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성숙 (베드로전서 2:1-5)
일반적으로 “발달 장애자”란, 정신이나 신체가 나이만큼, 발달하지 않은 미숙한 자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이런 아이를 둔 가정의 부모가 겪는 아픔은, 말로 헤아리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성숙의 과정에도 “발달 장애자”가 있습니다.
하나는, “명목상의 기독교인”들, 즉 거듭남의 확신도, 구원의 확신도, 없이 교회만 출석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구원은 받았지만, 전혀 영적으로 자라지 못한 “미성숙한 교인”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한국교회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종교인이 적지 않습니다.
교회의 의식이나 전통에는 익숙지만, 신앙인격의 변화가 부족한 사람들을 가리켜 “종교인”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를 다닌 연수는 오래되어도,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합니다.
몸은 비대하지만, 신앙의 근력이 아니라, 종교적 껍데기만, 굳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교회를 다녀도, 변화가 없고, 성숙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것은, 목양을 하는 목회자의 고민이요, 또한 신앙인의 숙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 신앙 연수를 뛰어넘어, 진정한 신앙 인격의 성숙으로 들어가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영적으로 자라가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1. 영적 아이 됨의 상태를 인지해야 합니다.
벧전2:2절을 읽겠습니다.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베드로는 “우리가 먼저 영적으로는 젖을 먹고 자라가야 할 갓난아기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도 고전3:1-2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그렇다면 이런 영적 미숙아의 특성이 무엇입니까?
성경의 학자들은,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아직 말씀을 잘 먹지 못하고,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영적인 영양의 결핍(말씀의 무지)과, 다른 하나는, 삶의 관점에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아직도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고, 늘 시기하고, 미워하고, 싸우며 산다면, 그는 교회생활의 햇수나 직분과 상관없이, 아직도 영적인 미숙아라는 것입니다.
1절을 보면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라고 했고, 고전3:3절에서는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아직도, 이런 불신자로 살던 시절의 삶의 관행이었던, 미움과 거짓, 시기와 질투가 남아 있다면, 나는 영적인 미숙아임을 알고, 영적성숙의 필요를 절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영적성숙의 필요를 느끼는, 이런 각성이야말로, 바로 영적성숙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 영적인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기독교를 대변하는, 세계적 작가인 “필립 얀시”는, 그가 쓴 책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은혜는 성육신이나 부활보다 더 중요한 기독교신앙의 특성이며 은혜를 가르치는 종교는 아무 데도 없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은혜의 뜻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조건 없이 베풀어지는 사랑”을,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받아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엡2:8-9절을 읽겠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그렇습니다.
우리 중에 행위로, 구원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이것을 가리켜 “오직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 사도 역시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처럼 “우리의 영적성숙도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가르칩니다.
벧후3:18절을 읽겠습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이 말씀은, 베드로의 유훈과도 같은, 그의 마지막 당부입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우리 모든 성도들은, 주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가장 근본적이고도, 중요한 은혜이지만, 구원이 은혜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우리에게 주실 온갖 은혜가 충만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건강한 성도에게는, 이런 은혜의 목마름과 배고픔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더 이상 은혜를 사모하지 않겠다.”는 것은, 영적으로 병든 증거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치 병든 사람이 식욕을 상실하듯이, 영적건강을 상실하면, 은혜를 사모함이 없어지고, 그의 영혼은 메마른 사막이 되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메마른 사막에 생명의 강이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은혜의 유일한 통로가 “기도”라고, 가르칩니다.
히4:16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는 늘 주님 앞에 서기에, 부족한 존재이지만, 기도로 우리를 돕는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면서, 우리는 영적으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3. 영적인 지식을 학습해야 합니다.
벧후3:18절을 읽겠습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적성숙의 본질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의 삶의 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를 알아가며, 그분을 닮아 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지식을 알려주는 책은,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순전하고 신령한 젖”이라고, 말합니다.
어린 아기가 좋은 젖을 먹고 자라는 것은, 필수적인 성장의 조건입니다.
따라서 엄마의 젖은 아기의 생명줄이요, 건강 줄이기 때문에, 건강한 아기는 배고플 때, 엄마에게 젖을 달라고, 보채고 웁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목마름과 배고픔을 갖고 있습니까?
