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늘 급한 일로 쫓기십니까? (골로새서 4:2)

Johnangel 2023. 11. 21. 17:51

늘 급한 일로 쫓기십니까? (골로새서 4:2)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두 종류의 기도를 확보해야 합니다.
첫째는 육신을 위한 기도확보이며, 둘째는 영혼을 위한 기도확보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5분 이상 호흡을 못하면 뇌기능이 상실되는 것처럼, 성도들의 영적호흡인 기도가 끊어져서 하나님의 능력이 공급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영적으로 무능한 자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고 한 가정의 제사장으로서의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권이 회복되는 기도가 확보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바울은 “골로새교회 교인들에게 기도하는 성도가 되라”고 권면합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 가장 많이 강조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것은 가장 적게 실행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누구나 기도의 필요성과 유익에 대해서는 공감합니다.
그런데 “바쁘다”는 이유로, 기도의 자리로 들어가지 못한 채 피상적인 독백에 그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에게 기도보다 더 시급한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성경은 기도에 대하여 영혼의 호흡이며, 우리 그리스도인의 표지라고 정의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도의 정의에 동의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기도가 실제적인 하나님과의 대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예배시간의 한 순서로만 인식되거나 자녀문제나 경제문제와 같은 위급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영적으로 깊이 교제하는 성도의 특권으로 누려져야 합니다.
막1:35절에 보면 예수님은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목표가 분명한 성취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그 완성된 삶을 사실 수 있었던 비결은, 예수님의 새벽 이른 시간의 기도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기도로 삶의 목적을 부여잡고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셨다면, 우리도 마찬가지로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붙잡고 삶의 완성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찰스 험멜은 그가 쓴 “늘 급한 일로 쫓기십니까?”라는 책에서 “자신을 돌아보느라고 잠시 멈춰 설 때 시간의 부족보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가 처해있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곧 그것은 기본적으로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문제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게 될 때 삶의 우선순위를 정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믿음의 사람으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디언 선교에 헌신했던 데이빗 브레이너는 30대의 짧은 생애를 통해 후세까지 영적영향을 미치는 사람으로 쓰임을 받았으며, 예수님께서는 33세에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시간이 없다고만 핑계하시겠습니까?
언제 주의 일을 시원하게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골로새 교인들에게 기도에 대한 두 가지 원리를 말씀합니다.


1. 기도를 항상 힘쓰라는 것입니다.


2절에 상반절에 보면 “계속 기도하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꾸준하게 지속적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분주한 체질을 부단한 기도체질로 바꾸어야 합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이 왜 성도들에게 꾸준하게 기도하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기도의 생명선이 끊어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의중을 접수하고, 나의 형편을 아뢰는 기능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자의 삶은 결코 비천한 삶에 이르지 않습니다.
주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열매가 풍성한 삶으로 이끌어주십니다.
그러므로 내 생명이 다할 때까지 항상 힘써야 하는 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시116:1-2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하나님은 평생 기도하는 믿음의 성도를 붙잡아 주십니다.
중국 선교사로서 아름다운 삶을 보인 허드슨 테일러는, 선교사의 길을 시작하는 후배에게 “여보게, 자네에게 맡겨진 지역에 들어가려면 무릎으로 전진해야 된다네.”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는 평생을 무릎으로 전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기도의 무릎을 꿇는 삶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승리하게 하는 것입니다.


2. 기도로 감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2절 하반절에 보면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간구하는 기도를 많이 합니다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주신 것을 감사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감사가 앞장서지 않는다면, 우리는 원망과 불평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의 질적 수준은 소유나 문화적인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심령의 상태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감사를 계발하십시오.
바울은 빌4:6절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빌4:7절에서는 “시시각각 우리에게 엄습해오는 삶의 두려움과 염려를 우리 힘으로는 떨쳐버릴 수 없지만,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반드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평강으로 지켜 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어려운 환경이라도 주님의 은혜로 극복할 수 있다는 마음의 평안이 있을 때, 우리는 장애물을 두려워하지 않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창공을 높이 나는 독수리는 강을 어떻게 건너갈까를 염려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장애물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기도의 줄을 붙잡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삼성경제 연구소에서 “21C이해의 키워드 7가지”를 발표했습니다.
1. 응축의 시대/ 작은 것이 아름답다.
2. 유연의 시대/ 부드러운 것이 강하다.
3. 모험의 시대/ 남이 가지 않은 곳에 길이 있다.
4. 공유의 시대/ 나눌수록 커진다.
5. 특이의 시대/ 튀는 인재가 일을 낸다.
6. 지식의 시대/ 보이지 않는 것이 돈이 된다.
7. 기본의 시대/ 태풍의 핵은 고요함이다.
이 내용은 우리 성도들의 성공적인 삶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성도의 삶은 위의 7가지 요소를 모두 통합 심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 안에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삶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될까요?


첫째는, 기도의 즐거움을 회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의무이기 이전에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오늘 기도해야 합니다.
극작가인 죠지 버나드쇼는 자신의 비문의 글을 미리 준비하여 자신이 죽으면 묘비에 이렇게 기록하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어영부영 이렇게 살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여러분, 선한 일을 미뤄서는 안 됩니다.
기도는 선한 일 중의 선한 일입니다.
2015년을 맞이하여 갖는 이번 특별새벽기도회에 나와서 목적을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셋째는,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팀웍이 필요합니다.
초대교회 120성도가 함께 기도할 때 강력한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함께 주님 앞에 나아가 영적 시너지 효과를 창출합시다.
온 교회가 기도를 시작할 때 우리 공동체의 지체인 우리가 모두 함께 기도에 동참합시다.


넷째는, 집중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집중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올해에도 우리에게 기도할 수 있는 믿음과 환경과 동역자를 주신 것을 감사하고, 자신과 가정과 이 지역과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응답받는 한주간의 새벽기도회가 되게 합시다.
우리 모두 이번 특별새벽기도를 통해 하늘의 영권을 회복합시다.
하나님의 귀한 은혜가 이번 한 주간 새벽을 깨우는 우리 모든 성도들의 가슴과 가정에 풍성하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