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로마서 4:18-22)

Johnangel 2023. 10. 3. 18:59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로마서 4:18-22)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가?”하는 것을 아무리 강조한다 할지라도 지나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성도의 삶을 세상 사람의 것과 구별해서 신앙생활이라 부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직 믿음으로 사는 생활”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서 믿음을 빼버린다면, 세상 사람과 생활현장에서 선명하게 구별할 수 있는 색깔이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믿음은 본질상 하나입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목적에 따라서는 두 가지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구원 받기 위한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을 살기 위한 믿음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중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믿음은 있는데,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믿음이 너무 약한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두 가지 다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로마서의 대 주제는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진리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의인이 되기 위해서는, 율법을 지켜 선한행위를 하는데 있지 않고 아브라함처럼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각도를 달리해서보면, 아브라함의 믿음은 천국소유를 위한 믿음뿐만이 아니라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어떠한 믿음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강도 있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의 믿음은 한마디로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입니다.
인생을 사는 우리는 시시때때로 암담한 처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고 기다린다”는 자체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까?”하는 회의에 빠져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에 “아브라함이 어떤 믿음을 가지고 대처하였는가?”를 배우는 것이야 말로 가장 필요한 것일 것입니다.
그러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바라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가지는 특징은 무엇일까요?

1. 그의 믿음은 문제를 피하지 않고 맞서는 믿음이었습니다.

19절을 읽겠습니다.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람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여기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은 하나님과 “맞섰다. 대면했다”라는 뜻입니다.
당시 아브라함의 나이는 100세였으며, 그의 아내 사라의 나이 90세입니다.
인간의 상식으로 그들이 자식을 낳는다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방이 완전히 차단되어 뚫고 나갈 구멍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목할 사실은 아브라함은 이러한 사실을 위장하거나 숨기려 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나님과 대면했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자신의 곤혹스런 당면문제를 피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 밑바닥까지 들여다 볼 줄 알았습니다.
이것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의 특징입니다.
믿음이란, 과감한 노력이요, 장렬한 모험인 것입니다.
여러분, 직장이나 사업에 어려운 사람 있습니까?
잘 되는 모습을 믿고 바라십시오.
반드시 번창하는 실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자녀 때문에 고민하는 부모님 계십니까?
그 자녀의 멋진 미래를 그리며 바라보십시오.
반듯이 멋진 자녀가 실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아픈 사람이 있습니까?
건강한 모습을 바라고 믿으면 건강한 실상이 될 것입니다.
그 앞에서 결코 도망치지 말고 대면하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이 가진 믿음의 진가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통해 발휘될 것입니다.

2.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는 믿음입니다.

20절을 읽겠습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75세였을 때, 창12:2절에서 그에게 “큰 민족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신 다음 약 5년이 지난 후에, 다시 창15:5절에 보면 그에게 “하늘의 별처럼 많은 후손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19년이 지나서 아브라함 나이 99세 때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창17:2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그렇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이미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에게 그들이 후손을 볼 가능성이란 0.1%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후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약속이란, 이행시간이 늦어질수록 신뢰도는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약속이 늦어지면 상대방에게 불쾌감과 분노를 일으키게 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끝까지 믿을 수 있었던 그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 자신에게 주신 약속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주신 언약의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를 위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잘못하면 성경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겨 억지로 풀이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약속을 알 수 있을까요?
롬12:1-2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여기에서 세 가지를 교훈합니다.

1)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배우고 기도하십시오.
2) 자기가 처한 생활현장에서 헌신하십시오.
3) 경건한 삶을 실천하십시오.

이러한 가운데서 나를 위한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는 분별할 수 있습니다.

3.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입니다.

20절을 읽겠습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여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은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씀입니까?
특히 “영광을 돌렸다”는 부분은 매우 모호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조금도 어려운 내용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예배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묵상하면서, 그분의 성실하심과 긍휼이 풍성하심을 감사하고 찬양하는 태도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자기를 추스려 만들어 내는 제품도 아니요, 없는 것을 억지로 쥐어 짜내는 부산물도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 받는 믿음이 선물이라면, 세상을 사는 우리의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통해 스스로 자연히 생기는 신뢰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밀착되어 있으면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해도 안 믿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세상을 사는 우리의 믿음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행여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성도님의 믿음이 희미해지지는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바랄 수 없는 중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한결같은 아브라함의 믿음 주시고 회복시켜 달라고 간구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 믿음을 가지고 시련과 역경을 담담히 헤쳐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신뢰하고, 절대적인 믿음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반드시 아브라함이 경험한 기적을 바랄 수 없는 가운데 경험한 그 기적을 체험하는 성도가 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