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주님의 비전을 가진 자 (마태복음 4:18-22)

Johnangel 2023. 4. 2. 22:32

주님의 비전을 가진 자 (마태복음 4:18-22)

 

주님께서 부르신 12제자들을 가리켜 우리는 “사도”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사도들을 통해 “교부”들이 나왔고, 이 교부들의 헌신과 복음전파를 통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복음이 전해져서, 우리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의 부르심은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가장 아름답고 중요한 장면인 것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만이 비전을 주십니다.

 

19절을 읽겠습니다.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이 말씀에서 강조점은 “나를 따라 오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을 얻은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경험하기 위해서 반드시 예수님의 비전을 소유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야망을 갈망하지만, 부르심을 받은 우리에게는 주님께서 비전을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야망과 비전은 목적이 다른 것입니다.

왜냐하면 야망은 “자신의 욕심”이 목적이지만, 비전은 “하나님의 영광”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따라오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이 비전의 출발점인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를 믿고 따르는 우리의 비전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요구인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거룩한 환상을 보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결단하고,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대언자로 살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왜 오늘 날 한국교회가 힘이 없다고 여러분은 생각하십니까?

내 인생을 투자할 정도로 열려있는 비전, 주님께서 주신 꿈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도 적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4-16절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수님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블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방의 빛이시고, 흑암에 앉은 자들과 죄악에 물든 자들에게 유일한 빛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만나는 자들은 예수님의 비전을 갖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만이 우리 인생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예수만이 인생에게 꿈을 주십니다.

 

전 연세대하교 총장이셨던 백낙준 박사님은 “나이가 80이라도 꿈을 가지고 있으면 젊은이”라고 말했고, 미국 새들백교회 담임목사인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비전이란 “내 마음속에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미래의 그림”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빌 하이벨스 목사님의 책을 볼 때마다 그분의 거룩한 꿈이 저의 마음속에도 담아지기를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마틴 루터와 요한 칼빈을 사용하시고, 주기철 목사님을 사용하시고,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을 사용하신 주님께서 부족한 저도 반드시 사용하실 줄을 확신합니다.

 

2.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비전을 주십니다.

 

20절을 읽겠습니다.

“그들이 곧 저희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여러분, 어부가 그물을 버리면 그 순간부터 어부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따르는 일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존귀한 일이기 때문에 마음을 담아서 주님을 따르는 것을 마태는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나는 어부가 아니기 때문에 버릴 그물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또 다른 형태의 그물들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22절을 보면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고 했습니다.

무론 우리 기독교는 효도의 종교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그것은 주님의 부르심은 우리가 미룰 수 없는 부르심이기 때문에, 주님과의 관계에서 어떤 것도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심각한 부르심입니다.

여러분의 가족관계를 누가 깨뜨릴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자기 부친을 장사하고 오겠다”고 하던 사람에게, 주님은 “나를 먼저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적인 혈연의 관계가 영적인 관계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젊은 관원이 “주님이여 나에게 영생의 비밀을 깨닫게 해 달라”라고 부탁할 때 주님은 “너의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구제한 다음에 나를 따라 오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젊은 관원은 슬픈 기색을 하고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젊은 관원은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물질이 주님을 따르는데 있어서 장애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은 모두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도 안목의 정욕도 이생의 자랑도 지나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영혼의 세계까지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직 주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영원한 것을 소유하게 된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이 인생을 보장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섬긴 믿음의 과거와 주님을 따르던 선행과 헌신만이 우리 하나님의 나라에 가져갈 수 있다고 우리주님은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 앞에 쓰임받기 위해서는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데 장애물이 되는 것은 하나하나 제거해야 합니다.

눅9:23절을 보면 주님은 예수님을 따라오는 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왜 오늘날 현대 교회가 매력이 없는 교회로 전락하고 있습니까?

초대교회는 주님을 따르는 거룩한 충성과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성도들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거룩한 열정이 가슴에 와 닿기는 하는데 초대교회의 성도들보다는 덜한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는 성도라고 말하지만 성도다운 거룩한 삶과 기질과 당당함이 없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하나님께는 거룩한 비전이 있었습니다.

온 지구촌에 백성들이 주님의 백성이 되는 꿈을 꾸셨습니다.

청사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했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거부하면 우리는 절대로 주님을 잘 따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3.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비전을 가진 공동체입니다.

 

우리 교회는 현상 유지만 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지난 과거를 미화시키고, 또한 과거를 답습하는 교회도 아닙니다.

미래 지향적인 교회로 21세기를 준비하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교회를 주신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배와 훈련의 공동체로서, 그리고 증거와 전도의 공동체로서 우리에게 고현교회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비전 공동체로 우리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교회가 방황하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단맛과 기쁨과 능력을 회복하는 아름다운 지역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먼저 내가 다니고 싶고,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시고 와서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손에 손을 잡고 주님을 섬기고 싶은 그런 교회가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균형잡힌 교회, 문턱이 없는 교회로 헌신을 기쁨으로 삼는 교회, 그리고 세상의 어떤 지위보다도 고현교회의 교인됨을 더 귀하게 여기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세상을 향해서 열린 교회가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자기성숙에 힘쓰는 교회가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지역사회를 향해서 문이 활짝 열린 교회로서 아름답게 쓰임 받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미국의 해리 트르만 대통령은 “지도자란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을 하게하고 나중에는 그 일로 인해서 좋아하고 행복을 느끼게 만드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교회란 일반 회중들이 하기 싫어하고 기피하는 일을 먼 안목을 가지고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들이 하기 싫어하던 일을 통해 행복과 기쁨을 맛보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도력을 행사하는 교회는 다른 교회들보다 앞서가는 것이 그 특징이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오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복음 전도자는 책상에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 전도자는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복음 전도자는 위기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17절을 읽겠습니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오늘날 이 세상의 적지 않은 많은 교회가 현상유지에 만족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꿈을 받은 자로서 결코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과 지역사회에 헌신하는 아름다운 꿈이 있다면, 우리 모두는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그 거룩한 부르심 가운데 온전히 붙잡혀야 하겠습니다.

이렇듯 주님을 섬기면 섬길수록 더 좋고, 교회에 오면 올수록 더 좋은 교회로서 예수 믿는 단맛이 철철 넘치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