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로마서 8:31-32)
밤나무 숲을 수십 년 동안 관리해오던 한 사람이 독사퇴치법에 대하여 이런 글을 썼습니다.
“옷은 긴 옷을 입고, 신은 무릎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고, 손에는 꼭 지팡이를 짚으십시오. 걸어갈 때에는 소리를 내며 터덕터덕 걷고 지팡이로 ‘탁탁’ 바닥을 치며 걸으십시오. 그래야 독사가 그 소리를 듣고 미리 피하게 될 것입니다.”
이 독사퇴치법에 대한 이야기를 영적으로 해석해본다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발목을 잡는 세속화의 독사, 불평과 원망의 독사를 퇴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사탄의 공격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감사와 찬송의 소리를 높이며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우리의 대적 사탄은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가는 역사가 반드시 나타날 것입니다.
여러분, 믿지 않는 사람이 불평이 많겠습니까?
아니면 믿는 자가 불평이 많겠습니까?
어떤 분은 믿지 않는 사람보다 믿는 사람이 오히려 더 불평이 많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팔자소관으로 여기고 체념하는 숙명론에 빠져있기 때문에 불평이 적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믿음과 헌신과 충성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난과 환난이 닥쳐올 때에 ‘하나님, 제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라고 하나님을 향해 원망과 불평을 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불평과 불만이 들어오면, 감사와 감격이 사라집니다.
감사와 감격이 사라지면, 영적인 능력이 사라집니다.
이러한 영적인 현상은,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발을 붙잡고 있는 모든 불평과 원망이 사라지고 감사와 감격과 찬송을 회복하여 하나님께 재 헌신 할 수 있는 처방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신뢰회복입니다.
예일대 프라이스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류의 정보와 지식이 18세기 중엽부터 매 15년마다 배로 증가해왔다. 특히 1980년대부터 특정 학문의 지식의 유효기간이 5년 주기로 바뀐다.”
이렇듯 우리는 지금 지식과 정보가 가득 차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물론 지식과 정보가 많다는 것은 축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식과 정보가 넘친다고 해서 감사와 믿음이 넘쳐납니까?
그리고 내면적인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지식과 정보가 우리의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와 확신으로 자리 잡을 때에 비로소 손과 발이 움직이는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지식과 정보를 확신으로 변화시키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이 내 마음에 확신으로 자리 잡고 능력으로 나타나 하나님의 쓰시는 일꾼으로 쓰임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1.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위하는 사랑입니다.
31절을 읽겠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의 사랑은 나를 위한 사랑이라는 궁극적인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이 사랑을 증명하셨습니다.
롬8:29절에 보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미리 아셨습니다.
그리고 미리아신 자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기로 미리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미리 정하신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신학적인 용어로 “소명”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롬8:30절에 보면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본래 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의 옷을 벗기시고 의의 옷을 입혀주셔서 영광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허락해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의롭게 우리를 성령으로 인쳐주시고, 주님을 닮아갈 수 있도록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말씀하는 영화는 미래에 우리가 받을 축복과 영광을 의미합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해주신 일들을 알고 감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학자 워필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정하시고 나를 부르시고 나를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일련의 축복들은 믿는 자들에게 베푸시는 다섯 개의 고리로 만든 황금사슬이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나를 묶는 악한 영의 사슬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믿는 모든 자들을 은총의 사슬로 붙드시고 인도하십니다.
여러분은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축복들에 대해서 얼마나 기억하고 감사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명령합니다
시103:2절을 읽겠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이 말씀은 “나를 아시고 나를 정하시고 나를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실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성도는, 감사와 감격이 사라지고 교만하고 세속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우리가 오늘 이 예배의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은,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도움과 은혜로 인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께 은혜를 받았다면, 반드시 “주께서 주신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생각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을 반드시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다윗은 성전을 짓기 위한 준비를 다 한 뒤에 대상29:13-14절에서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진면모를 알았고,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릴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하는 마음을 다시금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는 예수그리스도를 주신 것입니다.
32절을 읽겠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들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입니다.
새번역 성경에 보면 32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당신의 아들까지 내어주셨으니 무엇인들 아깝다 하시겠습니까?”
사실 과거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천국의 소망과 상급을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현대그리스도인들은 간섭받기 싫은 익명성을 즐기고 편리한 실용성을 추구하는 현실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어떤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넘치는 감사와 감격을 잃어버렸습니다.
초지일관 주님향한 믿음의 뚝심을 잃어버렸습니다.
따라서 우리 안에 감사와 감격이 끊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이 사랑 속에 내 영혼이 깊이 잠겨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세상의 세속화를 뛰어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최근 북한측의 협박과 도발적인 행동에 대하여 우리 정부에서는 북한에 대한 여러 가지 정책과, 국회에서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부동산에 대한 여러 가지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정책이나 외부의 환경이 사람의 영혼과 삶의 자세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학력, 소유, 지식이 우리를 감사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은혜와 하나님 사랑에 대한 가슴 저미는 감동이 우리를 감사와 감격의 사람으로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얼마 전 일본의 에모토 마사루라는 사람이 “물이 해답이다”는 책을 썼는데 그는 그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물에 감사와 사랑이라는 단어를 보여주면 물의 결정체가 아름답게 형성되지만 부정적이고 저주하는 말을 하게 되면 물의 결정체가 파괴되는 것을 발견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을 못하는 물도 이와 같다면, 우리의 삶과 영혼이 아름다운 결정체가 되기 위해서는 “감사와 사랑”이라는 단어로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고, 그 사랑에 감사와 감격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남은 생애는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다듬어지고 쓰임 받게 될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나를 향한 사랑과 은혜를 뜨겁게 재 확신합시다.
우리의 영혼의 투명함과 질을 높여 여호와께 감사하는 인생을 살아갑시다.
우리 모두 교회밖에 있는 다른 영혼들을 전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 안으로 인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 자랑스런 교회로 쓰임을 받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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