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성탄절 설교원고 - 성령과 동행한 사람들 (누가복음 2:25-38)

Johnangel 2018. 12. 11. 11:43

성탄절 설교원고 - 성령과 동행한 사람들 (누가복음 2:25-38)

                  

크리스마스가 되면 해마다 어김없이 우리가 만나는 성경인물들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들은 동방박사, 목자들, 그리고 헤롯왕일 것입니다.

그러나 의사 누가는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하면서, 성탄이후 아기 예수를 만난 낯선 사람들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시므온과 안나입니다.

이들은 모두 성탄에 잊혀진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성령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성령 하나님이 이들을 잊지 않고, 누가를 통해 성경에 기록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은 금년 한해를 마무리하고, 2013년 새해에 부어주실 하나님의 축복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기대하며 성령과 동행한 이들을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1. 시므온과 안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1) 이들은 경건하게 늙어간 사람들입니다. 26절을 읽겠습니다.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우리는 시므온의 나이를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의 응답받은 기도제목 가운데 하나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뜻을 이룬 것을 보면, 그가 매우 고령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안나의 경우는 그녀가 과부가 된지 84년이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경학자들 가운데는 “그녀의 나이는 적어도 100세는 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25절에 의하면, 이들은 모두 “의롭고 경건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의롭고 경건하게 늙어간 것입니다.

여러분은 경건하게 늙어가신 분들을 보신일이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늙어가는 것이 경건하게 늙어가는 것일까요?

본래 “경건하다”는 말은 “무엇인가 한 대상을 향하여 드려진 거룩한 삶”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하나님 안에서 갖게 된 꿈, 즉 메시야의 꿈을 향해 드려진 거룩한 삶을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2) 이들은 성령에 감동된 사람들입니다.

시므온과 안나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두 사람이 모두 다 선지자라는 사실입니다.

훌륭한 선지자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그가 얼마나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들의 삶을 증언하는 누가의 표현을 주목해 보십시오.

25-27절을 읽겠습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그가 주의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므온은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성령에 감동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 안에는 누구나 성령이 거하고 계십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 성령을 근심하게 말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 성령의 인도를 소멸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성경이 말씀하시는 성령을 근심시키지 아니하며, 성령을 소멸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 열쇠는 바로 “거룩함”입니다.

그렇습니다.

죄가 우리의 삶 안에 들어오면, 성령이 근심하십니다.

죄가 우리 안에 들어오면 보혜사 성령이 더 이상 우리를 인도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감동의 조건은 깨끗함입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깨끗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했다”고 했습니다.

안나는 “84년 동안을 과부로 살면서 깨끗한 삶을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그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으로써 거룩한 그릇, 깨끗한 그릇을 사용하십니다.


3) 이들은 성전을 사랑한 사람들입니다.

시므온과 안나의 또 하나의 삶의 공통점은, 이들이 모두 다 “성전중심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시므온은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서 아기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다가 아기 예수를 만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들은 모두 성전을 사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의 빌딩만을 사랑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들이 성전을 사랑했다는 것은,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었습니다.

바로 거기에 하나님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그곳에 있고 싶어했고, 동참하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안나의 가장 위대한 사역은 기도사역이었습니다.

이런 기도사역은 우리들도 나이와 위치에 상관없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사역이 아닙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이들의 사역을 기억하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금년 한 해 동안 이름없이 우리교회를 섬기기 위해 목장과 각 팀에서 헌신하고, 이름없이 기도로 사역한 수많은 시므온, 안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들을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고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반드시 이들을 기억하고 계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시대의 성전을 사랑하는 방법은 성전에 가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역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기도로 나아가 교회와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의 사역을 위해 말없이 헌신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시므온과 안나의 기도를 통하여 일하셨습니다.


2. 그렇다면  우리의 가슴에는 무엇을 담아야 할까요?


1)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이 분명해야 합니다.

30-32절을 읽겠습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죄악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기 시므온 선지자는 그리스도를 “이방을 비추는 빛”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놀라운 신앙고백입니까?

빛이 있어야만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있을 때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입니다.

복음, 즉 불빛 하나의 소망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났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참된 영광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떠나버린 곳에는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습니다.

그러나 비록 보잘 것 없는 초가삼간이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 곳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것입니다.

시므온은 주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분명했습니다.

시므온은 우리에게 신앙고백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우는 장면입니다.

물론 우리는 구원자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원자”임을 고백했기 때문에 성도의 반열에 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처럼, 바울처럼 전 인격으로 고백하고, 그 고백에 합당한 주님의 제자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2) 인생의 참된 평안은 예수님에게 있음을 믿어야합니다.

29절을 읽겠습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이 말씀은 “평안 가운데 눈을 감게 하신다”는 뜻으로써 “완전한 평화”를 의미합니다.

성탄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서 완전한 평화”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부분적인 평화, 일시적인 평화는 맛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평화를 맛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때에만, 우리는 하늘나라의 완전한 평화를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그를 신뢰하며, 기도하여 기도응답을 받고, 사역을 통해 그분의 능력을 체험하시며, 날마다 주님이 주시는 완전한 평화를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축복해야 합니다.

34절을 읽겠습니다.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여기 시므온이 축복하는 대상은 요셉과 마리아입니다.

우리는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 일가친척들, 직장 동료들, 익산 시민들, 대한민국 국민들, 지구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축복해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축복하는 자가 되려면, 먼저 축복의 원천을 알아야합니다.

만복의 근원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축복을 주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죄성을 가진 연약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남에게 축복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남에게 축복을 빌 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평화와 소망이요, 능력과 은혜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만이 진정 다른 사람을 축복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비극적이고 불행한 일이 적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직분을 받았다는 것 때문에, 영적성숙과 영적축복과 은혜를 사모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경제적으로 성공했다는 것 때문에, 영적성숙과 영적축복과 은혜를 사모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일예배를 지킨다는 것 때문에, 영적성숙에 관심을 끊고, 그가 실제로 받아야할 영적인 축복과 은혜를 사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축복이 아니라 비극입니다.

영적성숙이란 “제자훈련을 마쳤다”고, “평신도 지도자로 부름받았다”고, “목회자가 목사안수 받았다”고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 영혼의 갈구,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고현 믿음의 가족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 시므온과 안나를 보면서 “지금 나의 인생이 어디로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를 점검하고, 성령의 인도하심과 감동하심이 이끄시는 삶을 살아갑시다.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을 만날 때까지, 이전보다 더욱 주님을 사랑하고 충성하고 의지합시다.

여러분의 영혼에 미소가 넘치는 앞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