던 때였는지‘ 묻고 있는 것입니다.그리고 바울이..

설교원고 2024.09.28

불가능을 넘어서려면 (마가복음 9:17-29)

불가능을 넘어서려면 (마가복음 9:17-29)                                          오늘 본문은 간질병에 들린 어린아이를 어떤 아버지가 데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찾아와 “치유”를 부탁하는 내용입니다.제자들은 이 아이의 병을 고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으나, 고치지 못하고 절망에 빠졌습니다.바로 그때 예수님이 산 위에 세 제자와 함께 올라가셨다가 내려오셨습니다.이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을 발견한 순간 예수님 앞에 엎드려서 도와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사실 간질병은 지금도 치유하기 힘든 병입니다.그런데 이 병을 예수께서 고치시는 과정에 있어서, 우리는 인간의 불가능의 한계들을 돌파할 수 있는 그 삶의 비밀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1. 예수님 앞에 문제를 가지고 나와야 합..

설교원고 2024.09.11

그런즉 이 복이 (로마서 4:9)

그런즉 이 복이 (로마서 4:9)                                              한국갤럽조사 연구소가 우리나라를 포함해 18개 나라의 2만4천명에게 “당신은 얼마나 행복하십니까?”라는 질문으로 행복도를 조사했습니다.그 결과, 대한민국이 18개 나라 가운데 꼴찌를 했습니다.행복도 10점 만점에 한국 사람들은 5.3점 밖에 안 되었습니다.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한국 사람의 마음 반쪽이 불행으로 차 있다.”는 것입니다.사실 60-70년대와는 비교할 수 없이 우리는 경제적으로 잘 살고 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보다 “행복하다.”는 사람은 적습니다.행복은커녕 오히려 더 많은 문제들로 인하여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행복은 절대적으로 내 옆에 있는 것들로부터 오지 않습니다...

설교원고 2024.09.10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로마서 3:27-31)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로마서 3:27-31)                                              27절에 보면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 없느니라 모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고 했습니다.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자랑할 것이 있느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그러면서 바울은 “있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구원받은 것이 우리가 의롭게 행동했기 때문이 아니라 “믿음의 법”에 의해 의롭다함을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러면 믿음의 법이 무엇입니까?28절을 읽겠습니다.“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사람을 의롭다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하나님께서 의롭..

설교원고 2024.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