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당신에게 영적 발전소가 있습니까? (마가복음 1:35-39)

Johnangel 2023. 9. 3. 22:55

당신에게 영적 발전소가 있습니까? (마가복음 1:35-39)

                                              

위대한 설교자 스펄전 목사님이 담임하시던 교회의 성장비결을 알고자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습니다.

그러자 교회의 안내인은 방문객들을 교회 지하로 안내하였습니다.

교회 지하에서는 200여 명의 성도들이 모여 뜨겁게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안내인은 방문객들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건강과 성장비결은 바로 여기 성도들의 기도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은혜가운데 성장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 영적인 능력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간절히 엎드려 기도할 때 부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물론 교회에는 지력과 재력과 체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교회가 교회다워질 수는 없습니다.

기도의 영력이 있을 때 성도가 성도다울 수 있고, 교회가 교회다울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국가의 기간산업을 유지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국가의 존망이 결정되듯이, 우리 성도들도 “영적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공급되느냐, 안 되느냐”에 따라 믿음생활의 열매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적 에너지를 끊임없이 공급받는 영적 발전소가 있습니까?

우리 주님은 현대인들이 잃어버리기 쉬운 영적 발전소인 기도의 영력을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시간 우리 함께 2,000년 전 주님이 무릎 꿇으셨던 그 기도의 자리에 함께 나아갑시다.

 

주님은 우리가 회복해야 할 기도의 영적균형을 네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1. 골방과 시장이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35절을 읽겠습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이른 새벽에 주님은 한적한 곳에 가셨습니다.

한적한 곳이란, 조용한 곳,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곳, 인간적인 계급장을 모두 떼고 주님 앞에 발가벗은 영혼으로 설 수 있는 곳, 사람의 소리와 세상의 소음이 없고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곳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무엇 때문에 한적한 곳에 가셨을까요?

마14:21-23절을 보면, 한적한 산은 주님의 기도 골방이었습니다.

주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뒤에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며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고자 할 때 홀로 산으로 가셨습니다.

여러분은 오늘날 우리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놓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그것은 우리가 기도의 골방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기도의 영력이 사라지면 믿음의 확신이 약해집니다.

그리고 믿음의 확신이 약하면, 그만큼 세상에 대한 믿음의 영향력을 상실하고 영적 실어증에 걸리고 맙니다.

현대인들은 항상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주님의 음성보다 사람들의 칭찬과 환호소리에 더 민감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만나는 기도의 골방보다 사람들을 만나는 시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여러분에게는 영혼의 언어를 회복하는 기도의 골방이 있습니까?

주님은 골방과 사람들이 들끓는 시장에 균형을 이루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골방과 사람이 들끓는 시장이 균형을 이룰 때, 영력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이 가지셨던 그 골방을 회복할 때, 우리는 영혼의 언어를 회복하고 그리스도인의 본모습을 되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영혼과 육체의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주님은 한적한 골방을 찾으시기 전에 얼마나 분주한 시간을 보내셨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하루 일과를 보면, 21절에서는 “회당에서 가르치셨고” 29-30절에서는 “가정을 심방하셨으며” 32-34절에서는 밤늦도록 삶의 문제를 가지고 나온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안수하시고 치료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몸은 쉴 겨를이 없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35절에 보면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물론 기독교는 육체를 경시하는 금욕의 종교가 아닙니다.

우리 기독교는 영혼을 담는 그릇으로서 육체를 존중합니다.

하지만 우리 육체는 대접을 받을수록 더 대접받기를 원하고, 편안할수록 더 편안함을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정신과 신앙이 육체를 다스리지만, 육체의 소욕을 따르다보면 나중에는 육체가 우리의 정신과 신앙을 지배하게 됩니다.

이것이 훈련받지 못한 우리 현대 그리스도인의 단적인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육체 주도적으로 살려고 하는 우리의 마음의 소욕을 끊고, 주님의 뜻을 향해 방향을 전환하는 능력을 줍니다.

우리에게 육체의 소리가 아닌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성장을 위한 전략회의와 성경공부를 많이 한다할지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육체의 소욕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영혼과 육체의 균형을 이루셨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주님께서는 분주한 하루 일과로 육체는 비록 피곤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 시간 하나님의 저울에 여러분을 한번 달아보시고 무게중심이 육체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면, 영혼 쪽으로 옮기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가 영혼 주도적, 성령 주도적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3. 하나님과 사람과의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37절을 읽겠습니다.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주님은 모든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와 “내가 주를 찾나이다”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셨습니다.

우리 현대인들은 항상 사람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주위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물론 사람을 돕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계속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주다보면, 주님의 요구에 응답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1:10절에 보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사람을 기쁘게 하랴 내가 사람의 말을 들으면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람들의 환호와 요구에 몰입되어있다면, 언제 주님을 위해 내 삶을 집중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

기도는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하며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능력을 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람과의 균형을 이룰 때, 우리는 주님의 제자로 존귀하게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4. 기도와 사역의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38-39절을 읽겠습니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주님은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든 자와 귀신에 눌린 자들을 자유하게 하시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역 때문에 기도를 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일하기 전에 기도하셨고, 일하시면서 기도하셨으며, 일하신 뒤에도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 없는 사역을 경계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명령을 따라 복음전파사역을 감당하고 돌아왔을 때, 오고가는 사람들이 많아 제자들이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을 보시고, 막6:30-31절을 보면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간 쉬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사역과 기도의 균형을 이루셨습니다.

주님의 일을 할 때 우리의 몸을 혹사시켜서는 안 됩니다.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나친 사역으로 육체가 탈진하면, 그 사역이 부담이 되고 기쁨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적 에너지를 계속해서 공급받지 못하면 탈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역의 기쁨과 열매를 원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무릎을 꿇는 기도자는 발돋움하는 철학자보다 더 멀리 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무릎으로 사역하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사역 없는 기도는 신비주의입니다.

 

또한 “경건하게 기도하고 힘 있게 망치질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기도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건전한 신앙인의 태도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일 그 자체요,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고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영적 발전소인 기도를 회복하여 하나님의 일에 동참합시다.

이 가을의 문턱에서 우리 모두 각자 기도의 골방을 회복하여 기도와 사역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이번 특별새벽기도회에 동참하여 가정과 사업과 직장과 우리 교회가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