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부요한 한 해를 원하십니까? (골로새서 2:1-5)

Johnangel 2023. 7. 21. 10:50

부요한 한 해를 원하십니까? (골로새서 2:1-5)

                                               

자연계의 모든 동물은 본능에 따라 살지만, 사람만은 마음의 소원과 계획을 가지고 삽니다.

 리 모든 성도는 나 자신을 세우고, 우리의 가문을 세우고, 나아가 우리 교회와 조국 대한민국을 세우기를 소원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나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의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본문은 사도 바울이 참된 목자의 심정으로 골로새 교인들이 “어떻게 하면 성숙한 그리스도인, 부요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골로새교회는 사도 바울이 직접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골1:7절에 보면 “에바브라를 통해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골로새 교인들을 권면했습니다.

1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여기 “얼마나 힘쓰는지”라는 말은 “내 몸 전체를 움직여 분투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번역에는 “기도하며 싸우는 영적전투”로 표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집안의 가장이 분투하지 않으면, 그 가정을 올바로 세울 수 없습니다.

또한 수험생이 분투하지 않으면, 그가 원하는 열매를 얻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지구촌의 무한 경쟁시대에 우리나라의 기업이 해외에 진출하고 수출입국이 되기 위해서는, 지혜와 전략을 가지고 상품을 만들고 수출경영에 분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따라서 골로새 교회를 위해 힘쓰고 애쓰는 사도바울의 심정을 갖고,  한해를 결산할 때에 다섯달란트 받은 충성된 종으로 주님 앞에 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대합니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이 어떤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까?

 

1. 마음이 강건해지기를 원했습니다.

 

2절에 보면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축복은 마음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의 경영자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마음에 위안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여기 2절의 “위안”이라는 단어는 “파라클레오” 즉 “위로하다. 용기를 준다. 힘을 배가시킨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의 의미는 “마음에 힘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고현의 성도 여러분!

성도가 마음의 힘을 잃어버린다면, 과연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성도에게는 지력과 체력도 필요하지만, 심령의 확신과 능력이 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은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고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십니다.

보혜사 성령은 성도들이 영적으로 승리하게 하십니다.

보혜사 성령은 말씀을 통해 우리를 능히 든든히 세우십니다

행20:35절을 읽겠습니다.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심령과 가정 그리고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힘은,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앞에 무릎 꿇을 때 얻습니다.

영적으로 혼란한 이 시대는 우리를 넘어뜨리고자 하는 잘못된 정보들이 홀수처럼 많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4절의 말씀대로 오늘날 “여기저기에서 행복이 있다”고 우리를 속여 유행을 좇게 만드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한 우리의 인생을 파산시키고, 영혼을 무너뜨리는 이단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든든히 세울 때, 열매를 맺는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음의 강건함은 기도생활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다 할지라도 기도하면,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확신을 얻습니다.

장애물도 디딤돌로 삼을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우리를 강건한 그리스도인, 흔들리지 않는 확신에 찬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주십니다.

우리 모두 기본이 탄탄한 그리스도인으로 굳게 섭시다.

 

2. 사랑 안에서 연합하기를 원했습니다.

 

2절에 보면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부 사이가 사랑하는 관계가 될 때 연합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교사와 학생이 자원함으로 연합할 때, 창조적이고 건설적인 열매들이 나타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연합하여 하나되게 하십니다.

당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소수였던 초대교회가 서로 사랑으로 연합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교회가 견고히 설수 있고 복음이 확산될 수 있었겠습니까?

요즘에는 “중독”이라는 단어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마약, 컴퓨터, 담배, 알코올, 물질, 성, 도박이라는 단어 뒤에 중독이라는 단어가 따라 다닙니다.

“중독”이 무엇입니까?

“어떤 것에 충동적으로 일어나는 심리적인 필요”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독증상은 공동체에서 박탈감이나 고립감에 빠져든 사람들 중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따라서 중독의 유혹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는 공동체에서 사랑의 관계로 연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이냐? 중독이냐?”의 사이에서 우리는 반드시 사랑을 선택합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의 관계입니다.

사랑이 빠진 가정은 이미 가정이 아니라 집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중독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는, 부모의 따뜻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교사들이 학생들을 용납해주고 사랑하고 존중히 여길 때, 학생들은 학교를 떠나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마음의 강건한 확신을 가지고 공동체에 연합하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믿음의 공동체에 대한 연합지수가 점점 더 높아져서 건강한 자아정체감과 높은 자존감을 소유하여 어떤 일에도 담대할 수 있는 축복을 누립시다.

교회공동체에 수동적인 태도를 버리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교회공동체생활에 참여합시다.

그리고 자신을 복되게 하고 이웃을 복되게 하는 성도가 됩시다.

 

3.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기를 원했습니다.

 

2절에 보면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해의 모든 풍성함” 즉 “참된 확신과 분명한 이해”를 위해 지성을 사용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지성과 영성이 손잡게 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지성과 영성, 두 세계의 주인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면서 동시에 지성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성을 연마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골로새교인들이 진리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진리를 확신하고, 진리의 체계를 세우며, 진리를 순종함으로 삶의 체험이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3절을 읽겠습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께 집중하고, 그리스도를 닮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도록 골로새 교인들을 권면했습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알 때 진정 부요를 누리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구원받았다는 사실에 머물지 않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과 열린 관계를 누릴 때, 주님께서 약속하신 부요함을 맛보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추구하십시오.

예수님께 집중하십시오.

예수님으로 충만하십시오.

예수님을 높이십시오.

우리의 삶에 예수가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본문 1절에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가 언급됩니다.

바울은 주후64년경 골로새 교회처럼, 라오디게아 교회에도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뜨거운 믿음과 삶의 체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세대가 지난 주후 95년경의 라오디게아 교회는 교회건물과 직분과 예배는 남아있었으나 신앙의 내용과 역동성은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님을 문밖 까지 밀어내고 말았습니다.

 

계3:20절을 읽겠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여러분 중에는 주님을 내 삶의 중심에서 점점 밀어내어 마음의 문 밖에 세워두는 사람은 없습니까?

우리는 신앙연륜이 더해질수록 “내 삶의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물은 지면의 기울기를 따라 아래쪽으로 흐르듯이 신앙생활도 마음의 기울기에 따라 흘러갑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세상에 기울어져 있는지, 주님께로 기울어져 있는지, 이 시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미세한 기울기가 여러분의 삶의 미래를 결정짓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수년 후, 수십 년 후의 우리의 삶의 결과는 각자 출발지점의 미세한 차이 때문입니다.

마음의 기울기를 믿음으로 다스리십시오.

주님을 향하는 결단이 필요하다면 지금 결단하십시오.

우리의 마음 중심이 주님께 향함으로, 주님의 부요함을 풍성히 누리고, 우리의 삶이 은혜와 주님의 평강으로 인도함을 받는 한 해가 되게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