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주는 자의 행복 (디모데후서 2:1-2)

Johnangel 2024. 6. 12. 11:17

주는 자의 행복 (디모데후서 2:1-2)

                                         

“교회”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못 쓰는 것을 주님께 갖다 맡기고, 주님으로부터 새것을 가지고 가는 “영적인 쇼핑 센타”가 교회입니다.

이것은 공짜로 못쓰는 것을 버리고, 새것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누구든지 그 사람은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의 가장 위대한 인물이 “어거스틴”입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이 얼마나 타락한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보통 타락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예수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갈 때, 인류역사 가운데 최고의 가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가치 없는 죄인 된 존재이지만, 교회에 가면 금 그릇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없는데서 있게 하시는 “창조자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를 “리모델링”하시는 것은, 땅 집고 헤엄치기입니다.

주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잘 믿을 있을수록 주님의 평안을 누리고, 은혜를 받을수록 주님의 평안을 누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요즘 우리는 모든 면에서 과거에 비해 정말 풍요로워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기쁨이 없고, 평안이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믿음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것으로 평안을 누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부족하고 짜증스러운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면에서 풍요를 누리지만 “주님의 평안”이 없습니다.

그러나 풍요 속에 살아도, 여전히 풍랑도 일어나고, 불경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왜 그런 일이 없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이 땅에는 3개의 천국이 있다.”고 합니다.

“마음의 천국, 교회의 천국, 가정의 천국”인데, 우리는 이 3곳의 천국을 다니면서 이 땅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3가지 외에는 천국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3개의 천국” 때문에, 우리의 다른 생활에 천국이 언제나 이어지게 되고, 이 천국생활로 말미암아 이 모든 세상의 삶을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삶인 줄 믿습니다.

오늘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주는 자의 행복”입니다.

 

눅6:38절을 읽겠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전부 역설적입니다.

이 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부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여 우리에게 주시고, 그 아들 독생자까지 우리에게 주시고, 날마다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먹여주시고, 입혀주시고, 길러주시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오셔서 생명까지 주시되 십자가에서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쏟아 부어 한없는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고 “성령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에게 함께 하시며 기도하게 하시고 위로하시며 승리하도록 인도하십니다.

따라서 이렇게 주는 것이 바로 기독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심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여전히 모든 범사가 잘 되고 형통합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는, 하나님의 모든 은혜가 값없이 주어지는 곳입니다.

 

어느 나라 민족이나 인사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인사와 성경인사의 차이점은, 우리는 인사를 할 때 “먹었느냐, 잘 잤느냐” 등등. 꼭 과거의 일을 가지고 인사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인사는 “샬롬”하는데 “앞날에 평화가 있기를 원한다. 앞으로 큰 은혜가 있기를 원한다.”는 뜻으로서, 앞날을 축복합니다.

이제부터 우리도 성경대로 “미래의 인사, 영적인 인사, 축복을 비는 인사, 평화를 비는 인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축복받은 “교회는 샬롬의 교회요, 축복받은 가정은 샬롬의 가정”입니다.

“샬롬”이 깨어지면 다 깨어지는 것입니다.

질서도 깨어지고, 정치도 문화도 깨어집니다.

우리 기독교는 “평화의 종교”입니다.

화목제물이 되어주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우리에게 “샬롬”을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주 안에 있는 자는, 어디에서도 “평화”가 있는 것입니다.

 

평화는 대체로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피스”라고 하는 평화입니다.

 

“피스”라는 어원은 “팍스”인데 “힘으로 얻는 평화”를 뜻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잘 살 때 평화가 온다. 소원이 이루어질 때 평화가 온다. 성공할 때 평화가 온다. 출세해야 평화가 온다. 이겨야 평화가 온다. 무기를 가져야 평화가 온다. 세계를 정복해야 평화가 온다.”고 믿고 찾습니다.

그래서 “자동차도 더 좋은 차를 타야 평화가 온다. 제일 좋은 집에 살아야 평화가 온다. 제일 좋은데, 점점 올라가야 평화가 온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 “샬롬”입니다.

