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영원한 거처 (요한복음 14:1-6)

Johnangel 2020. 10. 26. 11:43

영원한 거처 (요한복음 14:1-6)

 

우리 모두는 지난 한 주간도 코로나19 사태 속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분주하게 세상살이를 하다가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끔은, 분주한 삶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나는 지금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해보신일이 있는지가 참으로 궁금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속도를 강조하는 시대입니다.

더 빨리 더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려는, 경쟁이 치열합니다.

그러나 우리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입니다.

,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 하루는 그가 제자들을 떠나 어디론가 가셔야 한다.”,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물은, 유명한 질문이, 13:36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대답이, 바로 본문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의 제자들이 이 세상을 떠나 거하게 될 영원한 거처 곧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러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이 마침내 도착할 영원한 거처(, 처소)에 대하여 성경은 무엇을 교훈하고 있는 것일까요?

 

1. 예수님이 친히 준비하시는 장소입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천국의 교훈을 살펴보면, 천국은 하나의 상태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장소입니다.

천국의 본질은, 하나님의 통치에 있습니다.

성경에서 천국은 의의 나라요, 화평의 나라요, 기쁨의 나라.”라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천국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이 의롭고, 평화로운 기쁨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면, 우리 인생에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의로움과 화평과 기쁨의 삶이 시작됩니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에서 맛보는, 천국 경험인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천국은 하나의 완벽한 장소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예비 되어 있다.”, 성경은 가르칩니다.

 

2절을 읽겠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오늘날 우리는 발달된 현대과학의 눈부신 진보를 목격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과학은, 창조주가 엿새 동안 창조한 만물의 신비한 경이로움의 지극히 적은 한 부분을 발견한 것에 불과합니다.

1:3절에서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즉 사도요한은 예수그리스도가 곧 창조주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창조자이신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을 위하여 영원한 거처를 준비하러 간다, 지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가신 이후, 지금까지 준비하시는, 천국은 얼마나 경이로운 장소이겠습니까?

그래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설교자, 목회자인 스펄존 목사는, 천국은 ”surprise kingdom”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surprise party”를 많이 합니다.

그리고 이 파티의 특성은, 파티의 주인공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성공의 열쇠인데, 그 이유는, 주인공이 이 파티를 통해 놀라움을 경험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친히 준비하신 서프라이스 파티인 것입니다.

이런 경이적인 나라, 영원한 거처를,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위한 선물로 준비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 예수를 믿고 따르기로 결심하신다면, 우리는 바로 이 영원한 거처의 주인공이 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예수님과 제자들의 만남의 장소입니다.

 

3절을 읽겠습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쉽게 말해서, 천국에서 일어날 가장 중요한 사건은 우리가 예수님과 다시 만난다.”는 것이고 예수님이 거기서 그 영원한 거처를 준비하고 우리를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하여 파티를 준비하면, 파티의 주인공보다도, 파티를 준비한 사람들이 더 흥분하며, 그 순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계속적으로 우리 인생이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함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만나기를 더 원하신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결국 우리들이 하나님과의 만남은 하나님의 원하심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0여 년 전 우리한국을 대표 할 수 있는 지성인이며, 평론가요, 문화부 장관을 지내신 이어령씨가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된 것이,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청년시절부터 인문학적 지성으로, 때로는 반기독교적 언어를 주저 않고, 종교를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해석하던, 이어령씨의 회심이었기 때문에, 그가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것은, 사건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의 딸의 투병과정에서 목격한 기적이 하나의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지만, 그 자신은 그가 인생의 성숙기에 들어서면서, 경험한 지성의 한계가 더 중요한 요인이었다.”, 스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가 세례를 받기 전, 즉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발표한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1”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 시를 읽어 보면 그의 마음속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는가?”를 우리는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제단에/ 꽃 한송이 바친 적이 없으니/ 절 기억하시지 못하실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너무 적적 할 때/ 아주 가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만드셨습니까./ 그리고 처음 바다에 물고기들을 놓아 헤엄치게 하셨을 때/ 저 은빛 날개를 만들어 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를 때/ 하나님도 손뼉을 치셨습니까./ , 정말로 하나님 빛이 있어라 하시니 거기 빛이 있더이까./ 좀 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당신의 발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 이 때 묻은 손으로 조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이 어떻게 무신론자의 시요, 무신론자의 기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구도자의 기도요, 구도자의 시입니다.

