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 (마가복음 10:27-31)

Johnangel 2023. 11. 5. 08:22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 (마가복음 10:27-31)

                                              

오늘 본문 말씀은 너무나 귀한 교훈을 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막10:28절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현세에 있어 백배의 축복을 받을 것을 말씀하시며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이 세상에는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가 있습니다.

대통령도 먼저 된 자가 있고, 나중 된 자가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장로님, 권사님이 먼저 된 자가 있고, 나중 된 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먼저 된 자 중에 나중 된 자가 많고, 나중 된 자 중에 먼저 된 자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1. 먼저 되었다고 교만하거나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나중 되었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절망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사람은 누구나 다 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뿐 아니라 익산도 그 모습이 많이 변했습니다.

이렇게 도시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도 변합니다.

3~40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첫째가던 교회 중에는 지금 작은 교회가 된 곳도 있고, 반대로 그때는 작은 개척교회였지만, 지금은 수만 명이 모이는 큰 교회가 된 곳도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에베소 교회는 사랑이 많은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을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겨버리겠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작은 교회가 큰 교회가 되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질적으로 좋은 교회가 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을 믿습니다.

사랑이 없던 교회가 사랑이 많아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에베소 교회는 사랑이 많던 교회가 그 사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사람도 변합니다.

제가 23년 전 고현교회에 부임할 때만 해도 젊은 집사님들이었는데 이제는 절뚝거리며 교회 계단을 오르내리시는 권사님들을 보면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릅니다.

여러분, 모든 것은 다 변합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변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모두 좋게 변해야 하겠습니다.

나쁘게 변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시길 바랍니다.

사람은 전부 변하게 되어 있지만 잘 변하고, 좋게 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국의 강철회사 회장인 카네기는 “쉬브”라는 사람을 후계자로 지명했습니다.

회사의 탁월한 중역들을 제치고 초등학교 밖에 졸업하지 않은 사람을 후계자로 지명하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쉬브”는 정원 청소부로 입사했는데, 그는 평소에 정원 청소뿐 아니라 공장 안까지도 말끔히 청소를 했다고 합니다.

그의 성실함이 눈에 띄어 그는 청소부에서 정식 직공으로, 사무원으로, 마침내는 카네기의 비서로 발탁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카네기가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나오는데 “쉬브”가 그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고 합니다.

깜짝 놀란 카네기가 “왜 아직도 퇴근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사장님께서 저를 언제 부르실지 모르는데 어떻게 자리를 비울 수 있습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쉬브”는 카네기가 가장 신임하는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카네기는 언제나 변함없고, 성실하고, 충성된 사람, 한 번도 어긋남이 없는 사람, 가장 믿을 수 있고 신임이 가는 그 사람을 후계자로 세운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는 이렇게 세월이 지나도 변함이 없는 사람, 성실하고 충성된 사람, 처음보다 점점 더 잘하고 더 훌륭해지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2) 먼저 된 자라고 해서 교만하거나 방심하지 말아야 하고, 나중 된 자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모든 평가는 마지막에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방심하지 말아야 하고, 나중 되었다고 해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7:8절을 보면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시작은 잘해야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마무리를 어떻게 하느냐?”입니다.

인생은 마라톤 경주와 같습니다.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출발은 일등으로 하지만,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출발은 늦어도 일등으로 들어오기도 합니다.

평가는 “마지막 결승점에 누가 먼저 골인하느냐?”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의 마라톤이 끝나는 날은 언제입니까?

이 세상이 끝나는 날입니다.

따라서 그 마지막 날까지 “어떻게 사느냐?, 어떻게 마무리를 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에게는 훌륭한 장수와 장군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요압 장군은 전쟁에 나가서 항상 승리하는 사령관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나이가 많아지고 늙게 되자, 요압은 다윗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다윗의 아들 아도니아와 함께 모의를 해서 아도니아를 왕으로 세우기로 자축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의 충성스러운 신하로 목숨을 걸어 충성을 바치던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첫째는, 그가 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교만해지면 건방진 일을 합니다.

어떻게 왕이 명령하지도 않았는데 자기 마음대로 왕을 세웁니까?

 

둘째는, 믿음이 없어서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믿음이고,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기를 원하시는데,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기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없음을 말합니다.

 

셋째는, 요압에게는 변절하는 반역의 기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상2:32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압의 피를 그의 머리로 돌려보내실 것은 그가 자기보다 의롭고 선한 두 사람을 쳤음이니 곡 이스라엘 군 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유다 군사령관 예델의 아들 아마사를 칼로 죽였음이라 이 일을 내 아버지 다윗은 알지 못하셨나니”

과거에 요압은 다윗이 시키지 않았는데도 아브넬이라는 장군과 아마사를 죽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 죄와 아도니아를 왕으로 세우려 했던 죄로 말미암아 그는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아무리 과거에 충성을 다했어도 그에게는 반역의 기질이 있었고, 자기 마음대로 사람을 죽이고, 왕을 세우려는 교만한 행동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상이 변하고 세월이 변해도 끝까지 하나님 잘 섬기고, 끝까지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3) 먼저 되었다고 해서 교만하거나 방심하지도 말아야 하고, 또 나중 되었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우리가 살아있는 한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죽지 않았다면 기회가 있습니다.

미래의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되었다고 해서 다 먼저 되는 것이 아니고, 나중 되었다고 해서 전부 나중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라도 “어떻게 결단하느냐?”에 따라서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아직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끄러운 과거가 있습니까? 과거에 매이지 마십시오.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다시 일어설 기회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결단하고 어떻게 출발하느냐?”에 따라서 아무리 밑바닥 인생이라도 먼저 된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또 하나의 교훈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먼저 된 자가 되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아시고, 감사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나중 된 자였는데, 먼저 된 자가 되었습니까?

더욱더 큰 은혜인 줄 아시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시길 바랍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신앙의 지조를 지키다가 순교하게 되는 것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나중 된 자 중에는 먼저 될 자가 많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먼저 된 자 같지만, 순교는 스데반 집사가 먼저 했습니다.

베드로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 먼저 된 자로서, 3천 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훨씬 더 나중에 예수님을 믿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는 전 세계로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전15:9-10절을 읽겠습니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렇습니다

사도바울은 철저하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27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다시 말해서 우리의 절대주권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먼저 되었다고 해서 교만하면 안 됩니다.

방심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나중 되었다고 해서 실망하고 절망해서도 안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변합니다.

평가는 마지막에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우리도 먼저 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나중 되었습니까? 과거에 매이지 마십시오. 이제 결단을 내리십시오.

그래서 점점 더 좋아지고 더 좋아져서 나중에는 정말 훌륭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 받으시는 먼저 된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