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엘의 복을 아십니까? (창세기 28:15)
죄는 하나님과 세상,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간시킵니다. 이삭의 가정에도, 무서운 죄가 자리를 잡자말자, 단 둘뿐인 쌍둥이 형제지만, 살기가 등등한 무서운 관계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하여, 피난길에 오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실수와 약점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은혜를 베풀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환호하는 소리와,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떠들 썩 할 때, 어떤 위대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진짜 인생의 중요한 사건은, 고독할 때, 홀로 있을 때, 나 자신이 주님과 독대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지금까지 살아오신 날 동안, 최대의 사건은 무엇입니까?
여기 창세기 28장에서는, 야곱의 삶에 전환점이었던, 벧엘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0절에 보면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나고, 부모와 형제가 떠나고, 홀로 남겨졌을 때가, 주님과 대면할 시간이 됩니다.
야곱은 가족을 떠나, 두려움 속에 혼자였을 때, 하나님의 본모습을 알 수 있었습니다.
11절을 보면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물리적인 밤이 있듯이, 나 혼자 남게 되는 인생의 외로운 밤도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낮과 밤을 통해서, 우리를 단련시키십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의 좌표 가운데, 지금 낮을 지나고 있다면, 주님 앞에 감사합시다.
그러나 지금 외롭고 두려운 밤을 지나고 있다면, 이때가 하나님 앞에서, 인생의 큰 교훈을 받을 때라는 것을, 마음에 다짐합시다.
여기 벧엘의 사건은, 야곱의 생애 가운데, 놀라운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사려 깊은 사람들은 “육체적 출생, 정신적 출생, 영적 출생, 사명적 출생을 해야 인간답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거듭난 성도들은, 사명적 출생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이 땅에 나를 두신 이유와, 목적을 깨닫고, 사명자로 서야합니다.
야곱이 체험했던 벧엘의 축복은 어떤 복입니까?
1. 벧엘의 복은 신앙회복의 축복이었습니다.
16절을 읽겠습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지금까지 야곱의 신앙은, 가문의 신앙을 통해, 형성되었습니다.
가문의 신앙이란, 내려온 신앙이기 때문에, 축복된 신앙이지만, 빌려온 신앙이요, 자기 자신의 신앙은 아닙니다.
왕하4:31절을 보면, 수넴 여인의 아이가 죽게 되었을 때,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스승 엘리사의 지팡이를 아이 얼굴위에 얹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따라서 훌륭한 스승의 지팡이를 가지고, 뛰어다닌다고 해서, 자신의 지팡이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배우자의 믿음이 훌륭하면 축복이 되지만, 그 배우자의 믿음을 내 지팡이로, 삼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문의 신앙은,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인생의 위기를 만나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이 약한 배우자나, 자녀들이, 자신의 신앙을 결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합니다.
야곱은 벧엘의 사건이 있은 후부터, 축복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창27:35-36절을 읽겠습니다.
“이삭이 이르되 네 아우가 와서 속여 네 복을 빼앗았도다. 에서가 이르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지 아니하니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이르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벧엘에서 하나님을 독대하기 전에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은 빼앗는 것이고, 탈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축복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야곱이 에서로부터, 장자의 명분을 탈취했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지 아니하시면,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벧엘 사건의 핵심은, 야곱의 축복에 대한 관점이 새로워지고,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관점이, 교정이 된 사건인 것입니다.
16절에서 야곱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새로운 출발과 결단은, “내가 얼마나 무지한 존재인가?”를, 처절하게 깨닫게 될 때,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을 경험하게 될 때, 나의 무지함이 얼마나 나를 사로잡고 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주님께서 나를 얼마나 알고 계실까?”하는, 질문으로 바뀔 때에, 나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라고, 고백한 야곱처럼, 자기탄식이 있는 성도들을, 주님이 붙잡으시고, 주님을 알 수 있도록, 은혜와 축복의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2. 벧엘의 복은 가문의 축복이었습니다.
13절을 읽겠습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야곱이 만난 하나님께서는 공중의 구름처럼, 추상적으로 말씀하시지 않고, 구체적인 약속과, 축복을 주셨습니다.
구약에서 땅의 복은, 하나님의 인정, 하나님의 사용하심에 대한, 관용적인 표현입니다.
14절을 보면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 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손번성의 복까지도,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신약시대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확산, 또는 예수를 통한 복음의 왕국, 하나님나라에 대한 환상을 말씀하는 것으로서, 일차적으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반열에 세워 야곱에게 “너와 네 자손을 통해서 나의 계획을 다 이루겠다. 그리고 너의 자손에게 복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자녀가 우리보다 더 멋있게 쓰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가문의 영광은, 영적인 청출어람, 즉 자녀가 부모보다 영적으로, 더 훌륭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향력 있는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나를 축복의 대상으로 삼으셨다.”는, 확신을 갖고, 우리 자녀들에게 신앙을 계승시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야곱은 지금까지는, 자기가 복을 독점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지 말고 너도 복을 받아야겠지만 너를 통하여 복이 계승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일을 위해 15절을 보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동행의 복)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보호의 복)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인도의 복)”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면서, 동행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보다 더 확실한, 보증수표가 어디 있겠습니까?
3. 벧엘의 복은 야곱의 신앙체질이 혁신적으로 변화되는 복이었습니다.
17-19절을 읽겠습니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지금까지 야곱은 수동적이고, 경쟁적인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새로운 삶의 장이 펼쳐집니다.
야곱이 일찍 일어나서, 베개하였던 돌로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부은 것은, 그를 만나주셨던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증표를 세우는 예배의식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예배하는 모습은, 신앙체질의 증표가 됩니다.
그리고 신앙체질은, 건강한 예배생활과 맞닿아있습니다.
완벽한 것은 아니었지만, 야곱은 이때부터 예배를 배웠고, 서서히 기도하는 법을 배웠고, 하나님을 의존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교회생활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교회생활이란, 신앙체질이 변화되는 것을 의미하고, 신앙체질은 예배생활의 성숙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내 마음의 자세, 언어, 관심의 방향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려져야합니다.
우리의 가정도, 직장도, 사업의 현장도, 벧엘입니다.
벧엘에 대한 눈을 뜨고, 각성하는 자야말로, 참된 예배자로 매일 매일 주 앞에 드려질 수 있을 것입니다.
시121:5-8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기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저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마28:20절에도 보면, 주님께서는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약속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코로나19팬데믹으로 힘든 때를 지나고 있지만, 금년 한 해 동안도 우리의 신앙은 예수님의 체질로, 회복되고, 가문은 믿음을 계승하고, 신앙체질을 혁신적으로 상향 조절해 나갑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야곱에게서 주신 그 축복을, 나와 우리 가정 그리고 우리 가문의 축복으로 연결시키는, 믿음이 성숙한 우리 교회의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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