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 명이 회개하다 (사도행전 2:37-42)
성령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하고 큰지를 알 수 있는, 몇 개의 장면이 성경에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사도행전 2장 후반부에 기록된 것만큼 “성령의 능력을 강력하게 증명해 주는 본문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가슴이 벅차오르면서도, 또 어떤 때는, 우리 자신의 무능함을 일깨워 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에도 성령이 함께하셔서, 이와 같은 일이 교회 안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힘이 솟지만, 한편으로는 “성령이 이처럼 능력이 크신데도 오늘날 교회가 힘을 잃고, 교회의 지도자들이 영적으로 메말라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답답하고, 고통스럽기까지 합니다.
전무후무한 성령의 대역사가 언제 일어났습니까?
베드로의 짧은 설교 뒤에 일어났습니다.
3,000명이라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회개하고 돌아와 세례도 받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3,000명에 대해 몇 가지 생각해 봅시다.
첫째는, 3,000명이라는, 숫자입니다.
본문만 보아서는, 남자만 헤아린 것인지, 여자도 함께 헤아린 것인지, 가늠하게 어렵습니다.
그런데 행4:4절에 “말씀을 들은 사람들 중에는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는, 말씀과 비교해 보면, 남자를 중심으로 낸 통계임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자를 중심으로 통계를 냈다.”고 해서, 여자의 가치가 무시된 것은 아닙니다.
당시 관습상 남자의 수를 세면, 여자의 수는 따라서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변화 받고 세례 받은 3,000명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요구를 가지고, 개인적인 원통함을 풀기 위해, 하나님 앞에 모인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신비한 체험을 하고 싶어, 모인 자들도 아닙니다.
3,000명, 그들은 자신의 가슴을 치고, 회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성령의 대역사가 일어난 자리에, 회개한 3,000명만 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모인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자리에 모인 사람의 수가 아니라, 오직 회개한 3,000명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목하고 헤아리신 것은, 오직 회개한 3,000명뿐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은 마음을 찢고, 회개하는 사람을, 가장 귀하게 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을 들을 때, 눈물어린 심정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 마음을 찢고, 통회하는 사람을, 가장 귀하게 사랑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많은 성도가 교회에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린다할지라도, 그들 모두를 다 헤아리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헤아리시지만, 어떤 사람은 그 수에 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섭섭한 일이지만, 그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마다, 통회하고, 자복하는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하나님 앞에 죄 용서함을 받은 자녀라면,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모든 죄를 용서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흠과 티가 없이 장차 하나님 앞에 설 사람으로 약속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한두 가지라도 잘못된 것이 있으면, 마음이 괴롭고, 그런 마음을 안고, 주님 앞에 앉을 때, 자연히 회개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너는 내 것이다. 너는 내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헤아리십니다.
현대교회와 우리교회가 이처럼 “회개하는 3,000명”이 모이는 교회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에 막연히 출석하는 3,000명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왔을 때, 회개할 줄 아는 3,000명이 모이는 교회, 그런 교회가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교회가 세상을, 뒤집어 놓습니다.
그런 교회가 소돔과 고모라처럼, 타락할 대로 타락한 곳도,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곳곳마다 교회를 세우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살아 계시는 성령, 교회를 통해 역사하시기를 원하시는 성령, 캄캄한 영혼에 복음의 빛을 비춰주시는 성령이 교회에 거하시고, 우리 마음에 역사하시고, 말씀의 능력으로 행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회개가 사라진 오늘 이 시대의 교회를, 우리들은 걱정해야 합니다.
이웃 교회를, 비판할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나부터, 우리교회부터, 회개가 약하고, 눈물이 마른 것을 봅니다.
그래서 아픈 곳을 찌르면, 거부반응을 보이는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 즉 말씀 앞에 전적으로 순종하려는 자세보다는, 오히려 자기 생각을 내세우려고 하는, 은근한 교만 같은 것이 살아있다면, 그 교회는 능력이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악한 죄인들입니다.
초대교회성도들, 그리고 우리선조들이, 오늘날 우리만큼, 죄를 짓고, 세상과 타협했다고, 여러분은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만큼, 죄에 절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가슴을 찢는 3,000명”이 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이와 같은 일이, 계속되지 않도록 성령의 역사에 민감합시다.
주님의 옷자락을 붙들고,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통회하고, 자복합시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이 헤아리시는, 그 “3,000명”이 되어, 내 가정과, 내 이웃,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을 가진 우리교회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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