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누가복음 13:6-9)
오늘은 2021년 마지막 주일로 지나간 일 년을 돌이켜보며, 하나님 앞에 떳떳하지 못했던 삶을 반성하고,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본문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어떤 사람이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포도원에 정성을 다해 심어놓고, 과원지기로 하여금 특별히 잘 관리하도록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이 무화과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기는커녕, 일 년이 지나도 아무런 열매가 없었습니다.
이년 삼년이 지나도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단히 실망한 주인은 과원지기에게 “이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겠느냐”고, 화를 냈습니다.
그러나 과원지기는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라고 애원했습니다.
이 과수원지기의 간절한 부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는데,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의 책임은, 열매를 많이 맺는데 있습니다.
무화과는 글자 그대로 꽃이 없는 나무이기 때문에, 다른 나무에 비해 모양이 별로 아름답지 않습니다.
따라서 관상용으로는, 무화과나무를 심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재목으로 사용되는 것도 아닙니다.
단 한 가지 목적은, 오직 열매를 얻기 위해 무화과를 심는 것입니다.
따라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존재할 가치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대로 둘 이유가 없습니다.
속히 베어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무화과나무는, 도무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15:16절을 읽겠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즉, 물고기를 잡고 살던 어부를 주님께서 제자로 부르시고, 택하신 목적은, 그들이 세상에 나가 열매를 맺게 하고, 그 열매가 항상 있도록 하기 위함이며,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엡2:8-10절을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반드시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도 하나님의 은혜로 얻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하여 주시고, 은혜를 부어주셔서 예수님을 믿게 하시며, 그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신 것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선한 일을 위하여, 좋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믿고 구원 얻은 사람들은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성도가 반드시 맺어야 하는 좋은 열매는 무엇입니까?
1. 전도의 열매입니다.
죽어가는 영혼, 지옥에 갈 영혼을 구원하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나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많이 생기고, 나 때문에 구원받는 사람이 늘어나며, 나로 인해 가족과 친척과 이웃과 친구들이 구원을 받는, 전도의 열매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열매는,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해내는, 전도의 열매인줄 믿습니다.
마28:19-20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예수님은 부활승천하시기전 마지막 부탁을 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들만 예수 믿고 제자의 역할로 끝날 것이 아니라 “땅 끝까지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말씀은 반드시 지켜야 할 명령이며, 우리의 사명인 동시에 막중한 책임입니다.
여러분은 금년에 여러분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습니까?
2. 인격의 열매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믿고 나서 은혜를 받게 되면, 반드시 변하여 새 사람이 됩니다.
따라서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 믿으면 달라져야 합니다.
이것이 열매입니다.
열매가 있는 사람은, 인격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 나온 지 얼마나 되었느냐?”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은 지 오래되었다는, 신앙의 연륜도 결코 자랑거리가 못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나서 인격적으로 얼마나 변화되었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 나온 지 오래되었으나 변화되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되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듣게 되며, 조소거리가 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전도의 열매와 인격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요, 책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가를 들어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되고, 시집을 가서 한 가정의 어머니가 되었음에도, 그 가정을 책임질 줄 모르는 사람들과 같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 안에도,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었는데도, 도무지 제직으로서의 책임을 전혀 지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책임질 일을 책임질 줄 알 때, 그 존재가치가 있습니다.
책임질 줄 모르는 사람은, 존재가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지나간 일 년 동안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3.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7절을 읽겠습니다.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어떤 사람은 좋은 영향을 끼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나쁜 영향을 끼치며 삽니다.
여기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하므로, 주인에게 물질적 손해만 준 것이 아니라, 땅까지 몹쓸 땅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종교지도자들로서, 가장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가장 무서운 책망을 들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도 들어가게 못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의도적으로, 그런 고약한 짓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외식적인 삶, 겉과 속이 다른 진실하지 못한 삶이,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주어서, 이런 나쁜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누구나 처음 교회에 나오면, 어떻게 교회생활을 해야 하는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교회로 인도해준 사람을 통해 배우든지, 아니면 교회에 나온 지 오래 되신 분들의 신앙생활을 가만히 살펴보며, 자신도 그대로 따라하게 됩니다.
