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 (로마서 1:16-17)

Johnangel 2023. 5. 1. 23:31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 (로마서 1:16-17)

 

거듭난 자는 누구나 논리적으로 복음을 부끄러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듭난 자는 복음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죄 문제가 해결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고 말했습니다.

여기 “부끄러움”이라는 말은 동물들에게는 없는 오직 우리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이 “부끄러움의 성품”을 사람의 마음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끄럽게 생각해야할 때 부끄러워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해야할 때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당해야할 일에는 부끄러워하고, 부끄러워해야 일에는 뻔뻔할 때가 많다는데 있습니다.

 

여러분,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십자가의 승리입니다.

따라서 거듭난 자라면 누구나 예수님께서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십자가의 승리를 날마다 풍성하게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이 복음을 전해주어서 그들이 모든 영육의 문제를 해결받고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사람에게만 있는 이 부끄러움의 성품을 사탄이 악하게 이용하여 우리 성도들로 하여금 복음의 증인이 되지 못하도록 막는다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원래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의 영”을 주어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창조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범죄하여 하나님이 주신 모든 축복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영”이 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열심히 종교생활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우리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행4:12절을 읽겠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습니다.

따라서 내가 복음을 전해 주지 않으면 누구든지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이 “부끄러움”을 이용하여 모든 인간이 구원을 받지 못하도록 우리에게 입술을 열어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부끄러움”에 대하여 딤후1:8절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예수를 믿었고, 3대째 신앙을 가진 자입니다.

그는 이미 성년이 되었고, 목사이며, 복음전도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혹시나 디모데가 세상문화에 위축되어 복음전도자로서 본연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할까봐 영적인 아버지로서 격려하며 디모데에게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우리의 가치관이 공격받는 세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비난하며 따르지 않는 세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보다 더 똑똑하고, 높은 지위에 있고, 물질을 많이 가진 사람 앞에서는 본능적으로 우리들이 위축된다는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 나도 그를 부끄러워하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복음의 증인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1. 복음의 능력을 체험해야 합니다.

 

16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인생문제를 해결하신 십자가의 승리입니다.

따라서 구원받고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구원이란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원죄와 자범죄와 우리 조상들이 우상을 숭배함으로 인한 모든 저주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이 땅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며, 내세에서는 주님과 더불어 천국보좌에 앉는 것입니다.

또한 현실 가운데 구원받은 증거는 기도응답과 축복으로 나타나며, 우리 후대까지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아 십자가 보혈의 능력을 체험한자는 복음을 마음속에 가두어 놓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입니다.

내가 가진 복음의 능력을 경험한 자들에 의해 복음은 전파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비밀정보원 식으로 숨어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의 신앙생활을 보면, 물속으로 깊숙히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땅으로 완전히 올라서는 것도 아닌, 물 가장자리에 엉거주춤하게 서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이 많아질 때 교회는 복음의 능력을 상실하게 되어,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동네에서도 아무런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16절에서 바울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은 “비록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숫자적으로 소수에 불과하지만 복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라는 영적 아버지로서의 바울의 마음”인 것입니다.

 

2. 믿음의 선배들을 주목해야 합니다.

 

여러분, 로마서를 쓰고 있는 사도 바울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 구절을 써 내려갈 때 사도 바울의 머리속에 꽉 붙잡혀 있는 한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스데반 집사입니다.

바울이 과거에 예수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어느날 유대인의 공회에 스데반 집사가 잡혀왔습니다.

그런데 행6:15절을 보면 공회에 모여있는 사람들이 스데반의 얼굴을 보았는데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받은 자는 복음 때문에 핍박을 받아도 천사의 얼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핍박자들의 마음은 분노가 더욱 치밀어 오릅니다.

그래서 핍박자들은 천사의 얼굴이 된 스데반 집사가 입을 열어 구약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 복음의 내용을 이야기하자 공회에 있던 자들이 더 이상 앉아서 들을 수 없어 일어나 돌을 들어 스데반 집사를 내리쳤습니다.

행7:59-60절을 보면, 여기저기 깨지고 피투성이가 된 상황에서 스데반 집사는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며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이때 행8:1절을 보면, 거듭나기 전의 바울은 이러한 “스데반 집사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극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후 바울은 그 일이 얼마나 잘못된 일이고, 자기의 행동이 얼마나 나빴던가를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지금 그 스데반 집사를 생각하며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복음의 증인으로 살기를 결심하고 오늘 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 초기에도 김익두 목사님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복음을 거절하고 복음전하는 자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님들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반복하여 복음을 전하는 그들의 당당한 삶을 통해서 그들은 복음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을 위해 청춘을 바친 선교사님들의 대가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한국교회와 부유한 한국사회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가족 여러분!

우리의 이 땅에 삶은 단 한번입니다.

따라서 우리 인생은 연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의 삶을 정리할 때를 생각한다면, 둘 중에 하나밖에 없습니다.

내가 구원받은 자로서 복음에 대해 어정쩡한 태도를 취할 것이냐? 아니면 복음에 붙잡혀서 복음을 자랑하며 살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히12:1절을 보면 “우리에게는 복음을 자랑했던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복음증거를 위해 자기의 삶을 기쁘게 헌신했던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복된 자리에 있게 된 것은, 바로 이 사람들이 그 무서운 핍박에도 복음에 대해 입을 다물지 않고 담대하게 전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복음의 변방에 서 있을 때는, 복음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능력,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면,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자가 아니라 자랑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영.육을 예수보혈의 능력이 장악하기를 바랍니다.

 

예수 이름은 능력입니다.

성령의 역사요, 성령의 불입니다. 성령은 능력입니다.

그 능력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가슴에 모시고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갈망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을 날마다 새롭게 들으며 감격하는 은혜를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증거가 무엇입니까? 기도응답입니다.

하나님 살아계심의 증거가 무엇입니까? 기도응답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진리라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기도응답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영적인 과학인 것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있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우리는 공격자가 되고 사탄은 방어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 같은 열매를 갈망하며 복음전도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우리 교회와 여러분에게 예수 이름의 능력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주님이 기대하시는 재생산의 풍성한 열매가 맺힐 것을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