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 (요한계시록 2:1-7)
무엇을 잃어버리면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잃어버리면 대단히 섭섭합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무척 아쉽습니다.
값으로 치면 비록 얼마 되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내게 꼭 필요한 것을 잃어버렸을 때, 그때의 섭섭함과 당혹함이란 이루 말로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로 속상합니다.
그러나 잃어버렸다가 생각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다시 찾았을 때의 기쁨이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너무 좋아서 절로 탄성이 터져나옵니다.
일백 마리의 양을 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중에 한 마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주인은 그 양을 찾아 헤매다가, 천신만고 끝에 잃어버린 양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는 얼마나 기쁘든지, 그 양을 어깨에 메고,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와서, 친구들을 부르고, 이웃 사람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잃어버린 것이 귀하면, 귀한 것일수록 더욱 고통이 심하고 피해가 큽니다.
어떤 사람이 청각을 잃어버렸습니다.
잘 들리던 귀가 어느 날 갑자기 안 들릴 때, 그 답답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남의 말만 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도 잘들리지 않기 때문에, 자기가 지금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잘 알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자연히 정확한 언어표현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점점 말이 어눌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될 수 있는 대로 귀한 것들을 잃어버려서 안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잃어버리면 안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이것만은 절대적으로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1.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귀한 것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귀한 것이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한 사람의 생명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벧후3:8-9절을 읽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렇습니다.
주님이 재림해 오신다고 계속해서 말씀하지만, 속히 오시지 않으므로 인하여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고, 따지는 사람들이 초대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들에게 “예수님의 재림이 곧 이루어질 것처럼 말하면서도 늦어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한 사람도 멸망 받지 않고 회개하고, 모두 다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돈 몇 푼 때문에, 사람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사실입니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입니다.
IBM의 설립자인 “톰 왓슨”의 성공비결 중의 하나는, 사람을 가장 소중한 자신으로 여긴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한번은 젊은 부사장이 매우 모험적인 신제품 개발계획을 가지고 와서 보고했습니다.
왓슨이 “과연 이 사업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이냐?”고 되묻자, 부사장은 “위험부담이 큰 사업일수록 높은 수익률을 올릴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왓슨은 그의 열정을 믿고, 그 사업을 승낙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회사는 1000만 불이라는 거금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사장은 실패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왓슨은 정색을 하며 “무슨 소린가? 자네를 교육하는데 무려 1000만 불을 썼는데, 어떻게 그만둘 수 있는가? 다시 시작하게”라는,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에 용기를 얻은 부사장은, 신제품 개발에 다시 도전하여 성공하였고, 회사는 엄청난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우리교회도 이번 코로나19의 위기 속에 교역자, 총괄, 팀장, 목장의 목자를 비롯하여 모든 성도들을 귀중하게 여기고,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2. 사랑입니다.
사람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잃어버리면, 자연히 사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따라서 사랑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재산이 많아도, 사랑이 없으면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학벌이 좋으면 뭐합니까?
높은 지위에 있으면 뭐합니까?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면서 살면, 살맛이 납니다.
사랑으로 살면, 사람다워집니다.
사랑하며 살면, 행복해집니다.
우리 사람에게서 사랑을 빼면, 짐승보다 더 무서운 인간이 되는데, 인간처럼 무서운 동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가지고 살아야 인간답게 살 수 있고, 사랑을 가지고 살아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클수록 그만큼 행복해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사랑이 없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이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눈에는, 온통 미운 사람만 보일 것이기 때문에, 얼마나 속이 상하고 괴롭겠습니까?
따라서 사람은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만큼 행복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만큼 불행한 것입니다.
사랑을 잃으면, 사람도 잃고, 행복도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사랑을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에베소교회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들어야 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가운데, 가장 크고 대표적인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에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랑을 어느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합니까?
고전13:2-3절을 읽겠습니다.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다시 말해서 “어떤 사람이 믿음이 좋은 것처럼 큰소리치고 굉장한 일을 한다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며, 또 자기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 정도로 희생하고 봉사할지라도 사랑이 없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비중이 이처럼 큰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평생 수고를 많이 합니다.
고생이 되더라도 잘 참고 견뎌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마지막에 가서 “자식을 원망하며 나는 헛살았다.”고 괴로워한다면, 자식에 대한 사랑이 식은 증거입니다.
만일 대가를 바라고 자식에게 투자하고 사랑했다면, 그동안 쏟은 수고와 인내가 헛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사랑으로 수고하고 인내했다면, 끝까지 원망이나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에베소교회는 수고도 많이하고, 인내도 잘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원망과 불평이 많아졌고, 사람들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일이 빈번해졌습니다.
그 이유는, 사랑이 식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사랑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면, 사람의 허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안경을 벗고 사람을 보기 시작하면, 왜 그렇게 그 사람의 허물이 잘 보이는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을 판단하게 되고, 비판하게 되며, 자연히 원망과 불평이 늘게 됩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원망하는 것은, 사랑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에베소교회는 진리를 소중히 생각하고, 진리를 사수하는 교회였습니다.
자칭 사도라 하는 거짓된 자들인 이단세력을 색출하여, 참된 진리를 수호하는 훌륭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사랑이 없었습니다.
그 일로 많은 성도들이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좋은 일은 했지만, 결국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해도, 무슨 일을 해도, 사랑만은 잃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거스틴은 제자들에게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너희는 진리를 한번 강조할 때 사랑은 두 번 강조하라. 왜냐하면 세상은 우리의 사랑을 통해서만 진리를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은 우리가 가진 진리에 대한 관심을 갖기보다는, 우리의 사랑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서 사랑을 발견하게 되면, 그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진리를 받아들이게 되지만, 우리에게서 사랑을 발견하지 못하게 되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게 되어, 결국은 그들이 진리를 발견할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5절에 보면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교회가 사랑을 잃어버리면, 더 이상 교회노릇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주님은 촛대를 다른 교회로 옮기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처음 행위는 무엇을 말은 것일까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나를 미워하고 핍박하는 사람들과 내게 손해를 주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일은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3. 믿음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천국에 갑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믿음으로 기도하여 기도응답을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곧 영생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천국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절대로 믿음을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사랑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따지고 보면,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온전한 사람은, 결코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으면,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게 됩니다.
온전한 믿음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똑바로 아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똑바로 알게 되면, 누구나 그 하나님을 믿고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게 되고, 말씀대로 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온전한 믿음은, 반드시 행함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약2:14절을 보면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만큼 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행함으로 보여주고, 행하는 만큼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온전한 믿음의 사람만 구원받지 않고,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마17:20절을 보면 “겨자씨만큼의 작은 믿음만 있어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산을 여기서 저기로 옮길 수 있고 못할 일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만 받으려 해서는, 안될 줄 믿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흠과 티와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아름다운 성도의 모습으로 살아야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칭찬 듣고 면류관 상급을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로 인하여, 모두가 힘들고 어려운 이때, 우리는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큰사랑을 베풀면서, 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각 목장의 믿음의 가족들을 한사람도 잃어버리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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