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축복의 물줄기 (누가복음 6:38)

Johnangel 2023. 7. 19. 23:07

축복의 물줄기 (누가복음 6:38)

                                                  

이스라엘에는 대표적인 호수가 두 개 있습니다.

호수의 면적이 너무 넓다보니 사람들이 바다라고 부릅니다.

북쪽의 갈릴리 바다와 남쪽의 사해바다입니다.

그런데 갈릴리 바다는 사해보다 규모가 작은 호수이지만 살아 있습니다.

그곳으로 물이 들어가기도 하고 다른 곳으로 나가기도 하기 때문에 언제나 물의 유동이 있어 살아있는 바다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바다에는 물고기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그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에 반하여 사해바다는 그곳으로 들어오는 물은 있어도,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는 물은 전혀 없습니다.

얼마나 바다 밑이 깊고 깊은지 그 많은 물을 다 받아 저장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해바다는 염도가 매우 높아서 물고기가 살지 못하는 죽은 바다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생각하기를 무엇이든 받기만 하면 좋을 줄 알고, 또 많이 받으면 행복하고 부자가 되는 줄로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받기만 좋아하고 나누어 줄줄 모르는 사해바다와 같습니까? 아니면 나누어주며 더불어 사는 갈릴리바다와 같습니까?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축복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축복의 물줄기를 막아버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축복의 물줄기는 들어오는 물줄기가 아니고 나가는 물줄기라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나가는 물줄기가 열려있지 아니하면, 그 물은 얼마안가 썩어서 악취만 풍기는 죽은 호수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물줄기를 막고 사는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제대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 축복의 물줄기가 끊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나누어 줄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눅19:8절을 보면, 세리장으로서 지금까지 돈을 모으기만 했던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가진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겠다”고 선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마 그 순간 삭개오는 평생 처음으로 누려보는 큰 기쁨을 누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누어 줄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런 삶의 기쁨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결코 행복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에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랑을 서로 좋아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끝없이 주는 것입니다.

자기 것을 모두 다 주어도 아깝지 않고, 어떠한 희생이 있어도 감수하는 사랑이 진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나누어 줄줄 모르는 인색한 사람에게는 삶의 기쁨도 없고, 행복도 없으며, 축복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나누어 주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것에서 나간만큼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차고 넘치도록 부어주셔서 택배로 부쳐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가지러갈 필요도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굳이 달라고 조를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자녀들을 교육할 때에도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어려운 친구들을 도와주며 내 것을 나누며 더불어 사는 방법을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을 어떻게 축복하시는가?”를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막10:21절을 보면, 한 청년이 예수님께 나아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청년에게 계명대로 지키라”고 말하자 “그 청년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이 청년을 향해 “네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하고 나를 쫓으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재산이 많은 고로 심히 근심하며 예수님의 곁을 떠나갔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영생을 포기할 만큼 모아놓은 재산을 아꼈던 사람입니다.

비록 지옥에 가더라도 그 많은 재산을 이 땅에서 실컷 쓰고 가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물음에 “계명을 다 지켰다”고 당당히 말한 것을 볼 때, 그는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별 흠이 없이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의 결점이 무엇입니까?

자기 것을 이웃에게 나누어 줄줄 몰랐다는 사실입니다.

 

마25:41절을 보면 “양과 염소의 비유”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왼편에 있는 염소들에게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저주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마를 때에 물 한 모금도 주지 않았으며, 벗었을 때 옷을 입히지 않았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 돌보지 않았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 염소들은 “우리가 언제 그런 일을 했느냐?”며 예수님에게 따져 묻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네 형제중의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대하여 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남을 돕고 나누어주면서 사는 것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닙니다.

주님은 반드시 “내 이웃에게 도움을 베풀면서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의 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왼편에 있던 염소가 들어야만 했던 책망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좋은 일을 다 하면서 살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말씀하시는 내 이웃은 누구를 말하겠습니까?

내 이웃은 지금 여기서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잠21:13절을 읽겠습니다.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의 필요를 모른척하는 인색한 자의 기도를 결코 듣지 아니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사는 동안 축복의 물줄기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 작게라도 항상 나누면서 베풀며 사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2. 남을 대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창24:12절 이하를 보면,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아브라함의 심부름으로 주인의 아들 이삭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아브라함의 친척집을 향해 갔습니다.

