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소서 (하박국 3:1-2)
여러분이 살고 있는 삶의 상황이 기울어져 갈 때, 여러분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십니까?
문제로부터 도피하고 도망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예 포기하고 낙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들은 모두가 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져서는 안 되는 아주 위험한 태도입니다.
왜냐하면 오히려 문제 상황을 악화시키는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박국서는 “이런 상황에서 하박국은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했는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하박국이란 이름의 의미는 “포옹한다, 껴안는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집안에 걱정거리가 있을 때, 사업이나 직장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로부터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로 씨름하는 사람이 하박국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유다왕 여호야김 시대였습니다.
예36:20-26절에 보면, 유다 왕 여호야김은 성경을 칼로 잘라 불에 던져 버리며, 하나님을 모욕하고 말씀을 무시하는 아주 악한 왕이었습니다.
결국 주전 605년 유다를 침공한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하여 그 악한 여호야김 왕을 쇠사슬에 결박당하여 포로로 잡아갑니다.
그때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같은 젊은 인재들도 함께 포로로 잡혀갑니다.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 하박국은 기울어가는 민족의 운명을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 백성을 버리지 말고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과 치유와 부흥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2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박국 선지자는 몰락해 가는 민족의 운명 앞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하나님의 이러한 진노와 심판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진노하심과 심판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하오나 하나님이여, 당신의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소서. 우리 백성의 선함이 있고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성품이신 그 긍휼함 때문에 이 백성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소서!”
그렇습니다.
도피하고 낙심하는 사람들 앞에서 역사는 침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하고 비판하는 사람들 앞에서 역사는 무너지고 파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포용하고 가슴에 끌어안고 전심을 다하여 기도하는 하박국 같은 사람들을 통하여 공동체는 부흥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 부흥이 무엇입니까?
부흥이란 말을 사전에서는 “쇠하였던 것이 다시 일어남, 또한 다시 일어나게 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흥이란 “다시 일어난다”는 뜻으로, 침체되었던 것들이 새롭게 살아나고 회복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을 섬기며 말씀을 버리고 타락했다가 몰락하고 멸망해 가는 조국의 현실을 바라보며 전심을 다하여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 민족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어 매 맞고 심판 받는 사실에 아무런 의의가 없습니다. 사랑 받을 가치도 없고 잘한 것도 없고 내세울만한 공로도 없습니다. 하오나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믿고 간구합니다. 내 민족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재건의 기회를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당당히 살아가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날과 그 기회를 주시옵소서. 이방의 조롱거리에서 벗어나 영광의 백성이 되는 그날을 주시옵소서.”
바로 이런 의미로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라고 요구하며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수 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라고 두 번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한 두 해가 가기 전에 역사하소서”라는 뜻입니다.
아주 가까운 장래에, 깜짝 놀랄만큼 짧은 시간 내에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의 부흥을 보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지금 우리 교회가 “부흥의 파도를 소망하자”고 울며 외쳐야 할 때라고 여러분은 느끼지 않습니까?
“하나님이여, 우리는 가진 것 없는 백성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가운데 많은 복을 누렸습니다. 교회도 잘 성장해 왔고 경제와 주변 환경도 발전해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만했고 방만했고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하오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하나님의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수 년 내에 부흥하게 하소서.” 할렐루야!
1907년 대부흥이 있었던 그 시대만큼 우리 대한민국의 민족사에서 고통스러웠던 때는 없었습니다.
조선의 국권은 일본의 손에 통째로 넘어가 황제는 폐위 당하고, 모든 국민들은 허탈과 절망에 빠졌고, 세계가 한국을 버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이 이 땅을 찾아오셨습니다.
성령님이 임재하셨습니다.
그래서 과거 연세대학교 총장이셨던 고 백낙준 박사가 지적한 것처럼, 그것은 장차 한국민족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기회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은 집회시간마다 목이 터져라. 심장이 터져라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를 불렀습니다.
성령님의 임재와 함께 너도 나도 앞을 다투어 죄를 고백했고, 관계가 깨진 사람을 찾아가 먼저 용서를 구했습니다.
회개와 성령의 임재 속에 대부흥을 경험한 성도들은 불신자들을 구원하려는 열정이 예배시간, 기도시간, 찬송시간 그리고 성경공부시간마다 폭발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 노인과 아이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날의 대부흥 운동은 불이 번지듯 교회에서 교회로, 도시에서 도시로, 학교에서 학교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교사님들과 길선주 장로님과 제직들이 가는 곳곳마다 성령의 불이 옮겨 붙고 있었습니다.
