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생명축제

새생명축제(귀빈축제, 행복축제) 설교 원고 (누가복음 16:19-31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

Johnangel 2015. 11. 23. 00:50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누가복음 16:19-31)


 성경에서는 우리가 지금 이 땅에서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에 따라서 나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세상의 짧은 생애를 끝냈을 때, 영원을 어디서 보낼 것인가? 그 영원한 상태는 어떤 곳일까?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1. 영원한 세계는 우리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 즉시로 가는 곳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 본문을 가리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본문에 보면 비유라는 얘기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20절에 보면 부자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지만, 부자와 함께 등장하는 주인공인 거지 나사로의 이름은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이름까지 확실하게 명기한 것을 보면, 이것은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22절에 보면 “이에 그 거지가 죽었다” 했습니다.

“사람이 죽었다”는 기독교의 가장 단순한 설명은 “사람의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어서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육체는 흙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흙으로 돌아가지만, 육체에서 분리된 영혼은 구천을 떠도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죽으면 우리의 영혼은 즉시로 어딘가로 갑니다.

22-23절을 읽겠습니다.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그렇습니다.

부자는 죽어서 “그가 음부”라는 곳으로 갔고,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으로 갔습니다.

음부라는 곳은 본래 영어에서 헤데스라고 불리 우는 곳으로서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이 부자는 죽자 즉각적으로 “음부”로 갔고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으로 갔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 아브라함의 품에 대해서 전통적으로 성경주석가들은 이것을 낙원, 혹은 천국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천국을 왜 아브라함의 품으로 묘사를 했을까요?

마8:11절에 보면, 로마제국의 백부장이 자기 아들이 병에 걸려서 죽어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 와서 고쳐달라고 간청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너의 집으로 가자”고 하시자 말씀하시자, 백부장은 “선생님, 우리 집에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의 수하에도 부하가 있어 저더러 오라하면 오고 가라하면 가나이다. 그러므로 그냥 이곳에서 말씀만하여도 제 아들이 낫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 백부장이 비록 로마사람이었지만 자기에 대한 이런 놀라운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칭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장차 동서남북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그리고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렇습니다.

성경이 유대적 배경을 가지고 쓰여졌기 때문에 유대인의 대표적인 조상이 아브라함인 것처럼, 그 아브라함의 품이라는 것은 바로 천국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주교의 경우에는 “천국과 지옥의 중간기의 음부, 혹은 림보라는 장소에 가서 상당한 시간을 보낸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은 죽는 즉시로 음부든지 아니면 천국이든지 둘 중의 하나를 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이 죽은 후 그의 영혼이 구천을 떠돌다가 도착하는 곳이 아니라 나의 생명이 이 땅에서 떠나가는 그 순간 즉시로 가야 하는 곳입니다.


2. 영원한 세계는 의식이 살아 있는 곳입니다.


2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그렇습니다.

여기 부자가 지금 고통하고 있는 음부는 분명히 의식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음부는 지옥인데 의식이 살아 있는 생생한 세계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그리고 기억이 살아 있는 곳입니다.

지금 부자는 불꽃 속에서 타는 듯한 목마름의 고통을 받으며 말하기를 “물방울 하나를 찍어서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나사로가 갔던 세계를 보십시오.

2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지금 거지였던 나사로는 창조주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죽은 후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지만, 우리의 영혼은 의식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3. 영원한 세계는 지옥과 천국 두개의 대조적인 장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25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거니와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괴로움이 단순히 육체적 고통만이 아니라, 이것은 정신적인 고통. 그리고 영적인 고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끝없는 정신적인 고통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세상 사람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스스로 생명을 끊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정신적인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는 그것이 사후의 모습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8절에 보면, 음부에 들어간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라고 부탁합니다.

따라 합시다.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오늘 이 해피데이 행복잔치를 배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가끔 어떤 사람에게 예수 안 믿는 이유를 물어보면 “우리 부모님이 안 믿으셨는데 의리가 있지 어떻게 나 혼자만 천국에 가겠느냐? 차라리 부모님과 같이 지옥에 같이 가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주 인간애를 가진 소리같지만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라고 지금 지옥에서 소리치고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뭐라고 소리치고 있습니까?

“나는 예수 안 믿고 살다가 이곳에 왔지만 내 사랑하는 자녀들만은 내 형제만은, 내 부모들만은, 내 사랑하는 후배들만은, 내 사랑하는 친구들만은 이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이렇게 소리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지옥의 정체를 꺼지지 않는 불꽃, 영원한 목마름, 캄캄한 어두움, 그리고 끊임없이 들려오는 통곡소리, 귀신들로 가득 찬 곳이라고 가르칩니다.

