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 성령이 임하시다 (사도행전 2:1~4)
성경에서 행2:1-4절만큼, 많은 논쟁과 이견, 그리고 갈등이 많은 부분도 없습니다.
이 부분에서 만큼은, 주경학자들도 각자가 고집을 세우고, 의견이 분분하며, 논쟁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이런 성격의 교회, 저런 성격의 교회로 되어, 나누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역사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말씀을 보는 눈을 열어주신다.”는 것을 잊지 말고, 성령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우선 신학적인 문제부터, 정리해 보겠습니다.
성경을 볼 때 “어느 한 부분만 뚝 떼어서 보면 안 된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사실입니다.
특히 이런 중요한 사건인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 말씀의 배후에는, 엄연히 구약성경이 있고, 신약의 복음서가 있습니다.
또 이 사건을 해석해 주는 서신서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전체적인 배경과 근거를 놓고, 이 부분을 검토해야만,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대하면서, 어떤 분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나에게도 이런 사건이 한번만 일어났으면 좋겠다. 우리교회에도 그대로 한번만 일어났으면 좋겠다. 예배 중에 갑자기 하늘에서부터 바람 같은 소리가 나고, 눈을 떠보니 불의 혀 같은 형체가 성도들의 머리머리 위에 다 임하고, 갑자기 다른 방언이 여기저기서 터지고, 그로 인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이 요란한 소리를 듣고 뛰어나오는 사건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그런 일을 통해서 믿음이 강해지고, 마음도 뜨거워지고, 무언가 변화가 일어날텐데...”
이렇게 은근한 욕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우리 가운데도 혹시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오순절 성령강림이, 지금 나와 우리교회에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라고 해석해 버린다면, 날마다 모두가 다 만사를 제쳐두고, 이 문제만 놓고 소리쳐 기도하며, 기다릴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2,000년 동안, 오순절 성령강림과 같은 사건은, 단 한 번도 반복된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주님이 재림해 오시는 그날까지는, 반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 성취된 사건입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언제 이 약속을 주셨을까요?
구약의 요엘서까지, 거슬러 올라가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행2:17-18절에서, 요엘서를 인용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또한 마3:11절을 보면, 세례요한은 이렇게 예언합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무엇보다도 우리 예수그리스도께서, 직접 성령이 강림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눅24:49절을 읽겠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그래서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받기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또 요16:7절에서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라고 했고, 요16:13절에서는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요16:22절을 보면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과 만난 그때도, 하나님나라와 성령을 동시에 언급하셨습니다.
그리고 떠나시기 직전에 “너희는 반드시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고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리라.”고, 약속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2장의 이 내용은, 120문도가 “기도를 열심히 해서 성령을 받은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강림을 약속하셨고, 예수그리스도의 지상사역이 끝났기 때문에, 약속된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도 그 순서를 바꿀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번 오신 성령은, 영원히 떠나지 않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은, 어디까지나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전 인류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는 문을, 활짝 열어놓으셨기 때문에, 일어난 역사입니다.
만약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구원사역을 성취하시지 않았다면, 성령은 절대로 오시지 못합니다.
그리고 오실 이유도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오신 일이 반복될 수 없는 유일한 사건인 것처럼, 성령강림도 반복되어, 여러 번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 목자들이 천사가 전한 소식을 듣고, 환호하며, 말구유에 찾아와서 기뻐했고, 마리아가 성령이 충만해서 예수님을 잉태하고 찬양했지만, 그 찬양 은 반복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건은,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도, 성령이 예수님을 대신하여 교회에 임하신 역사도, 한 번의 사건으로 시작되는 것이지 “오셨다. 가셨다.” 반복하는,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여러 번 무척이나, 예수님의 속을 썩였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버리고 떠나셨습니까?
또한 제자들이 떠나셨다가 눈물로 회개하고 “오! 주여, 오시옵소서.”하면, 그때 다시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까?
아닙니다.
제자들이 속을 썩이고, 여러 가지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성자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지 않으시고,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성령도 이와 똑같습니다.
한번 교회에 임하신 성령은,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이 세상 끝날까지 떠나지 않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성령은, 우리가 성령의 마음을 괴롭히고, 성령의 뜻에 순종하지 못할 때, 애통하고 슬퍼하시지만, 우리를 떠나지는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우리들에게 강력하게 역사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연약하여 죄를 범하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가 많이 위축되어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는, 어딘지 모르게 자꾸 불순종하는 면이 있고, 게으런 면이 있고, 우리 육신의 소욕이 계속해서, 발동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보혜사 성령은, 우리를 강하게 사로잡고, 인도하시려고 해도, 어느 순간 제약을 받게 됩니다.
이럴 때, 우리의 영혼은 “빈들에 마른 풀같이” 몹시 시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183장의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1절만 같이 부르겠습니다.
“빈들에 마른 풀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주님이 허락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생명 주옵소서.”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셨음을 감사합시다.
성령이, 교회에 함께 하심을 감사합시다.
성령이, 오순절 다락방에 임하지 아니하셨다면, 우리는 절대로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무슨 수로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것과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무슨 통찰력으로 확인하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어림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단 한번의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약속된 사건이요, 예수님의 구속사역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뒤따라온 역사이지,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기도하고, 간절히 사모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대신하여, 영원히 떠나시지 않는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셨음을 감사하고, 교회에 임하셨음을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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