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출발 (고린도후서 5:17-19)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축복받아야 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우리 인간은 창조주와 피조물,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로서 거룩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인간은 왜 사는지 모릅니다.
답이 없습니다. 알 수 없습니다. 내가 누군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의 고뇌와 방황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 인간을 위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성령을 통해 믿게 하심으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를 믿기 전까지는, 새해가 와도 우리 인간은 여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없고, 새로운 삶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을 변화시키는 능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능력의 책이요, 구원의 책이요, 기적의 책입니다.
성경은 죽은 사람을 살리고,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능력의 책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전부가 우리를 향한 보장이요, 약속입니다.
예를 들면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 믿으라 그러면 구원해 준다” “나를 믿으면 천국에 가게 한다. 부활하여 영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인류의 미래에 대한 약속이요, 개인에 대한 약속입니다.
“너는 행복하기를 원하느냐, 이렇게 살면 행복해 진다” “너는 잘 살기를 원하느냐, 이렇게 살면 잘 산다” “너는 주일날 내게로 와서 예배를 드려라. 그러면 나는 너에게 복을 주겠다.”
성경은 이렇게 우리의 삶을 전부 보장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습니다.
몇 천 년 전 모세 때 기록한 것이지만, 오늘의 미국 대통령은 “성경말씀대로 나라의 정치를 하겠다.”고 성경 위에 손을 얹고 선서합니다.
유대인들은 이 성경을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경을 가르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오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과거와 미래가 없습니다.
언제나 현재입니다.
오늘날 현대를 가리켜서 “정보화시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30년, 40년 이후에는 어떤 새로운 시대가 오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경배하고 그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백년이 지나고 천년이 지날지라도 여러분의 이름과 여러분의 발걸음과 여러분의 생애가 하늘에 새벽별 같이 빛날 줄 믿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써 이 땅에 우리를 구하려고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어주신 분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을 짊어지시고 앞서 가시면서 오늘도 우리에게 “나를 따라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찬송가 449장에 보면
♪예수 따라가며 복음 순종하면 우리 행할 길 환하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주가 늘 함께 하시리라.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따라가는 삶인 것입니다.
부모는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이 세상의 어떤 책이나 어떤 사상이나 어떤 힘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은 인격을 가진 자로써, 내가 외로울 때 찾아오셔서 위로해 주시고, 내가 시험들 때 시험에서 건져 주시고, 마음이 불안할 때 마음에 평안을 주시고, 물질이 어려울 때 물질을 주시고, 양식이 없을 때 양식을 주시고, 불행할 때 그는 찾아 오셔서 눈물을 닦아주시고, 진정한 내 친구가 되어 주시고, 모두가 떠날 때도 주님은 영원히 떠나지 않고 나와 늘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백세나 되는 이 노인을 만나서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아들 낳을 수 없는 이 사람에게 아들을 낳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언제나 인생을 역전시키는 분이십니다.
요셉이 애굽에 팔려가서 감옥에 들어갔지만, 거기에서 그를 높여 애굽 제국을 이끄는 사람으로 역전시키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하여 가족도 살리고 전 애굽을 살리셨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100%가 역전의 약속으로 가득한 책입니다.
바로가 무서워서 도망쳤던 한 청년 모세가 나중에는 지팡이 하나만 잡고 애굽에 다시 돌아와 천하를 움직이던 바로를 쩔쩔매게 하고, 그의 쇠사슬에 매어 종으로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 200만 명을 이끌어냅니다.
목동인 다윗을 역전시켜 나라를 살리고,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 건져내어 바벨론제국의 총리가 되게 하고, 쓸모없는 기생 라합을 다윗 왕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노인이 복의 근원이 되고, 팔려간 자가 총리가 되고, 창녀가 다윗의 조상이 되고, 베드로가 놀라운 사도가 되고, 삭개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천한 자를 귀하게 하시고, 병든 자를 치료하고, 불행한 자를 행복하게 하고, 자식이 없는 자에게 자식을 주고, 모든 길이 막힌 자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는 누구도 차별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누구에게서 이런 놀라운 역전의 기적이 일어날 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앞으로 10년 이후에 우리 교회에서 여러분을 통하여 세계적인 일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기독교는 기적의 종교요, 생명의 종교요,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빌4:13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역사의 지배자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삶을 조각하는 조각가이십니다.
그의 손에 들어가면 쓸모없는 것도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 분은 손은 정말 큰손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해가 와도 우리가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새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요, 옷만 갈아입었을 뿐입니다.
의자를 바꾸고, 집을 바꾸고, 프로그램만 바꾸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해 아래 이 세상에는 새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새롭게 하는 줄 믿습니다.
예수를 만나는 사람은 일용잡직이어도 좋고, 폐지를 모아 어렵게 생활하던 사람이라도 상관없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로 말미암아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계적인 대문호 프랑스의 빅토르 위고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는 젊어서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 날 그가 사랑했던 딸 “레오 폴린”이 아버지의 방탕한 삶을 견디다 못해 유서를 써 놓고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합니다.
유서 내용의 하나가 “하나님 아버지의 품안으로 속히 돌아오십시오. 언제까지 그렇게 사실 것입니까?”하는 것이었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사랑하는 딸의 무덤 앞에서 통한의 문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거듭난 후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어집니다.
그는 방탕하게 살던 파리를 떠나 시골로 들어가 놀라운 작품 활동을 시작합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빅토르 위고가 쓴 레미제라블, 노틀담의 꼽추, 리블라, 노틀담 파리, 빛과 그림자, 등등....몇 가지의 작품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를 믿고 거듭나서 새 사람이 된 다음에 한없는 자유와 평화를 경험합니다.
그가 늙어 이 땅의 생을 다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프랑스 국민들은 그를 존경하여 국장으로 장례식을 치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대통령의 장례식에서나 할 수 있는 프랑스 국민들은 빅토르 위고에게 국장을 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빅토르 위고에게 이런 존경과 행복이 어떻게 온 것입니까?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예수 믿으면 생각이 새 생각으로 돌아옵니다.
방향이 새로워져서 이전의 길과는 다른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우리의 2015년은 이전의 새해가 아닌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새로운 눈을 떠서 주님의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 불행한 사람, 복음을 모르고 죽어가는 불쌍한 사람들을 보는 눈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새 사람은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고백적인 신앙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입을 굳게 다물고, 마음을 굳게 닫고,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받아주시옵소서”라는 진실한 고백과 찬송과 함께 기도의 입술이 열려서 감사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새 사람의 입인 줄 믿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가진 자로써, 복음을 증거하고, 거룩한 일을 하면서, 성경에서 주님이 약속하신 모든 축복과 기적을 경험하시고 누리시는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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