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복음의 나팔 (에스겔 33:7-11)

Johnangel 2023. 10. 11. 22:43

복음의 나팔 (에스겔 33:7-11)

                                               

오늘 본문은 “우리 예수 믿는 자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하늘에서 그냥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통하여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의 도구로 쓰임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창12:2-3절에서 “아브라함을 인하여 만민이 복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축복을 나눠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우리 삶에 여러 가지 의미와 목적이 있겠지만,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을 전달하는 통로로 쓰임 받는 삶이 가장 보람 된 인생입니다.

 

믿음의 가족 여러분!

우리는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서 남을 세워주는 자가 됩시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낙심한 자를 일으켜 세워주는가 하면, 가시 같은 말 한마디로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 있는 자를 찔러 넘어뜨리고 낙심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격려를 받아야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용납해주고 인정해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로 사람을 세워주고 살리는 자들이 됩시다.

 

그렇다면 사람을 살리는 원리는 무엇입니까?

 

1. 사람을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11절을 읽겠습니다.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이 자기 죄 때문에 죽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고 죄를 회개하고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시기보다 살려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치료하시고 강하게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신앙생활의 색깔이 갈라집니다.

요일4:9절에 보면 “살리는 것”을 “사랑”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셨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 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예수님의 절규에도 침묵하셨습니다.

또한 딤전2:4절에서는 “살리는 것”을 “구원”으로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이 에베소서1장에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정론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조명해야지, 심판에서 조명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되고, 인간답게 살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모든 사람이 살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가슴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렘29:11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절망이 아니라 소망입니다.

 

2. 성도는 살리는 자입니다.

 

2-3절을 읽겠습니다.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말하여 이르라 가령 내가 칼을 한 땅에 임하게 한다 하자 그 땅 백성이 자기들 가운데의 하나를 택하여 파수꾼을 삼은 그 사람이 그 땅에 칼이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여기 2절에서 “살리는 사람”을 “파수꾼”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파수꾼은 높은 곳에서 잠을 자지 않고 적군의 침입을 경계하고 발견하여 알려주는 일을 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3절에 보면 살리는 자는 “그 땅에 칼이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영적 무관심자인 죄인을 향해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9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의 길에서 떠나려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의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라”

여기 악인이란, 하나님의 일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일에만 몰두하는 자이며 주어가 항상 자기 자신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말하는 “노아의 때에 살던 사람들”과 동일합니다.

환난과 전쟁이 눈앞에 왔는데도 깨닫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눅12:18-21절의 “어리석은 부자”와 같은 자들입니다.

그는 삶의 중심에 하나님이 없고, 예배, 기도, 감사가 없고, 이웃이 없는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인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현세주의자이고 물질주의자입니다.

그러므로 눅12:18-21절의 어리석은 부자는 그가 부자였지만 주님의 관점에서 보면 실상은 가난뱅이였던 것입니다.

이들을 시편에서는 “교만한자”로, 겔33:12-13절에서는 “자칭 의인이라 하는 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모두 경고의 나팔을 듣고 돌아와서 주님을 모시고 주님 중심으로 살아야 할 자들입니다.

 

둘째는, 인생을 자포자기하고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입니다.

 

10절을 읽겠습니다.

“그런즉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허물과 죄가 이미 우리에게 있어 우리로 그 가운데에서 쇠퇴하게 하니 어찌 능히 살리요 하거니와”

어떤 사람을 의미합니까?

과거의 실패 때문에 가슴에 상처를 안고 절망하며 탄식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전에는 버려진 인생이었던 막달라 마리아나, 수치를 안고 살았던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이나, 증오의 대상이었던 세리마태와 같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런 자들에게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인생을 포기하고 죽지 못해 사는 자들이 많습니다.

 

 

한신대학교 교수이신 정태기 박사는 유학시절, 미국에서 크게 부흥하는 주일학교에 그 비결을 알고 싶어 방문했습니다.

그는 “제니”라는 교사를 소개받고 기다리던 중 자신 앞에 뚱뚱하고 못생긴 여인이 다가오자 실망하던 차에 그 여인이 먼저 “내가 뚱뚱하고 못 생겨서 실망하셨죠?”라고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낸 후 그녀는 자신의 과거 삶을 털어 놓았습니다.

자신도 스스로가 너무도 초라해 보여 청소년 때 3번씩이나 자살을 기도했고, 한번은 약을 먹고 누워 있는데, 곁에 있던 어머니가 자는 줄 알고 아버지한테 하는 말이 “우리 제니가 죽으면 우리가 얼마나 행복할까요?”라는 말을 듣고는 어머니로부터도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더욱 충격을 먹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실력도 없어서 고등학교를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야간학교 과정을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섭리로 미국의 유명한 선교단체인 네비게이토 선교회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6개월 동안 그들의 따뜻한 관심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인생을 바라보는 안목이 바뀌고 인생의 의미를 발견했답니다.

그녀는 “어떻게 하면 이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유치부 교사를 자원해서 8명의 아이들을 맡게 되었고, 저녁마다 “이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그때마다 지혜와 사랑이 생겨나 그로인해 주일학교가 이렇게 부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제니와 같은 이런 인생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자신의 과거 때문에 미래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인간의 환경이나 실패 때문에 우리를 포기하신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우리 자신의 삶이나 다른 사람의 삶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불신자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예수님을 소개하는 말 한마디를 전해주어서, 그들이 삶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고 다시 사는 역사가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따뜻한 말 한마디로 사람의 마음을 열어 하나님 앞에 내어 놓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치료하시고 다시 살리셔서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3.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리는 분이시고 우리는 살리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명은 복음을 전함으로써 감당할 수 있습니다.

파수꾼이 나팔을 부는 경우는, 경고나 좋은 일이 있을 때, 또는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있을 때입니다.

우리도 복음의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첫째는 우리는 삶으로 나팔을 불어야 하고,

둘째로는 입술로 자연스럽게 내가 만난 주님을 전함으로 나팔을 불어야 하고,

셋째는 진리를 수호하는 내 삶의 양식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고,

마지막으로 7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심정으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전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침묵하면 하나님의 복음과 사랑은 전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도자 스티브 레바인은 “당신이 곧 죽게 되어있고 단 한 번의 전화할 기회가 있다면 누구에게 무슨 말을 남기겠는가? 그런데 왜 아직까지 미루고 있는가?”라고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을 오토바이 사고로 잃은 어느 어머니가 다른 어머니들을 도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글을 신문에 실었습니다.

“난 내 아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다시 할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당신의 자녀들에게 할 말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당장 하십시오. 그것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와 자녀나 사랑하는 가족과 친척들의 미래를 모르는 자들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나로 인하여 유보되지 않도록 합시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각오로 그들에게 생명을 해산하는 수고를 지불합시다.

그래서 성령의 불로 우리의 가슴마다 새 생명의 복음을 심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난번 세월호의 침몰사건으로 인하여 실종자가 된 안산 단원고등학고 2학년 김정민 학생의 아버지인 안산 동부교회 김영삼 장로님이 쓰신 글입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고 회개하고 나온 것처럼 돌아와도 감사하고, 그리아니하실지라도 내 아들 정민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원받은 것에 감사합니다. 이번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이 생사화복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항상 고백하고, 우리 생명이 영원하지 않음을 인식하고, 잠시 있다가는 나그네 인생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말씀과 기도의 현장, 오직 예수 그리스도, 오직 복음으로, 오직 전도자의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모두들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