평양에서 시작된 불이 서울 인천 대구 부산 전주 이리 군산 광주 나주 목포 의주 공주 선천 해주 개성 강화 재물포 원산 춘천 함흥뿐만 아니라 만주와 중국으로까지 번져가고 있었습니다.
2. 그렇다면 그 부흥의 역사는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요?
1) 회개의 몸부림으로부터 부흥이 시작되었습니다.
탁월한 평신도 저술가 C.S. 루이스는 “타락한 시대에서는 죄 문제를 해결하려는 진지한 몸부림이 사라진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바로 그런 시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자신의 죄 때문에 고민하고 아파하다가 질퍽거리는 눈물을 끌어안고 몸부림하는 성도들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행2:37-38절을 읽겠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어느 시대나 부흥의 선행 조건은 회개였습니다.
1903년 원산에서 한국에 들어와 선교하던 선교사들이 초교파적으로 모여 기도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도회 나눔의 시간에 하리영(R.A. Hardie) 캐나다 의료선교사가가 자신에게 선교의 열매가 없는 무능함은 “자신이 한국인에 대한 우월의식과 자만심”었음을 눈물로 고백합니다.
진심어린 한 선교사 하리영의 눈물의 고백이 회개의 불을 붙였고, 강력한 성령의 능력이 그 기도회에 임하여 그곳에 참석했던 선교사들은 예배시간마다 머리를 바닥에 찢으며 몸부림하는 사람, 가슴이 뜨거워 가슴을 움켜쥐고 바닥을 뒹구는 사람, 공포와 두려움에 목을 놓아 울다울다 지쳐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사람, 그 누구도 구경꾼이 아니었고 비판자가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다 자기 죄를 회개하며 울부짖는 회개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부흥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오늘 우리가 먼저 힘쓰고 애써야 할 일은 회개입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내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엑스레이가 임하면 작은 죄가 크게 보입니다.
가벼운 죄가 무겁게 느껴집니다.
사소한 죄가 아프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살려 달라”고 몸부림치게 되는 것입니다.
2) 성령 충만의 역사로 시작되었습니다.
1906년 평양과 서울에서 성령 충만을 갈구하는 기도회가 열립니다.
여기서 강사로 나선 선교사님께서 지금 세계도처에 성령의 임재가 나타나고 있음을 전하고 “조선에서는 누가 성령 충만을 받고자 하느냐? 원하는 자는 손을 들고 일어나라”고 외칠 때, 당시 신학생이요 장로였던 길선주가 손을 들고 벌떡 일어납니다.
바로 그 다음해 드디어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 사경회에 성령의 불이 떨어집니다.
성도들은 집회 때마다 남자 성도가 1,500명 이상 모이고, 여자들은 앉을 자리가 없어 마당에 자리를 깔고 앉아 강사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저절로 각자의 입에서 회개가 터져 나와 통성기도회가 시작되었고 모두 다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3) 전도의 열정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는 깊은 바다에서 침몰하는 배처럼 국운이 기울어가던 어둡고도 암울한 때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때에 한반도 전역을 휩쓸며 성도들의 가슴에 뜨거운 불을 지폈던 “1907년 평양 대 부흥운동”의 불길이 한국 교회 안에서는 100만 구령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오직 절대능력의 민족 복음화만이 꺼져가는 나라의 운명을 살릴 수 있고, 백성들의 희망을 꺾지 않을 수 있다고 한국교회는 믿었습니다.
이 무렵 각 교회에서는 새벽기도 운동, 금식기도 운동, 산기도 운동들이 도처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고 일어선 성도들은 이곳저곳에서 전도지를 들고 거리로 마을로 미친 듯이 뛰어 다니며 전도했습니다.
드디어 1909년 장로교와 감리교 연합회의에서 100만 구령운동을 선포하고 교회들마다 “금년 100만명”이란 구호를 외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암울한 민족을 살리는 길은, 정치적 힘과 경제적 힘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바로 민족이 주께로 돌아오는 길이라고 한국교회는 역설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젊은이들과 백성들은 민족의 희망이 교회에 있음을 깨닫고 물밀듯이 교회로 몰려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입니다.
그날 이 땅에서 일어났던 엄청난 일들이 지금 우리 교회에서 재현되기를 저는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 날의 회개가 우리의 심장에서 쏟아져 나오기를 소망합니다.
그 날의 성령 충만이 오늘 새롭게 우리 교회에 임하시길 소망합니다.
그 날의 성도들처럼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전도의 열정이 되살아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1907년 그날의 부흥이 우리 교회에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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