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복 받은 사람들 (말라기 3:7~12)

Johnangel 2021. 11. 29. 08:10

복 받은 사람들 (말라기 3:7~12)

 

학개, 스가랴, 말라기는, 포로기 이후 페르시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말씀입니다.

말라기의 정확한 연대는 나와 있지 않지만, 학개 선지자의 사역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완성된 후에, 쓰여 진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 이유는, 성전에 관련된 메시지가 많이 나오기 때문인데, 말라기는 “외국인과의 통혼문제, 이혼문제, 제사장직의 남용문제, 성전봉사문제, 십일조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에스라, 느헤미야서와 공통점이 있으므로, 에스라, 느헤미야와 비슷한 시대의 사람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3:1절을 읽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 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선지자 말라기는 “하나님의 사자”로서, 앞으로 도래할 하나님의 왕국을 준비하는 역할을 합니다.

성경 속엔 수를 셀 수 없는 사람들의 이름과, 그들이 행한 일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을 크게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복 받은 사람들과, 저주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복을 받은 원인과, 저주를 받은 원인을 규명해 보면, 단순하고 간단한 원인 때문이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그 계명을 지킨 사람들은 복을 받아 번영했고 성공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한 사람들은 예외 없이 저주를 받았고 실패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의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읽고, 배우고, 가르치고, 암송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성경구절을 써서 암송하고, 그것을 손목에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세계민족 가운데 가장 두뇌가 우수한 민족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영재교육, 조기교육이라 해서, 4-5세부터 과외를 시킵니다.

과외도 한두 가지가 아니라, 영어, 피아노, 미술, 웅변, 컴퓨터, 태권도 등을 가르칩니다.

뿐만 아니라 자녀교육을 위해,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네덜란드, 호주, 캐나다, 미국 등지에 가 있고, 남편은 혼자 한국에서, 김치 담그고, 라면 끓여먹으며 삽니다.

이처럼 “외롭게 홀로 하늘 바라보며 산다.”고, 해서 “기러기 아빠”라는 별명도 생겨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는 노벨 의학상이나, 문학상을 받은 일이 없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받았던 평화상은, 대한민국건국 이래 최초의 사건입니다.

1901년에서 2020년까지 120년간 물리, 화학, 의학 등 자연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은 564명이라고 합니다.

평화상은 세계평화에 기여한 공로만 있으면 받기 때문에, 머리가 나빠도 상관없지만 물리, 화학, 의학은, 머리가 뛰어나야 합니다.

 

노벨상을 받은 564명의 종교를 분석하면, 기독교 65%, 유대교 22%, 천주교 11%, 불교 0.9%, 회교 0.1%입니다.

기독교, 유대교, 천주교를 합하면 98%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부르고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들이 두뇌가 좋아 노벨상을 수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을 받은 나라를 꼽아보면, 스위스, 스웨덴, 덴마크, 네델란드, 영국, 미국, 독일 순으로, 모두가 기독교 국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태인으로 상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기독교 국가에 정착해 살면서, 연구한 사람들입니다.

그동안 러시아는 미국과 과학기술개발을 위해 비슷한 예산을 투입했으나, 노벨상 수상자는 미국의 15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고, 예수를 믿는 나라가 선진 국가이며, 경제 부강국가이며, 노벨상 수상국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성경을 읽고 공부합니까?

그것은 성경대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우린 그런 맥락에서 본문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저주받은 이유를 찾아봅시다.

9절을 보면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받은 저주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바벨론의 침략으로 나라가 망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개인적으로 겪는 시련이었습니다.

가정에 시험이 오고, 농사가 잘 되질 않고, 우환과 재난이 겹쳤습니다.

 

그 이유를 본문이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7절을 보면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려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떠나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15:11절 이하를 보면, 아버지를 떠난 탕자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아들은 아버지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었습니다.

“일찍 일어나라, 일해라, 왜 늦게 들어오느냐? 그러면 안 된다.”라는, 잔소리가 듣기 싫었고, 도시의 유혹이 그를 손짓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도 독립하여 성공해야 한다.”며, 아버지를 떠났습니다.

 

15:13절을 보면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했다.”고 했고, 14절을 보면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엔 흉년이 들어 저가 궁핍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가 아버지로부터 떠난 후에, 일어난 변화들이 있습니다.

신분이 변했습니다.

부잣집 둘째 아들이 거지가 되었습니다.

거처가 변했습니다.

고급저택에서 살던 사람이 돼지우리에서, 잠자는 노숙자신세가 되었습니다.

