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설교 - 감사의 능력을 회복합시다 (빌립보 4:4-7)

Johnangel 2015. 11. 9. 15:47

감사의 능력을 회복합시다 (빌립보 4:4-7)

                                                   

여러분은 적자와 흑자의 기준을 어디에 두십니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적자와 흑자의 기준은, 하나님의 기준과는 다릅니다.

바울은 고후5:16-17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했고, 고후6:9-10절에서는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는 예수를 믿은 것만으로도 인생의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빈부에 상관없이 모두가 다 흑자 인생입니다.

하지만 우리 성도들에게는 또 다른 한가지 다른 차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하지 않으면, 신앙생활에 있어서 적자인생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삶의 환경을 뛰어넘는 감사가 그 맘속에 자리 잡고 있는 성도를 가리켜 흑자성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살전5:18절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할 수 있는 사람만이 인생의 길을 영광스럽게 달려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많이 누리고 가졌다 할지라도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실패하고 도중하차합니다.

바울은 주님을 만남으로 인하여 세상이 탈취해갈 수 없는 감사가 그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맥추감사주일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바울은 어떤 사람이었기에 감옥에 있으면서도 빌립보교회 성도들에 대해 “감사의 능력을 지니고 삽시다”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1. 감사는 기쁨의 향기를 뿜어내게 합니다.


4절을 읽겠습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감사는 기쁨 충만한 삶을 가져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명은, 예수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은총에 깊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 앞에서 기뻐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비관주의 자가 될 때, 그 사람은 열매 없는 적자인생이 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체험하고 마음에 감사가 가득하면 낙관주의자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감사는 연약하고 낙심하고 절망한 사람을 붙들어 일으켜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로 채워진 삶에는 부정적인 요소들이 자리를 잡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은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강조합니다.

그가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 믿는 사람은 체험적으로 기뻐할 수 있는 이유와 근거를 분명히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빌1:3-4절에 보면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이라고 했고, 엡1:3절에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할 때에 늘 마음에 감사가 넘쳤습니다.

바울은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감사의 인생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기쁨을 낳습니다.

감사는 항상 기쁨을 동반합니다.

바울의 감사는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사역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은 “주님의 구원 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안에서 항상 긍정적이고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시각 속에서 기쁨의 삶을 확대재생산해야 하는 것입니다.


2. 감사는 관용의 향기를 뿜어내게 합니다.


5절을 읽겠습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감사가 자신과의 관계에서 기쁨을 낳는다면, 대인관계에서는 관용하는 삶의 축복을 가져옵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이 용납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만이 관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이 아니라 넉넉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트레이드마크 즉 “상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넉넉한 마음과 사랑의 가슴으로 우리를 품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은 죄인을 넉넉하게 품어주시는 복된 현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용납과 사랑을 받은 증거는, 우리 마음의 감사제목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까이 있는 가족들과 이웃들 그리고 자신이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도 넉넉하게 품어주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품격과 면모를 갖추시기를 바랍니다.

관용이란, 원래 대인관계에서의 친절함과 너그러움을 의미하는데 “본능의 억제”와 관련된 말입니다.

마음의 감사가 넘치는 사람은 자신을 조절하는데 능숙한 선수가 됩니다.

그러나 마음에 슬픔과 분노가 많은 사람은, 자신을 잘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관용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아니하고, 상호간의 유익을 도모하는 넉넉한 태도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관용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팔아넘긴 형제들에 대하여 원망하지 않았고, 그들에게 복수를 생각하거나 모질게 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본질적인 감사가 요셉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아버지 야곱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형제들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창50:19-21절을 읽겠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으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사람에 대하여 모진 마음을 가지면, 자신의 마음이 파괴되고 상대방도 불편해집니다.

이렇듯 “짧은 인생 가운데 사람들을 원망하며 정죄하며 산다”는 것은, 너무나 큰 인생의 손실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넉넉한 마음은, 주님의 은혜와 구원에 대한 감사의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관용하는 것은, 까다롭게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에게도 해당됩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을 향하여 관용해야 하는 이유는, 나의 삶을 아시고 의롭게 심판하실 주님께서 오실 날이 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 감사는 평강의 향기를 뿜어내게 합니다.


6-7절을 읽겠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감사를 담은 기도와 간구가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환경을 초월하고 환경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평강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에 평강이 없다면, 진지하게 우리의 감사지수를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파격적으로 사랑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파격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빼앗아 갈수 없는 하나님의 평강과 사랑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고현의 성도 여러분!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은혜를 깊이 체험함으로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아갑시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상호간 유익을 도모하면서 예수님처럼 요셉처럼 가까이 있는 가족과 이웃들과 심지어 자신에게 까다롭게 구는 사람들에게도 넉넉하게 관용하면서 살아갑시다.

금번 감사절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 감사의 능력을 회복하여 우리의 심령 속에 환경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평강과 사랑과 축복이 물밀듯 일어나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 고현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