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복음 전도에 미쳐야 할 이유 (고린도후서 5:13-21)

Johnangel 2023. 4. 29. 22:19

복음 전도에 미쳐야 할 이유 (고린도후서 5:13-21) 

 

어떤 분은 말하기를 “신바람은 우리 민족정서의 원형질”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민족은 “신바람이 나면 두려운 것도 불가능한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민족은 신바람에 취할 때, 배고픔도, 서러움도, 원망도, 자질구레한 일상사에 얽매였던 자신도 잊고, 현실을 떠나 탈혼의 경지인 더 큰 세계로 빠져 들어갑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에게는 이런 신바람으로 어렵고 힘든 일상의 격랑을 헤쳐 온 축제의 정서가 존재합니다.

제가 어렸을 농촌에서 일하시던 어른들을 생각해보면, 무더운 여름의 폭염아래서도 김매기는 김매기가 아니라 축제였습니다.

소리꾼과 일군들이 어우러져 선창, 후창으로 노래하며 어깨를 들먹이면서 춤추고 일하다 보면, 어느새 김매기는 끝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바람의 현장입니다.

이런 신바람은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집단적 헌신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저는 IMF의 한파가 이 땅을 찾았을 때, 대통령의 호소 한마디에 나라를 살리자고 결혼반지 돌 반지 싸들고 은행으로 달려가 거국적 금 모으기에 줄을 설수 있었던 것도 우리 민족 안에 잠재된 신바람정서의 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13절에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이라는 사람은 정말 미쳐서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도대체 바울은 무엇에게 왜 미쳤을까요?

 

1.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미쳐 살았습니다.

 

14절을 읽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한 강권이란, 꼼짝 달싹 못하도록 붙잡힌 모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붙잡혀 자기는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뜻으로서, 그는 지금 사랑의 열병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는 두 가지 이유를 들고 있는데, 우리가 정말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의 사랑에 빠져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첫째 이유는, 그는 나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14절을 하반절에 보면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사랑은, 대부분 이기적인 동기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부라도 서로를 위해 죽는 것이 쉽지 않고, 부모와 자식 간이라도 부모를 위해 죽는 자식은 거의 드물고, 자식을 위해 죽는 부모도 찾는 것이 결코 흔한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부모도 자식도 아닌, 나와 같은 민족도 아닌,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돌아가신 것이 만약 사실이라면 이것은 정말 사건 중의 사건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사실이라면 나를 위해 목숨을 던지신 그 분과의 사랑에 빠지는 것은 이해할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바울은 롬5:7절에서 “이 세상에서는 의인이나 선인을 위해 죽는 일도 쉽지 않은데 그리스도는 죄인인 나를 위해 죽으셨다 그러므로 이것이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롬5:8절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말합니다.

 

남동생의 뒷바라지를 위해 시집가기를 거절하고, 평생을 희생한 어느 간호사의 간증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동생도 누나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권했고, 주변 사람들도 좀 지나친 것이 아니냐고 말했지만 오직 그녀는 동생만을 위해서만 살았다고 합니다.

그녀가 세상 떠나기 전, 그 이유를 “자기가 사춘기 시절 수혈을 받을 필요가 있었는데 특이한 혈액형이어서 피를 구하기 어려웠는데 마침 어린 남동생이 같은 피형이어서 수혈을 자원했다”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혈이 끝난 후, 이 남동생이 입원실에서 의사선생님에게 뜻밖에 “선생님, 저는 언제 죽게 되나요?”라고 묻더랍니다.

이 소년은 수혈의 의미를 충분히 모른 채, 자기가 죽기를 각오하고 누님을 위한 수혈에 임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후에 전해 들었던 이 누나는, 그때 하나님께 “저는 평생을 제 동생을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서원기도를 했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 결심을 실천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자기를 위해 죽을 결심을 하고 수혈한 동생을 위해, 한 여인이 동생에게 빚진 마음으로 그 동생을 사랑하여 일생을 동생을 섬기는 일에 헌신했다면, 우리를 위해 실제로 십자가에서 죽어주신 그분과의 사랑에 빠져 살아가는 것이 지나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둘째 이유, 그가 나의 삶의 이유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15절을 읽겠습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해 다시 사셨다”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다시 사신 이유는 “우리로 우리를 위해 다시 사신 그분을 위해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의 존재이유이며, 삶의 목적이 된 것입니다.

사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이 주어진 까닭도, 안디옥교회의 성도들이 늘 그리스도를 이야기하고, 그리스도처럼 살고, 그리스도를 칭송하고, 그리스도를 전하였기 때문에, 당시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들을 보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적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삶의 무기력과 무감동은, 대부분 목적의식의 결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분명히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는 대상이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위해 죽었고 너를 위해 다시 살았단다. 그리고 나는 지금 너를 위해 살고 있단다. 그러니 넌 나를 위해 살지 않겠니” 이 음성을 들은 그날부터 바울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일에 미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일에 미쳐야 합니다.

 

행26:24절을 보면, 바울이 전도하다가 죄수로 잡혀와 자기를 심문하는 총독 베스도에게 전도를 합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게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바울은 정말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일에 미쳐있었습니다.

저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래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첫째 이유는,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우리 인간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가진 가장 큰 존재의 갈망은 변화의 갈망입니다.

아무도 자기의 존재 그대로를 만족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불만은 자신에 대한 불만입니다.

그래서 이 불만이 크면 클수록 변화에 대한 열망은 더 증대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변화 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면 새 피조물이 된다”고 선언합니다.

17절을 읽겠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저는 지금까지 30년 이상 목회를 하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격하는 사람치고 변화되지 않은 사람을 본 일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의 감격을 아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변화를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복음만이 인간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처방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1:16절에서 “내가 이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로마제국은 세계최강의 군사력과 과학과 철학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군사력도 과학도 철학도 한 영혼을 구원하거나 변화시킬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 자마다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일에 미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둘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우리 인간을 하나님과 화목 시키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인류최대의 과제는 창조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의 정립입니다.

우리 인간은 범죄한 이후 창조주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왔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비극은 창조주 하나님을 등진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척 스윈돌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정보였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교육자를 보내셨을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기술이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과학자를 보내셨을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돈이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경제학자를 보내셨을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쾌락이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연예인을 보내셨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중보자요 화목자인 구세주를 보내신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사도는 18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직분자”라고 말했고, 19절에서는 “복음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말씀”이라고 했으며, 20절에서는 “이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들려주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라”고 우리에게 부탁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복음전도의 영향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이 세상은 하나님이 축복할만한 세상, 하나님과 화목한 세상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복음은 개인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세상을 변혁하는 사건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일에 미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또한 우리가 미쳐할 이유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 거룩한 주님의 비전을 위해 우리들도 한번 미쳐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가 정말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는 지금 주님의 지상최대의 명령인 전도를 위해 새로운 열광을 시작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