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 (사도행전 9:26-27)

Johnangel 2023. 9. 11. 17:27

영향력이 있는 사람 (사도행전 9:26-27)

                                                

신약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은 바울입니다.

바울은 세계선교의 문을 활짝 열었을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를 포함해 성경 13권을 썼던 사람입니다.

그런 바울을 초대교회 지도자들이 경계하고 두려워할 때, 그를 초대교회에 등장시켜 쓰임 받게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그리고 바나바는 바울과 함께 제1차 세계여행 때 실수했던 마가 때문에 제2차 선교여행을 떠날 때 마가를 데리고 가는 문제로 인하여 바울과 바나바가 논쟁을 벌였을 그때도 마가의 허물을 덮어주고 품어준 사람이 바나바였습니다.

그 결과 마가는 훗날 주님의 신실한 제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도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을 기록하였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바나바와 같은 사람이 되어 이 시대에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1. 상대를 인정해 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27절을 읽겠습니다.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변화되어 그의 자신 안에 있는 예수 충만을 바나바가 믿어주고 인정해 주었습니다.

주경학자들의 견해를 보면, ①바나바가 바울을 추천한 것은 바울이 그만큼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의견과 ②바나바가 현재가 아닌 미래를 볼 수 있는 통찰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정확한 이유는, 바나바가 허물을 덮어주고 덕이 많은 겸손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사실 보통 사람들은 누구든지 사람들을 대할 때,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기중심적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장점을 크게 과장하여 말하지만,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단점을 크게 부각시켜 말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은 사실에 직면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 할지라도 주님의 사랑으로 있는 그대로 그것을 다 받아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내나 남편, 그리고 자녀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아니하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여 아내와 남편 그리고 자녀의 허물을 덮지 못하고 원망이나 불평을 하게 됩니다.

성도들에 대한 목사의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 역시 성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할 때, 사람을 키울 수 있고, 살릴 수 있는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빌1:16절을 보면 바울은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즉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을 때, 초대교회에 어떤 지도자들은 바울에 대하여 “비난하며 그가 잘못된 동기를 가지고 복음을 전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빌1:18절에 보면, 그들의 허물을 원망하거나 비판하지 아니하고 “그리하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노라”고 말했습니다.

즉 “그들이 잘못된 동기를 가지고 전도했어도 결과는 좋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바나바도 역시 이와 같은 태도를 지녔던 사람입니다.

이 세상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허물없이 완벽한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한 바나바의 태도가 위대한 사도바울을 세웠고, 또한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세계선교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인재를 키워냈던 것입니다.

 

2. 보증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6절을 읽겠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당시 예루살렘의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바울을 신뢰하지 못하고 그를 두려워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이 과거에 잔악하게 핍박했던 행적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나바가 그의 보증이 되었고, 사귐의 다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힘들고 희생이 되더라도 그 희생을 통해 다른 사람의 길이 열린다면, 우리도 그렇게 하여 썩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베드로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우리 같으면 그토록 십자가에 자신의 생명까지 주시기까지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배반한 베드로의 허물에 대하여 질책하겠지만, 예수님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라는 베드로의 대답을 듣고, 예수님은 즉시 그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다시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최고로 믿는 것은, 서로의 허물을 덮고 주님의 세계비전을 함께 공유하고 교회에서 함께 사역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믿어주고 밀어줌을 통해 베드로 같은 인물이 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서로 믿어주고 밀어줌을 통해 우리 교회에서 인물이 난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20세기가 산업화 사회였다면, 오늘날 21세기는 정보화 사회입니다.

그렇습니다.

산업사회는 “개미사회”로서 부지런함과 성실이 인정받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정보화 사회는 “거미사회”로서 아이디어와 지식이 인정받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정보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심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산업사회처럼 부지런함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되는 것이 아니고, 전략과 분석이 필요하고, 정보의 독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높은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 그 자리에서 중심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중심이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 허물을 덮어주고 덕으로 섬기며 삶을 공유하는 사람, 나 때문에 사는 사람이 있게 만들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나바는 베풀고 섬기는 사람으로서 21세기 정보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중심이 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21세기는 높고 낮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리에서 중심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막10:43절에서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너희가 큰 사람이 되고자 하느냐 그렇다면 온유한 자가 되라, 겸손한 자가 되라, 베푸는 자가 되라, 섬기는 자가 되라”는 이 말씀은 이 시대에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시간과 물질을 영혼을 사랑하며 이웃을 섬기는데 써 보십시오.

그리고 허물을 덮어주고 섬김으로 다른 사람 세우는 자가 되어 보십시오.

그러면 우리 교회는 반드시 강해질 것이고, 우리 모두는 반드시 지역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3. 세운 사람을 통해 사역을 넓혀가야 합니다.

 

28-30절을 읽겠습니다.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복음은 핍박 때문에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더 힘 있게 더 멀리 전파됩니다.

사탄은 바울을 앞세워서 예루살렘 교회를 핍박하면, 복음을 전하던 수만 명의 제자들이 벙어리가 되고 교회는 문을 닫을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핍박으로 복음은, 더 빨리 사마리아로, 갈릴리로 그리고 다메섹까지 번져갔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돌이켜 보면, 어느 나라에서나 핍박이 교회부흥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핍박을 부정적으로 보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메섹에서 회심한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복음을 전했을 때, 아마 가장 당황했던 사람들은 바울과 함께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예루살렘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당시 유대사회의 엘리트 계층의 지식인들이었던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지시적으로 너무나 미약했습니다.

그런데 헬라 언어에 유창하고, 지성으로 무장된 사도바울이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자, 그 결과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은 힘을 얻었고, 복음사역은 더 넓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꼭 기억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러한 언어의 능력과 지식은 하루아침에 쌓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제자훈련으로 주님의 제자가 되어 겸손으로 무장된 덕장이라 할 수 있는 주님의 신실한 제자 바나바와 당시 엘리트였던 바울의 회심과 더불어 전하는 복음으로 인하여 예루살렘교회는 전 유대와 세계열방을 향하여 든든한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한 순간에 일꾼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요, 독불장군은 없다”는 것을 믿고 반드시 훈련을 통해 일꾼을 만들어 동역함으로 사역해야 합니다.

그러면 라이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 인격과 내 인생이 넓어지는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 바나바의 사역은 동역자와 함께 하는 사역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시대의 강점은 바나바와 같이 일꾼을 세우는 것입니다.

21세기 정보화 시대 즉 거미줄과 같은 웹의 시대에 우리 모두 제자훈련을 받고 주님의 심장으로 서로 동역자들을 세워줌을 통해 바나바와 바울과 같은 영적인 거장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 아침에 바나바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교회에서 자기보다 나은 사람이 나타날 때, 그를 앞세워 사역을 나누어 동역하기를 좋아하는 온유하고 겸손한 인품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사도행전의 기록을 검토하면, 바나바는 바울을 추천하고 그를 곁에서 도와주다가 조용히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진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지식적인 면에서는 바울에게 미치지 못하지만, 인격적 면에서는 바나바가 바울보다 훨씬 더 훌륭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의 일을 하는 데는 이렇게 바울과 같은 주연도 필요하지만, 바나바와 같은 조연도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정보화 시대에 우리 교회는 높은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자리에서 중심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우리들도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바나바와 바울처럼 교회 성도들의 장점이 있으면 서로 인정해 주고 서로 칭찬해 주고 허물을 덮어줍시다.

이런 사람이 지금 강력한 두 날개로 주님의 비전성취를 위해 비상하고 있는 우리 교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요, 지금 바로 주님이 찾는 사람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