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귀의 은총을 주소서 (마가복음 4:1-9)
위대한 교회역사가인 “필립 샤프”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맷돌은 천천히 돌아가지만 확실하게 고운 가루를 만든다.”
매우 인상적인 표현입니다.
“필립 샤프”는 적어도 역사학자로서 “하나님 중심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의 맷돌소리를 듣고 계십니까?
우리 성도는 마땅히 하나님의 “맷돌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나 육체의 귀와,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귀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신 하나님의 목적은, 진리의 말씀을 통해, 우리들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거듭해서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으므로 인하여, 그의 삶이 새로워진 사람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약시대의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와 기회를 가졌습니다.
삼상3:9절을 보면, 엘리 제사장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고, 말했습니다.
사무엘은 주님의 말씀을 듣는 귀와, 마음과, 태도로 인하여, 그의 삶이 하나님께 보배처럼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음성을, 오늘도 진실 되게 듣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속한 가문과, 교회와, 직장은, 하나님께 보배처럼 쓰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신약시대의 사울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난 이후, 그의 삶이 새롭게 변화 받았습니다.
행9:4절에 보면, 바울이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는 삶의 변화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수많은 위대한 신앙 인물들의 공통분모는 “하나님의 말씀을 개인적으로 듣는 귀를 가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복된 귀를 가진 자로서, 주님의 음성을 항상 잘 듣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듣는 귀의 은총을 주옵소서.”라는, 제목으로, 우리의 삶의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길가에 뿌려진 씨가 있습니다.
4절을 읽겠습니다.
“뿌릴 쌔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15절에 보면 “말씀이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성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듣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항상 “영적 전쟁터이며, 전쟁상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삶 가운데, 우리가 체험하는 것이지만, 때로는 주님의 음성보다, 사람의 소리나, 돈의 소리가 더 크게 확대되어 확성기처럼, 들려올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믿음의 성장은 어려운 것입니다.
2.돌밭에 뿌려진 씨가 있습니다.
5-6절을 읽겠습니다.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16-17절에 보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말씀으로 인한 환란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 곧 넘어지는 자”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주님의 말씀은 좋아하고, 경제적인 여유나, 자녀들이 잘 되는 축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하는 일이 바쁘다, 힘들다.”는 핑계로 말씀에 순종하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없어 거절하므로. 그 말씀이 축복이 되지못합니다.
우리교회사에 역사적인 한 획을 긋는, 325년 “니케아종교회의”에, 318명의 교회지도자들이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참석한 그 교회지도자들 가운데 306명이 장애자였습니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장애자가 아니었습니다.
복음 때문에, 핍박을 받고, 고난을 받고, 매를 맞아서, 다리가 짤리고, 눈이 뽑히고, 팔이 짤리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짤렸습니다.
그 결과, 단지 12명만 성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마음에 생각하면, 거룩한 전율을 경험합니다.
그렇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교회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이렇게 몸을 던졌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라면, 누구든지 예외 없이 자신의 인생을 드려서, 주님을 사랑하는 흔적이 남아야합니다.
막8:34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여러분, 누가 그리스도인입니까?
정말로 “예수님과 예수님의 복음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백하는 성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엇입니까?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은 나의 전부입니다”라고, 주님의 주재권을 온몸으로, 고백하는 사람만이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이 시간에는 “주님만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내가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내 인생은 정말 허무했을 것입니다.”라고, 눈물로 고백하며, 감사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5:10절에 보면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라고 했고, 빌1:29절에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에 순종하다가 당하는 고난과 환난은, 절대적으로 불행이 아닙니다.
100% 변장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3.가시떨기에 떨어진 씨가 있습니다.
7절을 읽겠습니다.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치 못하였고”
18-19절에 보면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는 세상의 염려와 물질의 유혹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을 못하게 되는 자”를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나름대로 은혜를 받고, 말씀을 실천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염려와 돈의 유혹이라는 장애물, 그리고 기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들이 마음속에 들어와 말씀을 막아 궁극적으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탐심(교만)이 움직이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4.좋은 땅에 뿌려진 씨가 있습니다.