그 종은 누가 주인 집 아들의 배필인지 알기 위해 증표를 구하는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 길을 형통하게 하셔서 누구든지 나를 만나는 사람에게 내가 물을 달라고 하였을 때 나에게 물을 줄뿐만 아니라 약대에게까지 물을 주는 그런 처녀가 있다고 하면 하나님이 정한 사람인줄 알겠습니다. 잘 만나도록 인도해주세요”

그 종이 기도를 마치고 눈을 들어보니 웬 처녀 하나가 양을 몰고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종은 자신이 기도한 대로 물을 구했더니 그 처녀가 정성껏 아브라함의 종에게 물을 대접할 뿐만 아니라 요청하지도 않은 낙타에게까지도 물을 길어 와서 먹이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은 그 종의 기도에 정확히 응답하셨습니다.

그녀가 바로 이삭의 아내 리브가입니다.

그녀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나그네였지만, 나그네를 잘 대접하고 복을 받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축복은 굉장한 일을 함으로써 받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 일어나는 작은 일 하나라도 모든 사람에 대하여 선한 마음을 가지고, 친절히 정성껏 잘하려는 그 마음만 가지고 있어도 축복의 물줄기가 저절로 열릴 줄 믿습니다.

언젠가 제가 서울에 있는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고 난 후에 저를 대접하겠다는 부부가 있어 그 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도 부자만 사는 부유층이 밀집해 있는 지역에 사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이렇게 많은 돈을 번 것은, 굉장한 사업을 하여 번 것이 아니라 세탁소를 경영하여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그 분의 세탁소는 손님이 와이셔츠 한 장을 맡겨도 “예수님의 옷으로 생각하고 정성을 다해 세탁한다”고 합니다.

이런 정성으로 일을 하다 보니 소문이 나서 강남의 까다로운 부자들이 이 집으로 몰려왔습니다.

자연히 장사가 잘 될 수밖에 없었고, 돈도 많이 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느냐?”하는 마음가짐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3. 감사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께 항상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부모의 기쁨이 됩니다.

우리가 밥을 먹을 때, 밥 한 그릇, 반찬 한 가지를 놓고 먹어도 감사하는 사람이 어찌 복을 받지 않겠습니까?

저도 식사 때마다 아내에게 “잘 먹었어” “맛있게 먹었어” “고마워”라는 말을 꼭 합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도시는 폐허가 되고 많은 아이들이 제대로 먹지 못하고 굶주리게 되었습니다.

이때 독일의 한 부자 노인 부부가 매일 빵을 만들어 거리에서 굶는 아이들을 먹였습니다.

이들 부부가 빵을 만들어 나오면, 아이들이 너도나도 큰 것을 먹겠다고 달려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여자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다 가지고 난 후 맨 마지막으로 가장 작고 못 생긴 빵을 집어 들고는 항상 이들 부부에게 다가와서 감사의 인사를 하고 먹었습니다.

이 여자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달랐습니다.

그런데 이를 눈여겨본 부부가 어느 날 작고 못생긴 빵 속에 금화 한 닢을 넣어 그 아이가 가져가도록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람도 감사할 줄 아는 아이에게는 더 주고 싶어합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들 부부의 입장이라면, 아마 이러한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가 무엇이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면, 우리 하나님께서 어찌 그러한 사람을 축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감사는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예배를 통해 감사하는 것입니다.

예배의 중심은 감사입니다.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을 감사하고, 오늘까지 살게 하신 은혜를 감사하며, 천국가게 해주신 것을 감사하고, 이처럼 예배는 하나님께 감사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송을 드려도, 헌금을 드려도, 기도를 해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감사를 표시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헌금입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축복이 온다”는 것을 믿고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드리는 십일조는 하나님이 주신 것 중의 가장 최소 단위의 액수로서 성도들의 신앙고백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대로 사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물줄기가 막히지 않고 끊임없이 내려갑니다,

축복은 하나님이 주셔야만 받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대로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내 의지, 내 결심대로 살기 힘들어도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시면 우리의 믿음대로 될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아 저와 여러분의 모든 범사가 다 형통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