 

이 “샬롬”이라는 히브리어의 어원은 “대가를 지불하다.”라는 뜻으로써,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피 흘림의 대가를 지불하고 우리에게 주시는 “평화”입니다.

따라서 “샬롬” 우리에게는 더 있어서, 더 가져서, 평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평화이기 때문에, 있든지 없든지, 어느 곳에 있든지, 평화가 있는 것입니다.

잘살아도 평화요, 못살아도 평화요, 집에서도 평화요, 들에서도 평화입니다.

사도바울은 감옥에서도 평화를 누렸습니다.

악한 죄 파도가 많아도 평안이 있습니다.

나 어느 곳에 있어도 늘 평안이 있습니다.

이 평화는 주님이 주시는 위로부터의 평화입니다.

그리고 이 평화는 내 안에 있는 평화이기 때문에 빼앗기지도 않습니다.

영원히 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으면, 일생동안 이 평화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몸이신 교회에 오면 왜 좋습니까?

마11:28절을 읽겠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의 몸이신 교회는 죄까지도, 다 주님께 맡기려고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주기 위해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셨지만, 먼저 우리의 신앙은 2/4박자입니다.

먼저는 은혜를 받고, 그 다음에 받은 은혜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자연법칙도 그렇고, 이 세상의 법칙도 그렇습니다.

공부도 처음에는 다 배우고, 그 다음부터는 주는 것입니다.

배운 것을 주는 것입니다.

사람의 머리는 계속 배우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30-40대 되면, 머리에 전달이 잘 안 되고, 기억력이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이때는 줄 때이기 때문입니다.

전부가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만드는 과정이 있고, 주는 과정이 있습니다.

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많이 받고, 그 다음 결혼해서는 받은 사랑을 그대로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가정이 되고,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자녀를 위해서 희생하고, 남편을 위해 희생하고, 아내를 위해 희생하고, 항상 주는 자가 되고, 사랑하고 헌신할 때, 가정에도 축복이 있고, 사회에도 축복이 있고, 국가에도 축복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

2절을 읽겠습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들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해져서 복음을 주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어떻게 주어야 할까요?

두 곳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향하여, 다른 하나는, 이웃을 향하여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리고, 또한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향하여는 드려야 할 곳은, 구체적으로 교회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난한 사람 두고 교회만 잘 되면 되느냐?”고 말합니다.

여러분, 한 국가가 달려들어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 가난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따로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복을 생각해야 합니다.

부모님이 물려준 것으로, 우리가 잘 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잘 섬길 때,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감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나도 살고, 민족도 살줄로 믿습니다.

우리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가 다 주고, 이 땅을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다 각기 받은 은사로 이번 차세대 여름수련회에기도와 능력과 봉사와 시간과 관심과 물질을 주는 자가 됩시다.

이들은 모두 우리 교회의 다음세대 주인공들입니다.

 

주는 자가 복을 받고, 주는 것이 행복한 것입니다.

주는 교회는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 교회는 지금 놀라운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부를 잘했나? 못했나? 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내 자녀가 “잘했는가? 못했는가?”에 관심을 집중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지금 “내 자녀가 영적으로 살았는가? 죽었는가?”에 관심을 갖습니다.

만약 “내 자녀가 영적으로 살아있다”면 지금은 못해도 언젠가는 반드시 잘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세계관을 구축”하지 못하면 “세상의 가치관이 교회와 가정과 다음세대”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기독교 가치관을 구축”하지 못하면,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의 가치관”이 교회와 가정을 흔들어 놓을 것입니다.

영화, 드라마, 음악, 미디어들 등, 각종 정보들 속에는 많은 가치관들을 내포하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들을 접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기독교인들 특히 다음세대들이 “세상의 가치관”으로 물들어 갑니다.

따라서 “기독교 가치관”은 하나님 말씀이 아니면, 절대로 구축되지 않는 것입니다.

 

요즘 교회에서 성도들이 가장 기피하는 봉사가 주일학교 교사입니다.

다음세대 아이들에게 “기독교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이번 여름 땀 흘리며 수고하는 우리 “주일학교 교사들”에게 용기를 주고, 기도해 주고, 관심을 가져주고, 위로와 격려를 주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