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의 강을 건너는 사람들 (여호수아 3:14-17)
오늘 본문의 내용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해서 40년 광야생활 후 이제 막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의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땅 정복의 과업은, 요단강을 비롯해서 수많은 장애물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너무 어려웠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요단강은 “불가능의 강”이었습니다.
요즘 이스라엘 요단강에 가서 보면, 마치 개울처럼 좁아서 수영을 조금만 하는 사람이면 충분히 건널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당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그때는 보통 때는 강폭이 30m정도였는데, 우기가 되면 강물이 범람하면 1.6km까지 되었고, 깊이도 10-20m나 되었으며, 물살은 시속 16km나 되는 급류였다.”고 합니다.
15절에 보면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물이 없는 광야에서만 생활했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건너야할 넘실대는 요단강물에 겁이 났을 것입니다.
그들의 수는 부녀자들, 노인들과 아이들을 합하여 2백만 명이 넘습니다.
그렇다고 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다리를 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건너지 못할 “불가능의 강”이라는 것입니다.
그 앞에서 과연 그들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아마 두려움으로 가득했을 것이고, 눈앞에 축복의 땅 가나안은 마치 그림의 떡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증언합니까?
“이스라엘이 그 불가능의 강을 넉넉히 건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불가능의 강을 건넜을까요?
1. 절대소망의 신앙입니다.
수1:6절을 읽겠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이 말씀은, 모세가 죽은 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로 여호수아를 세우시며 그에게 약속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살아가면서 왜 낙심하고 절망하게 됩니까?
앞이 안 보여서 그렇습니다.
다시 말해서 소망이 사라져서 그렇습니다.
그럴 때 마음이 무너져 내립니다.
우리의 마음을 붙잡아주고 버티게 해주는 힘이 바로 소망입니다.
성경에 보면 바울만큼 고난을 당한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는 복음을 들고 세계 각처를 다닐 때마다 온갖 핍박과 환란을 당합니다.
그래도 그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낙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후4:8절에 보면 바울은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사방에서 압박을 받아도 그 너머 하나님이 이뤄주실 약속을 바라보며 소망을 갖고 버텨낸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지금 넘실대는 요단강 앞에서 10절에 보면 “또 말하되 살아 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에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실 줄을 이것으로서 너희가 알리라.”고 외쳤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에게는 하나님 자신이 소망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불가능의 강” 요단강 넘어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절대소망으로 날마다 “불가능의 강”을 건너시기 바랍니다.
2. 절대신뢰의 신앙입니다.
11절을 읽겠습니다.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나니”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확인해 줍니다.
여러분, 언약궤가 무엇입니까?
성막의 지성소에 안치되는 직사각형 모양의 상자로써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살아계신 “하나님 임재의 상징”으로서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신다는 상징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는데 뭐가 두렵겠느냐?”고 외친 것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는 전기불도 없어 캄캄한 밤길을 혼자 가려면 정말 무서웠습니다.
게다가 당시에는 귀신이야기와 도깨비 이야기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밤이 되면 어두운 밤길이 무서워서 어른들 틈에 끼어서 갔습니다.
그러나 제일 안심이 될 때는 아버지와 함께 갈 때였습니다.
“신뢰”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해주심을 믿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안심하는 것입니다.
시18:1-2절을 읽겠습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그렇습니다.
다윗의 인생에 있어서 정말 큰 힘은, 그의 머리도 아니고, 재주도 아니고, 왕권도 아니고, 바로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영국의 존 스토트 목사는 20세기 대표적인 신학자요, 사상가이며, 목회자였으며, 영성이 탁월하여 철저한 기도생활로 유명합니다.
그는 수십 년 동안 매일 아침 이렇게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하나님 아버지!” “안녕하세요? 주 예수님!” “안녕하세요? 성령님!” 아주 간단한 기도 같지만 놀라운 기도입니다.
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께 경배하며 그 임재를 확인하는 고백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불가능의 강이 눈앞에 넘실거렸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의 힘으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차지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함께 주심을 믿고 절대 신뢰함으로 불가능의 강을 건너시기 바랍니다.
3. 절대순종의 신앙입니다.
8절을 읽겠습니다.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여기 제사장들에게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에게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에 들어가라”고 명령했을 때, 그 사이에 요단강물이 줄어들었습니까?
아닙니다.
여전히 차고 넘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는 “그 안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합니다.
여러분, 우리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놀랍게도 제사장들은 그 말씀에 그대로 순종합니다.
절대순종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망설이거나, 요령을 피우지 않는 것입니다.
15-17절을 읽겠습니다.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여러분, 언제 강물이 갈라졌습니까?
제사장들의 발이 물에 잠기자마자 물이 갈라져서 양 옆으로 쌓였습니다.
여호수아의 말에 순종한 제사장들도 대단하지만, 그때 백성들도 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경만 하다가 따라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가 그 현장에 있었다고 한번 가정해 봅시다.
아무리 강물이 갈라졌다고 하지만 10-29m되는 강물이 양쪽 옆에 쌓여 있는데, 그 사이로 지나가는 것이 쉬웠겠습니까?
백성들은 믿음으로 순종한 것입니다.
아마 머뭇거리고 그들이 불순종했다면, 그들에게 요단강은 영원히 불가능의 강으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가능의 강이 눈앞에 넘실거려도 두려워 마시고 믿음으로 말씀 앞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하여 요단강을 건넌 백성들에게 “강바닥에 있는 돌을 가져다 기념비를 세우라”고 새로운 명령을 내립니다.
수4:6-7절을 읽겠습니다.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물어 이르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두고두고 요단강을 건넌 것을 기억하고, 다음번에 또 다시 너희 앞에 불가능의 강이 나타난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절대소망, 절대신뢰, 절대순종하여 반드시 승리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고현 믿음의 가족 여러분!
지금 여러분 눈앞에 어떤 불가능의 강이 넘실거리고 있습니까?
인간의 재주나 의지가 아니라 신앙의 힘으로 담대히 건너십시오.
앞으로도 내 인생의 여정 곳곳에 계속해서 불가능의 강은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배운 대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절대소망, 절대신뢰, 절대순종의 원리를 적용하여 승리함으로써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놀라운 축복을 영육간에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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