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설교 - 감사는 축복의 기초 (이사야 38:16-20)

Johnangel 2015. 11. 7. 12:28

감사는 축복의 기초 (이사야 38:16-20)

                                                 

갤럽에서 1,600명의 어머니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당신의 자녀가 사람의 됨됨이가 좋다는 말을 듣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인성은 좀 떨어지더라도 머리 좋은 자녀가 되기를 바라는가?”라는 이 질문에 놀랍게도 응답자 가운데 94%의 어머니가 사람의 됨됨이는 좀 떨어지더라도 머리 좋은 자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응답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의 자녀를 아무리 지식인간, 기술인간으로 만들어도 사랑과 감사의 따스한 가슴을 잃어버린 인간이 된다면 이 세상은 황폐하게 될 것입니다.

김현승 시인은 그의 시 “눈물”에서 “눈물이 보석”이라고 노래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여 울컥 마음이 담긴 솟아오르는 눈물 한 방울이 주님 앞에는 물방울 다이몬드 보다 더욱 값진 것입니다.

본문은 유다 13대 왕이었던 히스기야가 그의 일생 중 가장 어려운 고난의 시기에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살기를 원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히스기야의 거울 앞에서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고 주님 앞에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다듬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히스기야왕은 몸에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왕이라도 이 질병과 죽음의 고통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병이 듭니다.

이 땅의 어느 누구도 질병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할 수 없습니다.

종교개혁자 죤 칼빈은 “걸어 다니는 병원”이라고 할 만큼 그의 몸은 병약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일평생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자로 살아갔습니다.

그렇습니다.

평안함 가운데 드리는 감사도 귀하지만 고통가운데 드리는 감사는 더 복된 것입니다.

3절에 보면 히스기야 왕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전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선하게 행한 것들을 기억하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병을 고쳐달라”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4절에 보면,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해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응답을 받은 히스기야는 이제 자신의 남은 생애를 어떻게 디자인하고 살아갈 것인지를 하나님 앞에 고백합니다.

 

1. 히스기야는 생명이 주의 손에 달려있다고 고백합니다.


16절을 읽겠습니다.

“주여 사람이 사는 것이 이에 있고 내 심령의 생명도 온전히 거기에 있사오니 원하건대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 주옵소서”

여기에 히스기야의 생명관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만이 나의 생명의 주관자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을 살리고 일으키시는 능력이 주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눅12:20절에 보면 한 부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재력 있는 지방의 유지요, 실력자였습니다.

그는 농사가 잘되어 큰 창고를 짓고 “이제 아무 걱정 없이 내 인생을 경영해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 부자에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 사람들보다 지혜로운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 생명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생명이 주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지식과 믿음의 여부에 따라 그 인생의 깊이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종말관이 확실해야 합니다.

“언제 나를 부르셔도 나는 기쁘게 주님께 가리라”는 고백은 믿는 자들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낳은 자녀들일지라도 그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내가 살든지 죽든지 생명은 하나님 손에 달려있다는 생사관이 분명할 때, 우리는 어떤 환경가운데에서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사실 히스기야는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권세를 가진 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위에 계신 생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겸손히 인정했습니다.

물론 인생은 누구나 환란 때에 “우리의 가정과 자녀들이 주님의 손에 달려있다”고 고백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의 생명과 가문의 흥망성쇠가 주님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고백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신앙과 인생의 견고한 기초를 놓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히스기야는 고통과 평안이 주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고백합니다.


17절을 상반절에 보면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 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시려 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고통과 평안은 서로 충돌되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믿음 안에서 이것을 조화롭게 보았습니다.

그는 “인생에서 뛰어넘을 수 없는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하심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한다”는 제목으로 헌금을 드립니다.

범사가 무엇입니까?

고난과 평안, 성공과 실패 그 모두를 다 포함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능력이 주님께 있다”는 신앙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어려운 중에서도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실 줄 믿고 감사할 수 있는 수준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히스기야가 지금 직면한 그의 고통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는, 깊은 육신의 병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병보다 더 괴로운 것이 있을까요?

병든 자는 고통과 질병에서 놓여 자유하기를 얼마나 갈구합니까?

여기 히스기야 왕도 육신의 고통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을 의뢰하고 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5절에 보면,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너의 눈물을 보았다.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리라”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둘째는, 히스기야는 한 나라의 통치자로서 앗수르의 침략과 위협으로부터 늘 백성과 나라를 지켜야 하는 마음의 부담과 고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마음의 고통에도 응답하십니다.

히스기야왕의 지략과 책사들만 가지고 해결할 수 없었던 국가의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하여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며 평안을 주셨습니다.

6절에 보면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이렇게 히스기야 왕은 부와 권세를 가진 자였지만, 육신과 마음의 고통 속에서도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전심을 다해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습니다.


3. 히스기야는 사죄의 은총이 주께 있음을 고백합니다.


17절 하반절에 보면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의 모든 죄를 주님이 등 뒤로 던지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주님의 등 뒤로 던져버리셨습니다.

우리의 죄가 전능하신 주님 앞에 드러나면 수치와 부끄러움을 피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죄의 은총이 임하기만 하면 어떤 죄라 할지라도 주님은 등 뒤로 던져버리시고 우리를 용서받은 하나님의 아들로 바라보십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아버지는 실패한 후 돌아오는 아들을 향해 맨발로 뛰어가 품에 안습니다.

아버지는 이미 아들의 모든 실수, 실패, 불효를 등 뒤로 던져버리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주님은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죄인의 모습이 아닌 의인의 모습으로 받아 주십니다.

시103:12절의 말씀대로 주님은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의 죄와 악행을 옮겨버리셨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자신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주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삶과 죽음, 고통과 평안, 죄사함의 주관자되신 하나님을 고백한 히스기야가 어떻게 반응합니까?

19절에 보면 “오직 산 자는 오늘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살아있는 신앙인은 감사의 표현이 있습니다.

사랑한다면 사랑을 표현하십시오.

감사한다면 감사를 표현하십시오.

우리가 살아있기에 사랑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인지, 우리의 호흡이 끊어지면 사랑할 수도 없고 감사할 수도 없습니다.

감사는 산자의 것입니다.

사랑할 말이 있거든 지금 하십시오.

감사할 일이 있거든 지금 감사하십시오.

신앙의 성숙은 지금해야 할 것을 분별하는 지혜를 갖는 것입니다.

이 깊어가는 추수의 계절 가을에 우리 인생의 주관자가 되시며,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과거의 잘못을 등 뒤로 던져버리시는 주님의 은혜를 바라봅시다.

그리고 주님의 은혜가 우리의 마음에 충만하여 감사로 터져 나오는 행복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