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에게 행복을 주는 교회 (마태복음 5:13-16)
주님의 명령은 우리의 사명이요,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몸이신 예수 안에서 지체인 나를 통해 이루어지는 상태가 바로 우리의 비전입니다.
우리교회는 4대 비전선언문을 통해 ①평신도를 깨워 동력하는 하는 교회 ②선교명령을 순종하는 교회 ③천국일꾼을 양성하는 교회 ④지역사회에 복음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의 비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의 4대 비전을 두 가지로 요약한다면, 첫째는 “하나님의 영광”이요, 둘째는 “이웃의 행복”입니다.
따라서 그 비전성취를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전진 그리고 또 전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꿈은, 하나님 안에서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114주년을 맞이하는 우리교회가 가지고 있는 비전을 “어떻게 이루어야 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구체적인 전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우리의 자아정체감이 분명해야 합니다.
13-14절을 읽겠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교회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교회와 성도가 어떤 존재인가?”하는, 정체감이 분명해야합니다.
왜냐하면 자아정체감이 분명하지 못하면, 세상의 유혹과 도전에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사명을 분명히 확정하지 못하면, 절대능력의 복음의 능력을 세상에 나타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너희는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원래 소금과 빛의 자격과 역량이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게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의 비전을 시도하기도 전에 염려하고 걱정한다면, 그것은 주님과 말씀에 대한 믿음의 부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주님은 교회와 우리 성도들을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통해서 “소금된 존재, 빛된 존재”로 변화시켜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자존감이 있어야 합니다.
실패감이 없어야 합니다.
열등의식이 없어야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이나 부정적인 말이 없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 믿는 순간부터 “소금과 빛으로 부름 받고 임명받았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 우리교회와 성도가 가져야 할 자아정체감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 자아정체감이 교회를 교회답게 하고, 성도를 성도답게 만들 뿐만 아니라, 소금과 빛의 사명과 꿈을 이루어갈 수 있는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2. 우리의 존재는 반드시 사명을 동반합니다.
어떤 존재이든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이나 국가도, 사명적 존재에 대한 자각이 부국복민의 기초가 됩니다.
국회는, 국민의 행복을 위해 입법을 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행정부는, 전천후 봉사를 통하여 국민을 섬기는 사명이 있습니다.
사법부는, 사회정의와 법치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명은 반드시 실현되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명이 실천될 때, 존재는 비로소 그 존재가치를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이 실천될 수 있도록 우리교회는 성령의 바람을 불게 해야 합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면, 죄인이 주님 앞에 돌아와 의인이 됩니다.
성령이 우리의 마음을 만져 주시면, 생명이 살아납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면 역사는 일어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능력으로 절대능력의 복음의 바람을 불게 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인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은, 절대능력을 가진 복음바람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소금의 존재는 맛을 내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빛은 어두움을 비추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금이 맛을 내는 것과 빛이 비추어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교회가 교회의 본질에 충실하고, 성도가 성도의 본질에 충실한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리스도인 황금찬씨의 “촛불”이라는 시를 함께 읽겠습니다.
“촛불을 켜면 그 촛불 한 자리만한 어둠은 물러가고 그 어둠이 물러간 자리에는 광명이 찬다. 그 음성이 내 마음에 오면 내 마음의 어두움을 밝혀주는 것은 촛불이 아니다. 그것은 조용한 음성이다. 어둠이 물러간 자리에 광명이 오듯 그렇게 마음이 밝아지는 것이다. 어두운 세상에 내 마음을 밝혀주는 것은 오직 그의 음성뿐이다. 그의 음성으로 내 마음의 촛불을 켜고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든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침묵한다면, 누가 빛을 따라 올 수 있겠습니까?
빛된 교회는, 세상에 그 빛을 비추어져야합니다.
소금된 교회는, 세상에 그 맛을 내야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명은 어두워진 마음, 어두워진 영혼에게 주의 복음으로 비추는 것입니다.
3. 그러면 교회가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단계를 밟아야 하겠습니까?
첫째, 우리의 생각을 구조조정해야 합니다.
15절을 읽겠습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소금은 소금통 바깥에서 일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모이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이는 것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복음을 통해 은혜를 받고 자아정체감을 확립한 후에는, 사명을 받고 세상으로 흩어져야 합니다.
또한 사람은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큰 통으로 등불을 덮어 놓지 않습니다.
등경 위에 두어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춥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는, 소금이 되고 빛이 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부패한 곳, 참된 생명의 맛을 잃은 곳에 가서 사명을 감당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촛불이 어두움을 밝히기 위해서는 자신을 태워야하는 희생이 따르기 때문이요, 소금의 맛을 내려면 자기를 녹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생각의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내가 받은 복이 가정과 직장에까지 확산되고 공유되어야 합니다.
“내 것을 남에게 나눈다.”는 것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며, 때로는 손해가 따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손해 보지 않고서는, 이웃을 섬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희생하여 소금과 빛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쳐서 지역사회인 익산에 우리교회가 자랑거리와 긍지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우리의 행동을 구조조정해야 합니다.
16절을 읽겠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빛은 사람 앞에 비추어져야 합니다.
교회는 교회 안에서만 안주하지 않고, 세상의 어두움 속으로 뛰어드는 행동으로 구조조정을 해야합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의식과, 사람 앞에서 의식을 동시에 가져야합니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마음으로 용납해야 합니다.
우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합니다.
주님도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그 어떤 조건이나 대가를 제시하지 않으셨습니다.
마11:28절을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고, 요8:11절에서는 범죄하다가 붙잡혀 온 여인을 “정죄하지 않고 사랑을 표현”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에게 위로하시고 새 출발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교회는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입니까?
구원을 받아 새 출발하기를 원하는 자들이 모이는 곳이요, 또한 이미 구원을 받고 새출발한 사람이 모이는 곳입니다.
따라서 이미 구원을 받고 새 새명을 얻어 새 출발을 하신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된 삶의 탁월성을 제시하여 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에 나오게 만드는 건강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예수님을 따라 살기를 원하는 제자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엄격한 자기관리를 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거듭난 우리가 자기 자신을 바로 관리하지 못해 죄에 빠지면, 그 일로 뒤따르는 결과를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웃을 행복하게 하는 자랑스런 고현교회를 만들어 갑시다.
우리 교회는 설립 114주년을 맞이하는 교회로서, 문턱이 없는 교회를 만들어, 들어오는 자마다 상처를 치유 받고, 새 출발하는 강력한 성령님의 은혜가 넘치는 영광스런 교회가 되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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