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의 지경을 넓혀야 합니다 (마28:18-20)
오스월드 스미스 목사는 젊을 때 선교사로 지망했지만, 케나다 선교부로부터 확실하고 분명하게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 후 오스월드 스미스 목사는 캐나다 토론토에 피플스 교회를 개척하여 300명의 선교사까지 파송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내에도 할 일이 많은데 왜 굳이 해외에 나가 선교를 해야 합니까? 이런 질문을 받고 저는 이렇게 반문합니다. 왜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스코틀랜드에도 할 일이 많은데 스코틀랜드를 떠나 아프리카로 갔습니까? 왜 윌리엄 캐리가 영국에도 할 일이 많은데 영국을 떠나 인도로 갔습니까? 왜 저드슨이 미국에도 할 일이 많은데 미국을 떠나 버마로 갔습니까? 왜 사도 바울이 팔레스타인에도 복음을 더 전해야 하는데, 유럽으로 갔습니까? 세계가 밭이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자기 밭에서 일할 때 작은 구석에서만 일하고 나머지 밭은 다 버려둡니까? 농부는 자기 밭 전체에서 일합니다. 미국은 밭의 작은 구석입니다. 캐나다도 작은 구석입니다. 세계라는 넓은 밭 전체로 나가서 일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스월드 스미스 목사님의 말씀에 의하면, 우리 한국도 지구촌이라는 밭의 작은 구석일 뿐입니다.
우리는 세계라는 넓은 밭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중국, 몽고, 필리핀, 인도, 캄보디아, 필리핀, 알바니아, 탄자니아, 일본, 아시아 중동지역, 아프리카, 유럽, 북미, 남미, 오세아니아로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과 축복이 넘치는 고현교회에서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하는 지구촌 족속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가든지 보내든지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사람으로 살고 있고, 또한 내세 지옥으로 들어갈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옥문 곁에 가서 죽음과 절망과 불화와 갈등의 지옥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건져내는 구명대원이 되어야 합니다.
구명 선교를 위해 드리는 돈은 우리의 돈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하는 하나님의 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전체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마음과 말과 재능과 물질과 삶 전체로 지구촌 영혼들을 구명해야 합니다.
우리는 전도와 선교를 통해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는 지구촌 평화의 공동체, 모두 복을 받고 모두에게 복이 되는 지구촌 축복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합니다.
전도와 선교를 하면 살고, 전도와 선교를 그치면 죽습니다.
전도와 선교를 하지 않는 교회는 쓸모없는 화석이 됩니다.
물은 흐르면 맑아지지만 흐르기를 중지하면 썩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내 속에서 지구촌으로 흐르는 것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썩고 죽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속에서 약동하게 하면서, 주변에서 지구촌 방방곡곡으로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전도와 선교의 지경이 넓을수록 축복의 지경이 넓어집니다.
전도와 선교의 열정이 뜨거울수록 생명의 열정이 뜨거워집니다.
전도와 선교의 빛을 멀리 비칠수록 우리에게 주어지는 축복의 빛이 가까이서 더 밝게 비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을 지구촌 전역에 널리 비치는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 바랍니다.
마28:18-20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상 최대의 명령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은 “자신들이 보고 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마음속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치밀어 오르는 충동을 가지고 다닌 사람들이었습니다.
동일한 예수를 믿고 사도들을 계승한 복음 증거자인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사실 우리들의 마음은 식어있고, 사람을 두려워하는 공포증에 사로잡혀 있지 않나 하는 염려를 할 때가 저는 종종 있습니다.
전도와 선교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자랑스럽게 기쁨으로 실천해야 할 삶 그 자체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이야기하여 다른 사람의 영혼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일만큼 귀하고 아름다운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전도와 선교하는 생활은 우리의 신앙상태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도와 선교를 기쁨으로 할 때는 “신앙이 매우 좋다고 말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신앙이 병들어 있다”고 해도 잘못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일까요?
1. 주님께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고후5:18절을 읽겠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그렇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를 좀 불신자들과 화목시켜다오. 내가 그들을 사랑한다고 전해다오. 네가 나와 화목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나와 화목시켜다오”라고 부탁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의 이 명령에 순종하여 복음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음(달란트)을 수건에 싸서 땅에 묻어 놓고 있는 악한 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시기를 바랍니다.
2. 복음 전파는 주님의 심정이기 때문입니다.
마9:36-38절을 읽겠습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청하여 추수할 일꾼을 보내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무리를 불쌍히 여기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영적인 고통과 방황을 비유하신 말씀입니다.
즉 목자가 없는 양이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찾지도 못한 채 헛된 고생만 하게 되는 것처럼, 예수님을 모르는 불신자들이 행복과 영생의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주님의 제자로서 예수님처럼 세상 사람들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프리카 벨기에 영 콩고에서 선교한 C. T. 스터드(Studd, 1860-1931) 선교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돈 많고 유명한 운동선수가 모든 것을 다 제쳐두고 어느 날 중국, 인도, 그리고 아프리카 선교지로 사라졌습니다. 그는 13년 동안 일체 사람들과 접촉도 없이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찬양대와 종탑이 있는 교회 가까이에서 살기를 좋아하지만, 그는 지옥문에서 30미터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을 지옥에서 건져내는 구명대를 운용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 교회와 성도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사용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실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부모들은 누구나 자기 자녀들이 벙어리로 태어나면 큰 재앙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 가운데 벙어리가 많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놀라운 사실은 “오늘날 교회 안에 그러한 자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지 못합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벙어리입니까?
아니면 전도자입니까?
우리는 가는 선교사가 되든지, 아니면 보내는 선교사가 되든지 모두 다 복음 전도자가 되어 신실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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