음식이 변했습니다.

영양가 높은 고급음식을 먹던 사람이, 돼지가 먹는 음식을 주워 먹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버지는,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아들은 하나님을 떠나고 싶어 하거나, 떠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누구라도 하나님 떠나면, 신분과 거처와 음식이 변합니다. 불행하고 나쁜 쪽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7절은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고, 했고, 15:17절을 보면 “이에 스스로 돌이켜”라고 했고, 15:20절을 보면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고 했습니다.

 

14:1절을 보면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했고, 호14:2절을 보면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라고 했습니다.

돌아오는 것은 회개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라도 언제라도 돌아오면 용서하시고 받아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믿고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도 나에게 돌아오신다.”는, 말씀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그 뜻은 우리가 돌아오면 “우리를 만나 주신다는 것이고, 용서하시고, 교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2, 도적질을 했기 때문입니다.

 

8절을 보면 “사람이 어찌하여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라고 했고, 9절을 보면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고 했고, 10절을 보면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십일조 하지 않는 것을 도적질이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2장에 보면, 아담과 하와에게 따먹어도 되는 것과, 따먹어서는 안 되는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선악과는 손대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십일조 역시 내 것이 아닙니다.

열을 벌면, 그 중 하나는 십일조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14:17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그 당시 대제사장인 멜기세덱을 만나 십일조를 드린 기사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율법으로 십일조가 제정되기 400년 전 사건입니다.

창세기 28장을 보면,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이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서원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7:30절을 보면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고 했고, 역대하 31장과 신명기 14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일조 드릴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23:23절을 보면, 예수님도 “구약에서 지키던 일들(십일조)을 버리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십일조의 몇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모든 것은 하나님이 만드셨고, 하나님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대상29:11-17절을 보면, 다윗은 “권능, 영광, 승리, 권세, 능력, 천지에 있는 것의 주권이 다 주께 속하였나이다.”라고 했고 “부와 귀도 주께로 말미암는다.”고 고백합니다.

따라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물질, 건강, 시간, 생명은, 내 것이 아니라, 나를 만드시고 주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둘째, 감사함으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들이 너무나 많고 큼을 인하여, 감마지 못해서가 아니라, 감사와 감격함으로 기쁨으로 드려야 합니다.

 

셋째, 온전히 드려야 합니다.

 

십일조는 최저표준이지 최고표준이 아닙니다.

믿음의 분량을 따라 10의1이 아니라, 전체를 다 드려도 됩니다.

 

넷째,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십일조는 내 것이 아닙니다.

소유권과 사용권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내가 내 멋대로 쓰면 안 됩니다.

 

다섯째,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 드려야 합니다.

 

내가 속해있고, 은혜 받고, 섬기는 교회에 드려야지, 내 멋대로 여기저기 구제하듯 나눠주거나 찢어 쓰는 것은, 바른 십일조가 아닙니다.

바르게 관리하고, 바르게 바쳐야 합니다.

 

3.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10절을 보면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했고, 11-12절을 보면 “메뚜기 떼를 금하겠다, 포도나무 과실이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해 주겠다,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게 해주겠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너를 복 받은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일조를 철저하게 드리는 사람들이 받는 복이 어떤 것인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메뚜기가 수천만 마리가 날아오면, 비행기 날아오는 소리처럼 들리고, 해를 가리워 하늘이 어두워집니다.

그 메뚜기 떼가 한번 지나가면, 곡식과 식물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또한 포도가 무르익었는데, 수확하기 전에 다 떨어져 버리는 것은, 헛수고일 뿐입니다.

이것은 기한 전에 포도가 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십일조를 시작하면 그런 일들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그 메뚜기 떼를 막아주시고, 너희 땅이 회복되어 아름답게 되고, 그곳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살만한 곳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은 12절에서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 말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세계적인 부자 록펠러는, 철저한 십일조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경건한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물려준 교훈이 있습니다.

1. 주일예배는 본 교회에서 드려라.

2. 예배는 맨 앞자리에서 드려라.

3. 주의 종과 다투지 말라. 친아버지처럼 모셔라.

4. 십일조를 철저히 드려라.

이 신앙의 교훈을 그대로 순종한 록펠러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아, 자기 회사 안에 십일조 전담팀을 만들고, 40명의 직원이 십일조를 관리하게 했습니다.

세계적인 부자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도 십일조를 하는 사람이 되게 해달고 기도합시다.

그리고 이런 일 저런 사정으로 십일조를 못한 사람들은, 지금 당장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기로 결단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아 이웃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모든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