8절을 읽겠습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배가 되었느니라.”
20절에 보면 “말씀을 듣고 받아들일 때, 30배와 60배와 100배의 결실을 맺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 믿는 우리는 30배나 60배의 결실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100배의 열매를 맺기를 적극적으로 소원하고, 순종함으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실제적으로 성경에 보면, 100배의 열매를 맺은 자가 있습니다.
창26:12절에 보면, 믿음의 거장 아브라함이 죽은 후, 이삭은 농사하여 그 해에 하나님으로부터 100배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삭은, 창대하고 왕성하여, 그는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는 믿음의 거부, 물질의 거부, 신앙의 명문가가 되어, 그의 자손들이 민족을 이루고, 오늘날 지구촌 70억 인구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오늘날 유대 민족입니다.
사랑하는 고현 믿음의 가족 여러분!
지금 이 시간 우리에게 있는 귀를 가지고, 진리의 말씀을 듣는 이 시간이, 축복받을 기회요, 은혜 받을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이 기회를 통해, 우리는 반드시 100배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경청하는 자가 100%받는 축복은 무엇입니까?
①믿음의 성장입니다.
“눈과는 달리 꺼풀이 없는 귀는 잘 들으라.”고, 늘 항상 열려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듣는 것이 가장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두 귀를 주신 것은, 양쪽 모두의 말을 공평하게 들으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잘 듣는 것이란, 말씀을 공평하게 마음으로 듣는 것이며, 말씀을 수용하는 자세로 듣는 것입니다.
롬10:17절에 보면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맒암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기독교는, 먼저 말씀이 앞섭니다.
말씀을 잘 듣게 되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 씻음을 받은 우리는 성령께서 주시는, 믿음의 은사로 인하여, 그 복음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100% 믿음의 성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인하여,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거듭나지 못한 육체를 가지고 있는, 우리는 누구든지 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눈만 뜨면, 마음으로, 행위로, 생각으로 죄를 짓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죄를 짓기 때문에, 소망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믿는 자는, 말씀의 순종하기 위하여, 죄를 짓지 않으려고, 성령의 도우심 받기를 노력하고, 또한 지은 죄를 회개하는데 민첩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믿지 않고, 예배당에 다니는 사람은, 맹신을 믿는 것이요, 미신을 믿는 것입니다.
②순종의 열매를 가져옵니다.
계3:20절에 보면,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열기가 가장 어려운 문이, 어떤 문인지 아십니까?
바로 사람의 마음의 문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의 마음문 밖에서, 두드리고 계십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자만이, 주님에게 마음의 문을 열 수가 있습니다.
순종은 “듣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신중하게 들을 때,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깊이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③관계의 발전을 가져옵니다.
잘 들어야 하나님과 나의 관계, 그리고 성도와의 관계가 아름다운 관계로 변화됩니다.
스티븐 코비(Stephen R. Covey)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란 책에서 “소위 성공자들 사이에는 공통분모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모두 관계의 성공자란 공통분모입니다.
대인관계의 핵심은, 상대방에 대한 인정함과 존중함입니다.
여러분은 경청하는 귀의 소유자입니까?
“스샤오옌”이 쓴 “내 편이 아니더라도 적을 만들지 마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경청한 다음에 이해시켜라.”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도 사랑의 귀를 통하여, 우리 죄인들의 절규를 들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구원의 길과, 축복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들어줄 때,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됩니다.
주님도 마찬가지로, 진리의 말씀을, 우리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들어 줄 때, 기뻐하십니다.
오늘밤 성령축제는, 열린 귀를 통해, 성령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잘 듣고, 소중하게 받아 믿음의 성장과, 순종의 열매와, 범사의 삶에 축복의 열매를, 풍성하게 받되 100배로 받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 같이 따라하겠습니다.
우리 주님은 지상최고의 교사이시다.
경외함으로 듣자.
우리 주님은 완전한 교사이시다.
신뢰를 가지고 듣자.
우리 주님은 사랑의 교사이시다.
감사하는 마음, 따뜻한 마음으로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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