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이루어지다 (사도행전 1:16~20)

Johnangel 2022. 1. 28. 10:38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이루어지다 (사도행전 1:16~20)

 

120명이 모인 다락방에서베드로가 가룟 유다로 인해 결원이 된 열두 번째 사도를 뽑기 위해 “형제들아”하고운을 뗀 뒤성경을 인용하여 말을 이어갑니다.

 

베드로에게서 이제 무식한 어부의 모습은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16절을 읽겠습니다.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베드로는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해유다에 관해 예언하신 것을 전하며가룟 유다가 자기 직분을 버리고 떠난 것은성경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라는결론을 내립니다.

 

시편에는 “하나님이 장차 보내주시겠다.”고하신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가득 담겨있습니다.

어떤 것은 직접적으로또 어떤 것은 간접적으로예수그리스도 안에서성취될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다윗을 통해시편에 표현되는 “나”라는 표현은메시아와 연결되는 부분이 많고다윗을 대적하는 원수는예수님을 반대하고저항하던 이들을 상징할 때가 많습니다.

궁극적으로 이 원수는하나님께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완전히 멸망당할 마귀바로 그 자체입니다.

 

109:8절에 보면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라고했습니다.

따라서 이 예언이유다에게 적용된 것을 볼 때그는 용서받지 못할 표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비록 베드로가 예수님의 원수에 대한 예언을 유다에게 적용했지만 “하나님이 꼭 가룟 유다를 염두에 두고 이 예언을 하셨다.”고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하나님이 가룟 유다를 아예 태어날 때부터배반자로 결정하신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이미 다 작정해 놓고 “왜 유다에게 책임을 묻느냐?”고따집니다.

그러나 “알고 계셨다.”는것이 “가룟 유다의 자유의지를 완전히 제거한 채그를 운명에 몰아넣었다.”는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가룟 유다를 알고 계셨지만그 행동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생각하고계획하고실행한 것은가롯 유다 자신입니다.

 

다만 베드로가 시편의 예언을가롯 유다에 대한 기록이라고 결론내린 것은이미 모든 사건이 백일하에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숙명적으로가롯 유다를 지목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지예수그리스도를 대적할 수 있는모든 원수를 염두에 두고예언하신 것입니다.

사도들은 가룟 유다에 적용된 시편 말씀을 이야기하면서“예수를 팔아먹은 죄악과 그로 인해 사도의 직분을 빼앗긴 책임이 그 자신에게 있다.”고결론지었습니다.

 

여러분하나님이 유다에게 사도의 직분을 버리게 하셨습니까아니면 유다 자신이 그것을 버렸습니까?

25절 하반절에 보면 베드로는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고말했습니다.

즉 사도의 직분을 버리고자기 갈 길로 가 버린 것은하나님의 뜻이 아니라유다 스스로 결정한 일이었습니다.

사도들은이 문제를 절대로 혼동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결정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소위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와 혼동하지 않았다.”는사실입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의 머리로는모두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그분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가룟 유다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27:5절에 보면 “그는 목을 매어 자살했다.”고 했고1:18절에서는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왔다.”고기록되어 있습니다.

종합해 보면가룟유다는 목을 맸고그 줄이 끊어지면서곤두박질해 내장이 파열되는끔직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가룟유다와 관련해우리가 한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다가 죽기 전에 불의 삯으로 받은 “은 30으로 밭을 샀다.”는내용입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가룟유다는 밭을 사지 않았습니다.

받은 돈을 성전에 가서 집어던지고그는 자살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밭을 샀을까요?

짐작하건대대제사장들이 이것은 더러운 돈이요피의 돈이니까금고에 넣지 말고따로 쓰자고 해서소위 나그네를 위한 묘지를 산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 주체가 왜 대제사장이 아닌 유다로 기록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룟 유다의 이야기는 25-30년이 흐른 뒤사도행전의 저자 누가가 자료를 수집해 기록한 책으로서불과 30년도 지나지 않았는데왜 이렇게 기록되었을까요?

 

제일 건전한 해석은이것이라고 봅니다.

“대제사장들이 밭을 산 것은 사실이지만가룟유다의 이름으로 샀다그러므로 후세에 전할 때가룟유다가 그 밭을 산 것으로몇 십 년 동안 내려온 것을누가가 그대로 쓴 것이다.

 

가룟유다가 “왜 예수님을 팔아 넘겼느냐?”에 대해서는학설이 분분하지만아무튼 유다는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은 30을 받고팔아넘길 때만 해도그는 그 죄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범죄 후자살했습니다.

막상 저질러 놓고 보니 “그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실감하게 된 것은우리에게 깊은 깨달음을 던져 줍니다.