저는 7년 동안 신학을 전공하고, 43여 년 동안 목회를 하며, 성경을 연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성경은 나에게 있어, 신비로운 책이고, 여전히 저의 영적 갈증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성경을 읽고, QT하며,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교회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오기 전까지는, 영적아기들의 성숙을 도울 목적으로, 교회에서 체계적인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성경공부와 제자훈련도 없이 예배에만, 참석하는 교회생활 40년보다, 제자훈련과 성경공부를 통한 체계적인 배움의 4개월이, 믿음생활에, 더 실제적인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우리교회 모든 성도들이 다시 하나님의 은혜에 목말라하며, 기도의 무릎을 꿇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모습을, 정말 보고 싶습니다.
지나간 교회역사에서 보면, 모든 위대한 부흥은, 성도들이 진실로 기도의 무릎을 꿇기 시작하고, 성경연구를 위해, 말씀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시작할 때, 일어났습니다.
그럴 때, 가정이 새로워졌습니다.
교회가 새로워졌습니다.
사회가 새로워졌습니다.
민족이 새로워지고, 다른 나라 민족에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에반 로버츠(Evan Roberts)라는 이름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는 20세기 초 1904년 영국 웨일즈에서, 일어난 거대한 부흥운동의 주역이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많이 배우지 못한 광부의 아들이었지만, 20대 청년시절 교회에서, 주일학교 팀장으로 봉사하며, 어느 부흥집회에 참석했다가 “나를 굴복하게 하소서”라는, 주제에 깊은 감동을 받고, 말씀과 기도하는 일에, 자신을 온전히 굴복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그는 기도하는 중에 “너를 통해 10만 명의 불신자들이 주께 돌아올 것이라는 환상”을 받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그가 섬기던 작은 교회에서, 17명의 성도들과 더불어 기도회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시작한 기도회의 불길은, 웨일즈 전역에 영적부흥의 불길을 퍼트리며, 그가 기도 가운데 본 환상 그대로 웨일즈에서만, 10만 명의 불신자들이 주께 돌아오게 되었고, 이 영적각성의 소식과 부흥의 불길은, 전 세계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 웨일즈 부흥운동의 현장을 방문하여 목격한 사람 가운데, 하워드 존스톤(Howard A. Johnston, NY)박사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는 1906년 9월 한국을 찾아와 선교사 모임에서, 웨일즈 부흥의 소식을 전하게 됩니다.
이어서 그는 1906년 10월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면서, 설교가운데 “에반 로버츠”를 이야기하며, 에반 로버츠처럼, 부흥의 도구로 쓰임 받기를 원하는 한국인은, 손을 들어보라고 말합니다.
이때 손을 든 사람이, 당시 평양신학교 졸업반 학생이었던 길선주장로였는데, 그는 신학교를 졸업한 후 목사가 되어, 이듬해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위대한 20세기 초의, 세계적 부흥운동의 단초는, 26살 먹은 한 청년의 “주님, 제가 온전히 주님께 굴복된 삶을 살게 하소서”라는, 기도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영원토록 변함없는 주님 앞에서, 우리가 “주님, 제가 온전히 주님께 굴복된 삶을 살게 하소서”라고, 결단하고, 말씀에 순종하면, 코로나19펜데믹 상황에서도, 우리는 영적성숙을 경험하며,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교회를 오래 다녀도 성숙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속에서 끊어버려야 할 것을, 계속적으로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손에 검정 숯을 쥐고는, 결코 흰옷을 입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공동체를 깨뜨리는 것은,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반드시 말씀으로, 그 빈 공간을 다시 채워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온갖 애를 쓰지만,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다시 세워주십니다.
이번 설 명절에도, 성경읽기표에 따라 쉬지 않고, 매일매일 마다 성경읽기를 계속합시다.
그리하며 우리 안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말씀을 읽고, 순종하며, 기도하므로 말미암아, 영적근육을 단련하여, 코로나19펜데믹이 종식되고 난 후에, 주님의 손에 붙들려, 영적부흥의 주역들로 쓰임 받는, 성령 충만한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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