평론가요, 정치인인 이어령 씨를 만나러 오신 하나님이, 그의 마음속에 새겨주신 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동일한 하나님이,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오늘 저와 여러분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그 이유는, 주님께서 친히 준비하신 저 영원한 거처에서, 저와 여러분과 영원을 함께 보내고 싶어서인 것입니다.

 

3. 예수님을 통해서만 갈수 있는 장소입니다.

 

문제는, 예수님께서 그런 영원한 거처를 예비하셨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 곳으로 갈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5절에서 의심 많은 제자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고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이 바로 유명한 6절 말씀인데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걱정하지 말고, 나를 믿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에게로, 그리고 그의 나라인 영원한 거처로 인도하는 길이 되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시작인 1절에서 예수님은 이미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길을 찾고, 진리를 찾고, 생명을 찾고 있는, 우리에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분의 안내를 받아 드리기로 결심만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먼저 우리보다 길을 앞서가며,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또한 영원한 거처인 천국 문에서, 먼저 기다리시다가, 우리의 손을 잡고, 저 영원한 거처로 인도해 들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어령 씨는 무신론자의 기도2” 편을 또 써냈습니다.

이 시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그의 손을 잡고 계신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어렴풋이 보이고 멀리에서 들려옵니다./어둠의 벼랑 앞에서/내 당신을 부르면/기척도 없이 다가서시며/네가 거기 있었느냐/네가 그동안 거기 있었느냐고/물으시는 목소리가 들립니다./달빛처럼 내민 당신의 손은/왜 그렇게도 야위셨습니까/못 자국의 아픔이 아직도 남으셨나이까/도마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나도/그 상처를 조금만 만져 볼 수 있게 하소서./그리고 내 눈물방울이 그 위에 떨어질지라도/용서하소서. 아무 말씀도 하지 마옵소서./ 여태까지 무엇을 하다 너 혼자 거기 있느냐고/더는 걱정하지 마옵소서/그냥 당신의 야윈 손을 잡고 내 몇 방울의 차가운 눈물을 뿌리게 하소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기가 불가능한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거룩한 피를 흘리시고, 죽으실 각오를 하시고, 이 말씀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오직 하나 그것은, 예수님을 나의 인생길에, 유일한 안내자, 완벽한 안내자, 그리고 나의 구세주와 주님이심을 믿고, 나의 삶을 전적으로 의탁하는 것입니다.

 

미국 버지니아주에 조니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의 전도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믿음을 갖게 된 그는, 주일은 물론이고 학교를 오가는 길에, 늘 교회를 들르는 습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교회에 머무는 시간은, 아주 짧은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예배당의 뒷좌석에 앉아서 하나님, 저에요 조니.” 그냥 이 한마디를 하고, 그는 교회당을 나오곤 했습니다.

그는 힘든 일이 생기거나, 아플 때에도, 역시 교회에 잠시 들려 하나님, 저에요 조니이 짧은 인사말을 하고, 교회당에서 나오곤 했던, 그러던 조니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병원에 입원하여 생사를 헤맬 때, 갑자기 그가 환한 미소를 지어서 부모가 물었다고 합니다.

조니야! 무슨 일이 있니?” 그러자 조니는 웃으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어요.”

이에 부모가 깜짝 놀라 뭐라고?” 했더니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조니, 나야. 너의 하나님그리고 조니는, 이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 다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운 삶고 있지만, 이번에 교회에서 진행하는 전세대가 함께하는 성경읽기와, 111일부터 시작하는 다니엘기도회에서, 여기 조니가 만난 그 하나님을 우리 성도들도 만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예비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영원한 거처인 천국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