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부활 그 이후 (요한복음 20:19-23)

Johnangel 2023. 6. 14. 18:43

부활 그 이후 (요한복음 20:19-23)
                                                
우리가 교회절기를 보낼 때에 유의해야 할 점은, 절기가 일과성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주 부활주일을 통해 부활의 주님을 기념했다면, 이제는 부활의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활신앙의 완성은 부활 그 자체에만 있지 않고, 부활은 부활하신 주님께 믿음의 초점과 삶의 무게중심을 두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연속선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21절에 보면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다시 찾아오시고, 그들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 다시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십니다.
이것은 부활하신 주님이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심으로, 오직 주님만이 참된 믿음의 대상이며, 기쁨과 소망이심을 분명히 밝혀 주실 뿐만 아니라, 또한 지금 이 땅에서 존재하고 있는 우리 삶의 주인이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실 때, 먼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평강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하던 제자들의 마음속에 세상이 해석할 수 없는 평강이 밀려오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사역의 역동성과 세상을 복음으로 섬기고 이끌 수 있도록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22절에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고,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교회를 불러 참된 안식과 평안을 주실 뿐만 아니라 행1:8절에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나아가 부활의 증인이 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이 약속의 말씀은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을 통해 교회에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성취가 됩니다.
그 결과 교회는 죄사함의 권세가 있는 복음을 능력있게 전파하는 교회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행2:21절의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대로 주님 앞에 겸손하게 나아오는 자는 누구든지 예외없이 죄사함의 은총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국가와 단체가 있지만 죄사함을 선포할 수 있는 국가나 단체는 단 한곳도 없습니다.
오직 교회만이 복음을 통한 사죄의 은총을 선포할 수 있도록 세상에 파송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복음은 교회를 통해 반드시 세상을 향해 선포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써 주님의 부활이 내 부활이요, 주님의 권세가 내 권세요, 주님의 능력이 내 능력이요, 주님의 영광이 내 영광이라고 확신한다면, 우리는 내가 만난 부활하신 그 주님에 대하여 서로 간증하며 힘을 얻어 이 엄청난 생명의 소식을 세상에 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눅24:24:8-12절에 보면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말한 사도와 다른 이에게 알리니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고 했고, 눅24:33-35절에서는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가족 여러분!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나와 구원받은 성도들과 함께 교제하고 말씀의 은혜를 나누는 “모이는 교회”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삶의 현장으로 파송되는 “흩어지는 교회”가 균형을 반드시 이루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균형을 이루는 우리 고현교회가 될 때, 역동적인 교회 영향력 있는 교회로 쓰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갈 뿐 아니라 세상의 낮은 곳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게토”(Ghetto)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게토(Ghetto)가 “과거 유대인들의 집단 거주지 도시 성벽밖에 고립된 곳”을 말한다면, 오늘날의 게토(Ghetto)는 “세상과 단절되어 자기만의 영역 안에 안주하는 교회”를 가리키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AD 160-215)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루살렘과 우상의 도시 아덴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그렇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이 사마리아를 지나가시고자 하실 때 가로막았습니다.
심지어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 사마리아 사람들을 불로 다 멸하기를 요청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죄악의 상징인 사마리아가 없는 예루살렘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죄인들이 없는 구주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들을 자 없는 복음이 무엇 때문에 필요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향해 스스로 쌓아올린 보이지 않는 인간의 장벽을 뛰어넘어야 교회는 교회다울 수 있고, 성도는 성도다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모든 교회는 삶의 거듭남과 의식의 거듭남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모든 예수 믿는 자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가정과 직장과 일터로 파송된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이 사실을 자각하는 만큼 이 세상은 소망이 있습니다.
이 사명을 깨닫는 만큼 교회는 성숙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남으로 믿음의 문제가 해결된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1. 파송받은 자의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21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성도는 마땅히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주님의 뜻을 이해해야 합니다.
사마리아의 수가성에 들어가셨을 때, 요4:34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파송받은 자의 의식을 가지고 사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주님을 이 세상에 파송하신 뜻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사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파송을 받은 자는 파송하는 자의 생각과 뜻을 앞세워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는 내가 속한 현장(동네, 직장, 사업터, 학교)이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현장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는 죄악 된 세상을 향해 파송받은 자의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의 믿음은 지킬 수 있을지라도 삶 속에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열매는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2. 대표성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23절을 읽겠습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 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주님이 제자들을 파송하시는 것은, 이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교회를 파송하는 대표성을 가집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사도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를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4가지 표지는 통일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입니다.
그 중에 사도성은 “교회가 세상으로 보냄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사도성은, 주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성도와 교회가 자신의 책임을 온전히 감당해야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두 가지 대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파송 받은 대표성을 가질 때에 이 지역의 영혼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들이 자신들의 대표성을 깨닫고 주님 앞에 서는 그 순간까지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일에 충성했다면, 우리도 마찬가지로 대표자의 의식을 가지고 우리의 삶의 현장과 익산과 이 나라에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19세기 초 영국의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는 20여년간 치열한 의회활동을 통해 노예제도를 폐지 시켰습니다.
그가 이렇게 하원의원으로서 그 힘든 노예제도를 폐지시킬 수 있었던 것은, 지역주민들을 대표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나라와 교회를 위하여 산다는 대표의식을 늘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후대에 귀한 삶의 역할모델로 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과 직장과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나라와 교회의 대표성을 가지고 살아갑시다.
그리고 우리를 세상에 파송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합시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와 교회를 마음껏 사용해주시기를 간구합시다.
주님은 우리와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이 지역과 이 민족위에 이루어 가실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