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특권보다 더 중요한 것 (로마서9:1-5)

Johnangel 2024. 1. 12. 23:56

특권보다 더 중요한 것 (로마서9:1-5)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신앙을 갖는 순간부터 특별한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시고, 하늘나라의 기업을 받게 되고, 영생을 소유하고, 기도하면, 언제든지 응답 받는 삶을 살 수 특권중의 특권을 부여받은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런 특권에 부응하는 의무를 다하고 살아가고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바울은 선민이었던 이스라엘 백성의 특권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지적하고 싶어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특권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고 특권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특권과 기대는 무엇이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우리가 받은 특권은 무엇입니까?

 

1) 양자됨의 특권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던 그들이 이제는 민족적으로 하나님의 장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출4:22절에 보면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고 했고, 신14:1절에는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라고 하였습니다.

 

2) 영광을 경험하는 특권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성막이나 성전에 들어갈 때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3) 언약들을 선물로 받은 특권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순간부터 하나님은 그들에게 언약을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괜히 자녀들과 약속을 하시고 미래를 향한 희망을 주시는 것처럼 아브라함과 언약하시고 모세와 언약하시고 다윗과 언약하십니다.

 

4) 율법을 수여받은 특권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 도착했을 때, 모세를 산위로 부르시고 그들의 새로운 삶의 규범이 될 거룩한 법을 주셨는데, 이 율법은 그들의 삶의 원칙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삶의 방향자체가 혼란한 세상에서 분명한 원칙을 갖고 살수 있다는 것이 특권입니다.

 

5) 예배의 특권입니다.

구약에서는 피조물이요 죄인 된 인생이 하나님을 대면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을 날마다 대면하고 그분을 찬양하고 경배할 수 있게 된 거룩한 특권입니다.

 

6) 약속들을 붙들고 사는 특권입니다.

이미 우리가 앞서서 언급한 언약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통하여 주신 그 민족의 내일과 관련된 중요한 공동체적인 사안들이었다면, 여기서의 약속들은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것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약속들이 있었기에 고난의 역사의 격랑을 헤치고 날마다를 희망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메시야의 약속은 그들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희망의 약속이었습니다.

 

7) 명예로운 조상들을 갖게 된 특권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은 자랑할 만한 조상들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가 한 300여명이 됩니다.

그 가운데 100여명이 모두 유대인 출신입니다.

전체 노벨상 수상자의 약 30%가 되는 셈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 아모스, 느헤미야, 등등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 뉴튼, 색채의 마술사 샤갈, 작곡가 쇼팽, 천재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정신 분석학의 원조 프로이트, 세계경제계의 큰 손들이요 투자가들인 그린스펀, 조지 소로스. 이런 분들이 다 유대인들입니다.

거기다가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육신적으로 말하면, 예수님도 유대인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5절을 읽겠습니다.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런 특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2. 그렇다면 이 특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기대입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다운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런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그들이 누리고 있었던 외적인 특권들이 “그들을 자동적으로 특권을 누릴만한 자로 만든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특권이 오히려 그들을 눈멀게 하고 오판하게 만든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특권들은,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다운 자녀가 되게 할 수 있는 조건들인 것은 틀림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조건들이 개인의 책임을 면제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망각한 것입니다.

그냥 내가 선민 공동체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선민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선민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며, 선민이 되기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질문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오늘날 모태교인들이 종종 빠지는 신앙의 함정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아버지나 어머니가 목사이고 장로이고 권사이기 때문에 나도 자동적으로 신앙인이 된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디신학교의 학장이었던 조지 스위팅(George Sweeting)은 “하나님에게는 손자가 없다.”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나의 부모가 신앙인이라는 것은 축복된 특권이지만, 우리 각자의 결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특권이상으로 관심을 가져야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로마서 9장 전체를 보면,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1)육신적인 태어남이 아닌 약속의 말씀에 의지한 영적인 태어남의 중요성입니다.

 

롬9:7절을 읽겠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어떻게 이삭이 태어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사라의 잉태가 더 이상 불가능한 가운데에서도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의지함으로 이삭이라는 새생명을 얻었습니다.

롬9:9에 보면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신앙적인 환경 안에 태어나거나 교회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개개인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아드리고 예수를 믿음으로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경험이 계십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누리는 그 어떤 특권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2)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의 중요성입니다.

 

롬9:31-32절을 읽겠습니다.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우리의 행위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주관적인 의에 근거한 행위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무서운 교만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교만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날마다 율법을 읽고 토론했기 때문에 이것이 그들을 의롭게 하는 것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이것은 종종 제자훈련을 마친 사람들이 “내가 제자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수준에 와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잘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말씀을 듣고 최선을 다해 행하더라도 나의 행함은 여전히 주님 앞에서는 더러운 걸레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만 죄인 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피 흘리신 예수의 피를 믿고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구주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런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우월한 민족적, 사회적, 종교적인 특권들을 소유하고도 구원을 경험하지 못한 이스라엘의 골육 친척들로 인하여, 사도 바울은 안타까워하며 그들을 인하여 고통스럽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내 자신이 그들을 대신하여 저주를 받고 버림을 받는 한이 있어도 제발 이런 답답한 저주의 자리에 있는 내 민족과 내 가족과 친지들이 주께 돌아오기를 소원하고 있다고 본문에서 고백합니다.

여러분의 주변에는 인생의 여러 특권을 즐기고 사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주님의 구원을 알지 못하고 저주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없습니까?

출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구원입니다.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생을 얻는 일입니다.

명예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가 되는 일입니다.

어떤 권세를 붙잡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원한 소망이신 그리스도를 붙잡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바로 전도요, 선교입니다.

우리는 구원 얻은 자로서 주님의 명령을 따라 구원받지 못한 내 가족과 형제와 이웃 그리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