 

우리는 모두 다 죄를 범한 경험이 있습니다.

죄를 범하기 전에는전혀 그 죄의 심각성을 모릅니다.

 

그러다가 죄를 범한 다음에야 비로소 “아차!”하고양심의 가책과 두려움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우리는 왜 죄를 짓기 전과 죄를 짓는 순간에는그 죄의 심각성을 잘 보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죄를 바로 보지 못하도록혼미하게 만드는 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우리의 마음을 혼미하게 합니다.

 

우리 조상 하와가 사탄의 유혹에 빠졌을 때에도선악과가 탐스럽고 먹음직하게 보았습니다.

하와는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는것입니다.

 

가룟유다도예수님을 팔 때는완전히 눈이 가려져 있었습니다.

가룟유다는예수님을 팔아넘긴 다음에은 30을 얻었지만나중에는그 돈이 미웠습니다.

쳐다보기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갖다 내동이 쳤습니다.

나중에는 자기 몸뚱이도 싫었습니다.

자기 생명조차도 싫어서자살해 버렸습니다.

죄의 말로가흔히 그렇습니다.

 

돈이든쾌락이든아니면 어떤 사람이든 간에죄를 범하여 부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은결국 사랑이 아닌 미움의 대상이 된다는것입니다.

 

이에 대한 참 적절한 예를 든다면다윗의 아들 암논이 그의 배다른 누이 다말을 강간한 일입니다.

자기 누이를 얼마나 연모하고 사랑했던지그는 상사병에 걸려 드러눕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주 악한 친구를 통해 계략을 얻어서누이를 끌어들여죄를 범하게 했습니다.

 

성경은 그 이후를 뭐라고 기록합니까?

삼하13:15절을 읽겠습니다.

“그리하고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마음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

 

그렇습니다.

죄를 범해 얻은 것은결국에 미워하게 됩니다.

죄를 범할 때는이것만 소유하면내 욕심대로 할 수만 있다면더 이상 소원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범죄 한 후에는그것을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유다에게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것은 용서받지 못한 죄의무서움입니다.

유다는죄를 용서받지 못했습니다.

흔히 우리는 “유다가 왜 예수님께 가서 빌지 않았을까회개하면 주님께서 다 용서해 주셨을텐데..”하고생각합니다.

그러나 유다의 죄는용서받지 못할 죄였습니다.

왜냐하면성령을 거역한 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당시 “대제사장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다.”는기록이 성경에 있습니까?

“예루살렘에서 그처럼 부흥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많은 제사장의 무리가 예수님께 복종하고 회개하고 돌아왔지만가야바나 안나스 같은 대제사장이 회개하고 돌아왔다.”는기록은 없습니다.

왜냐하면그들은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성령을 거역한 죄일까요?

가룟유다는 분명히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며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입니다.

또한 사도들과 함께 전도여행을 할 때누구와 짝이 되어 갔는지는 모르지만그때 이미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통해성령의 능력을 입었던 사람입니다.

분명히 유다는이적을 행하고귀신을 쫓아내며병 고치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라회개하라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선포할 때많은 사람이 그의 메시지 앞에 회개하고돌아오는 역사도 있었습니다.

 

분명히 가룟유다는성령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입니다.

가룟유다는 예수가 절대로 평범한 인간이 아니요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라는것을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행하심과 말씀을 통해가룟유다도 보고 들은 것으로그분이 누구신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분명히 그에게 깨닫는 은혜를 주셨지만그는 자기 욕심 때문에 끝까지 성령을 거역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 성만찬에서주님이 얼마나 지긋하고 진실하게유다에게 깨우칠 기회를 주셨습니까?

그때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는유다가 100번 회개하고도남을만한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26:25절을 읽겠습니다.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예수님이 그의 마음속을 깨뚫어 보시고분명하고도 의미 있게 말씀해 주셨지만그는 끝까지 거부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가룟유다는용서받지 못할 죄를 짓고만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 가룟유다처럼끝까지 거역하다가 결국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완악한 인간이 우리교회 안에 과연 있을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진실로 사랑하고신실한 은혜를 받은 자는그렇게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가룟유다를 통해 놓쳐서는안 될 중요한 사실들을 깨달았습니다.

 

①죄를 범하기 전에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

②죄를 지어서 얻은 것은 결국 미워하게 된다는 것 ③성령을 거역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죄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주여제가 가룟유다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성령께서 날마다 제 눈을 열어주시고주님의 말씀이 항상 제 발의 등불이 되어서제가 바로 보지 못하거나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인도하시고지켜 주옵소서

제 힘으로는 절대로 안 되오니주여 나를 도와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