이때 좋은 본을 보여주면 좋겠는데, 나쁜 본을 보여준다면 그야말로 큰일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예수 믿고,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 저를 전도한 친구의 형님을 본받아 예수 믿는 사람은 다 그렇게 믿는 줄 알았습니다.
저는 아예 처음부터 예수 믿을 때, 성령충만한 가운데 기도생활을 하고, 충성을 다하며, 믿음으로 사는 그 형님을 본받아 자라났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오순절 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성도들이 열심히 전도를 하여 얻은 별명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염병”이라는 별명입니다.
이처럼 염병이라는 전염병의 별명이 붙은 이유는, 성령충만한 사람들이 어떤 동네에 들어가서 전도하기 시작하기만 하면, 복음이 마치 전염병처럼 번져 그 동네가 온통 예수님을 믿는 동네로 물들었기 때문입니다.
행17:6절을 보면, 또 한가지 별명은 “천하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이라는 별명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데살로니가에 가서 전도할 때, 그들을 보고 사람들은 “천하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이 여기에 왔다.”고, 수군거렸습니다.
이런 별명이 붙게 된 이유는, 이들이 가는 곳곳마다 소동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 가서 전도할 때, 점치는 귀신이 들린 여종이 점을 잘 쳐서 그 주인에게 돈을 많이 벌어주었습니다.
하루는 바울과 실라가 그 여자를 보고 “예수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그 속에 있던 귀신이 즉시 나갔습니다.
그 후 그 여인은, 더 이상 점을 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돈을 많이 벌어주던, 이 여종이 이 일로 인해 돈을 벌어주지 못하게 되자, 금전적인 손해를 입게 된 주인이 몹시 화가 나서, 전도하는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고 때리고, 고발을 하여 감옥에 가두는 큰 소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날 밤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할 때, 큰 지진이 일어나며, 옥문이 열렸습니다.
이 일로 인해 감옥을 지키던 간수가 바울의 전도로 인해, 예수님을 믿고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으며,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와 같이 이들이 가는 곳곳마다 큰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에, 천하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이라는 별명이 붙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이들의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알게 모르게, 남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좋은 영향을 끼치고, 또 어떤 경우에는,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교회를 좋은 교회로 만드는, 좋은 영향력을 주는가 하면, 이와 정반대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땅만 버리는 몹쓸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해있으십니까?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주인이 “3년씩이나 기다렸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겠다.”고, 말합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날마다 심상치 않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다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나와 상관이 없는 남의 일로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결단코 그렇지 않습니다.
“회개하라 속히 회개하라. 다음은 네 차례가 될지도 모른다.”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경고의 사인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설 때, 무릎 꿇고 엎드려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때 칭찬을 듣고 면류관 상급을 받을 사람이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책망을 받고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하나님 앞에 가서 설 때, 어떤 모습으로 서게 될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벌써 죽었어야 하고 벌써 망했어야 하는데, 아직도 망하지 않고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은, 바로 주님의 크신 은혜인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 7-8절의 말씀을 쉽게 풀이하자면, 과수원지기의 간절한 이런 부탁입니다.
“금년 한번만 더 봐주세요. 한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내가 땅을 두루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 후에 만일 무화과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때 찍어버리셔도 더 이상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한번만 더 봐주세요.”
그렇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과수원지기와 같이,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들을 위해 간절히 애원하고 계십니다.
오늘도 우리는 주님의 이 은혜로, 이렇게 살아있는 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은 아직 기회가 남아있다.”는 뜻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은 지금까지 참아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고, 지금부터는 주님께서 기대하시고, 소망하시는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이 시간 새 출발하기로 결심하고 2022년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설교원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시다 (사도행전 1:3) (0) | 2022.01.08 |
---|---|
2022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출애굽기 15:22-27) (0) | 2022.01.03 |
예수 탄생의 의미와 축복 (누가복음 2:1-14) (0) | 2021.12.20 |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여호수아 14:10~14) (0) | 2021.12.09 |
복 받은 사람들 (말라기 3:7~12) (0) | 2021.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