어떤 분은 이런 질문을 할지 모릅니다.

“아니,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을 그런 곳으로 보낼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지옥에 아무도 보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보내기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왜 가야 합니까?

마25:41절에 보면, 본래 지옥이란 장소는 사탄마귀와 그를 따르는 귀신들을 위해 예비된 곳입니다.

그런데 불행한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이 사탄마귀를 자기의 주인으로 알고, 그를 추종하다 보니까 마귀가 있는 곳, 귀신들이 있는 그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계21장에 보면, 우리의 영혼이 육체를 떠나 천국에 도착하자마자 즉각적으로 경험할 일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셔서 저희의 모든 눈물을 씻기시매 다시는 아픔이 없고 다시는 애곡함이 없고 다시는 슬픔이 없는 곳”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자마자 경험하게 될 첫 번째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달려 나와 나를 안아주시며 “네가 세상에 있는 동안 얼마나 아파하고 슬퍼했는지를 내가 안다”라고 위로하시며 내 눈물을 씻겨 주시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디로 가시기를 원하십니까?

천국입니까?, 지옥입니까?, 둘 중에 하나입니다.

나사로는 이 땅에서 가난하고 고통스런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아마 그는 죽었을 때 변변한 장례식하나 지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시청에서 나와서 그의 시체를 간단히 씌워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반대로 부자는 삶 자체가 호화로왔습니다.

따라서 그의 장례식도 호사로운 장례식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이 그의 육체를 떠나는 그 순간, 상황은 역전됩니다.

한사람은 영원한 빛의 나라에서, 또 한사람은 캄캄한 헤어날 수 없는 어둠 속으로 떨어집니다.

이 두개의 대조적인 장소, 천국과 지옥.

지금 당신이 가는 곳으로 가고 있습니까?


4. 서로 왕래가 불가능한 곳입니다.


26절을 읽겠습니다.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서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죽으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때는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떤 삶을 결단을 하느냐?”하는 그것이 내가 영원한 천국으로 가던가? 아니면 내가 영원한 지옥으로 가던가? 영원한 운명을 결정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줄 아십니까?

22절에 보면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나사로가 죽는 순간 누가 임했습니까?

천사들이 와서 그의 영혼을 하나님의 품으로 올려갑니다.

그렇습니다.

천사들은 우리 믿는 자들의 영혼의 가이드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도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우리를 돕게 하시지만, 우리가 세상을 떠나는 바로 그 순간, 그 영혼을 천국으로 옮겨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순간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내일 결정할 시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일은 우리에게 보장된 시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마지막 남아 있는 질문은 딱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무엇이 이 천국과 지옥을 결정할까요?

부자는 부자였기 때문에 지옥에 갔고, 나사로는 가난했기 때문 천국 간 것입니까?

흔히 그렇게들 해석을 많이 합니다만 그것은 성경에 대한 깊은 오해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가난은 미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자신이 게을러서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 운명을 결정했을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이 부자의 일생 속에는 회개가 없었습니다.

30절을 읽겠습니다.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죄로부터 돌이켜 하나님을 향해서 내 삶을 전환시키는 결단이 없다면 아무도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은 지옥입니다.

그리고 회개와 함께 강조되어야 될 한 가지 사실은 믿음입니다.

저는 나사로가 가난했기 때문에 천국으로 간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천국에 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나사로라는 이름의 뜻이 뭔지 아십니까?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시다”

그래서 저는 나사로가 가난했기 때문에 천국에 간 것이 아니라, 그의 가난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부자는 부유하기 때문에 자기의 재력을 믿고, 재산을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훨씬 더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나사로는 가난하기 때문에 그의 불행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달려와 “하나님. 저를 도와주세요. 제가 의지할 곳 없어요. 당신이 나의 구원의 하나님인 것을 내가 믿습니다”

그래서 이 믿음이 그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준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 자녀의 이름을 모르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사실은 부자는 세상에서 당당히 살았겠지만 그 이름조차 나와 있지 않습니다.

부자는 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명함을 가지고 다녔겠습니까?

하지만 가난한 나사로가 이 세상에서 살 때 아마 그의 이름을 기억해 주는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나사로”를 아셨습니다.

그는 가난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역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요1:12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책에 보면, 마지막 최후의 심판자리에서 이런 선언이 나옵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자는 다 불못에 던지 울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의 이름들을 생명책에 다 기록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자녀들을 다 아십니다.

그렇습니다.

나사로. 그는 회개하고 예수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것이 영원한 천국의 주인공이 되게 한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