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성탄절 설교원고 - 구원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10:7-15)

Johnangel 2018. 12. 11. 11:44

성탄절 설교원고 - 구원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10:7-15)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유한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 인생을 책임져 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학문을 쌓고, 지위를 얻고, 물질을 소유하고, 편리함을 누릴지라도, 거기에 우리 인생을 맡겨서는 안 됩니다.

“다른 것을 모두 다 가졌다.”고 할지라도 예수그리스도를 모시지 않은 인생은 결코 성공적인 인생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를 등진 것은, 모든 것을 등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예수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십니까?


1. 예수 그리스도는 양의 문이십니다.


7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본문의 당시 배경을 보면, 날 때부터 시각 장애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를 긍휼히 여기시고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종교적지도자였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자신들의 인기를 예수님에게 빼앗기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상해서 예수님을 비난합니다.

이런 자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을 유일한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유대인은 대부분 유목민이었습니다.

그래서 초원에서 양을 치다가 해가 지면, 양을 모아 우리를 공동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문으로 들어오는 양들을 보며 관찰하고, 아침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불러 초원으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문을 통과해야만, 우리 안으로 들어 올 수가 있고, 나갈 수가 있습니다.

양이 이 문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그 양은 사나운 짐승에게 찢겨 죽고 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유일한 양의 문”이라는 말은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을 통하라”는 뜻입니다.

9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여기에 보면, “양의 문”이라는 의미가 두 가지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첫째로, 주님은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는 양의 문이십니다.


“누구든지”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와 도우심이 필요한 자는 제한이 없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 “누구든지”의 은혜를 깨달은 자는 감격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올바로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학식, 건강, 지위, 소유의 정도에 상관없이 누구든지 초청하십니다.

누구든지 양의 문 되신 주님께 들어가기만 하면 만족과 기쁨과 평안을 경험 할 수 있고, 목자 되시는 주님의 인도와 보호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고후5:17에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고, 요3: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입니다.

따라서 이 “누구든지”의 도리를 깨달았다면, 이미 구원받은 우리는 또 다른 사람들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는,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와야 하지만, 반드시 주님을 통해 들어가야만 합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구원의 문을 찾아 두드립니다.

어떤 사람은, 도를 닦음으로, 참선을 통해, 명상을 통해, 고행을 통해, 자연을 섬김으로 문을 두드리지만, 거기서는 결코 구원의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구원의 문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를 통과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와야만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의 배타성입니다.

지난 2천년 동안에 예수님에 대해 연구를 해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들의 연구에 의하면 “예수님은 인류 최고의 스승이셨다.” “예수님은 사회 변혁가였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친구였다.” 등 다양한 말들을 했습니다.

모두 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죄인의 구세주이시다.”를 빼면, 모든 연구는 휴지조각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스승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누구든지 구원의 문이신 “예수님 안에서 주님을 발견하고 자신을 발견하느냐? 아니면 구원의 문 밖에 있느냐?”에 따라 인생의 색깔이 달라집니다.

“구원의 문을 출입한 경험이 있는 자와 교회당 문만 출입하는 자”의 삶은 같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내 자신이 구원의 문에 들어가 있는지, 예수그리스도가 내 개인의 구주와 주님이신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모시는 심령은 지옥이 천국으로 변하지만, 주님이 없는 마음은 아무리 천국 같은 곳에 살지라도 실제는 지옥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11절을 읽겠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이 말씀은, 여러 목자들 중에 한 명의 목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유리방황하는 양떼들을 올바로 인도하게 하기 위해서 내려주신 유일한 목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선한 목자는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는, 자신의 양을 정확하게 안다는 것입니다.


14절에 보면, “우리 자신에 대해, 우리의 미래에 대해 나 자신보다 선한 목자 되시는 주님이 더 잘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바르게 인도하시고 부족함을 채우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따라서 목자가 양을 아는 것처럼, 또한 양도 목자를 알아야 합니다.

나를 정확히 아시는 주님 앞에서 숨김없이 투명한 관계를 회복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하나는,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성탄이 필요합니까?

그리고 그 성탄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인간육체를 입고 오신 날이 성탄입니다.

그리고 성탄은, 하나님께서 영으로 임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육신을 입고 오신 실제적인 사건입니다.

이렇게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제물이 되어 죽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목자이신 예수그리스도는 바리새인들처럼, 입으로만 말하는 분이 아니고, 몸으로 삶으로 희생하시고 헌신하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 모든 인생이 그분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분은 그분의 방법대로 우리 모든 인생의 삶을 최선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모셔 들이지 않고 문밖에 세워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온 마음을 다하여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 자신의 삶을 위해 기도로 맡겨 보신 때가 언제입니까?

그리고 신실하시고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 가정과 자녀들의 미래를 기도로 맡겨 보신 때가 언제입니까?


결론적으로, 양의 문이시며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됩니다.

10절을 읽겠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생명을 보존 받는 차원만이 아닙니다.

영육의 양식을 공급받고,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차원의 기쁨과 만족을 얻는 상태요, 자유와 인도와 보호함을 받는 상태를 말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생명을 얻는 단계에 머무르지 말고, 더 풍성히 얻는 단계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예배를 드리는 분들 중에 혹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예수님은 구원의 문이시며 선한 목자이시다.”는 이 사실을 내 인생의 두 기둥으로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고후6:2절의 말씀처럼 “지금이 은혜 받을만한 때요 구원의 날”인 것을 명심하시고, 미루지 말고 주님 앞에 나와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구원의 은총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