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빈손으로 하나님만 붙들다 (사도행전 7:6~11)

Johnangel 2022. 7. 7. 11:11

빈손으로 하나님만 붙들다 (사도행전 7:6~11)

 

6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후손이 다른 땅에서 나그네가 되리니 그 땅 사람들이 종으로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예언하신 말씀인데, “아브라함의 자손이 다른 땅, 곧 애굽에서 나그네가 되어 400년 동안, 그 땅 사람들의 종이 되어 섬기고, 그 땅 사람들에게 괴로움을 당하리라.”는, 것입니다.

 

이 예언은 언제 이루어졌습니까?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과 손자 야곱의 대를 지나, 4대째에 와서야 비로소 이루어지는데, 바로 요셉의 사건입니다.

9절을 읽겠습니다.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서”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에 대하여 은근히 시기하고, 질투하며, 그를 아니꼽게 생각했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 야곱의 지나친 편애 때문이기도 했지만, 요셉이 다른 형제들에 비해 뭔가 남다른 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아마 배다른 형제여서, 문제가 더 심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유야 어찌됐던 간에 형제들의 이 “질투”는,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는데, 결정적인 열쇠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애굽과 가나안에 든 7년 동안의 흉년은, 야곱의 가족들을 애굽으로 이주시키데, 또 하나의 열쇠가 되었습니다.

 

1.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그릇입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은 “질투”와 “흉년” 그리고 “환난”을 통해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와 같은 계획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인도하셨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신실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기뻐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어쨌든 하나님의 예언 성취는, 이렇게 좋지 않은 일을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시기와 질투를 절대 칭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시기와 질투는, 마음이 좁은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흔한 감정이요, 결국 그 질투는, 자신이 치명적인 손해를 보고, 나서야 막을 내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시기와 질투가 많다면, 바람직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악을 통해 무엇 때문에 뜻을 이루셨는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요셉을 향한 형제들의 질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형제들의 질투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형제들의 질투를 문제의 중심에 두고 보면 “사람들의 잘못과 죄악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잘 사용될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관점을 바꾸어서, 요셉이라는 하나님의 그릇을 중심에 놓고 봅시다.

그러면 이런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사용하시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선이든 악이든 간에, 모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하나의 수단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즐겨 쓰시는 그릇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딤후2:20-21절을 읽겠습니다.

“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뿐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 “누구든지”라는 말은, 요셉이나 사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목사님이나 장로님들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이라는, 말씀은 “죄악과 정욕을 멀리하면” 혹은 “아브라함처럼 구별된 생활을 하면”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주인으로부터 온갖 좋은 일에, 요긴하게 쓰는 귀한 그릇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그릇이라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8:28절을 읽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요셉의 인생이 그러했듯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선한 일도, 악한 일도” 어느 것 하나 의미 없이 주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형들에게 시기를 받아, 노예로 팔려 쇠고랑을 차고, 아라비아 사막을 가로질러 갈 때, 요셉은 자기 신세가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이런 사실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예수피로 구속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좋으냐? 나쁘냐?”를, 지나치게 가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믿는다면, 어떤 상황 어떤 환경에서도, 원망이나 불평하지 말고, 나를 향한 선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믿고, 기도하며 인내하시기를 축복합니다.

 

2. 고난으로 형통하게 합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유익도, 손해도, 모두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용하십니다.

아마 요셉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형들이 와서, 얼굴을 들지 못하고 흐느끼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할 때, 요셉은 이렇게 말합니다.

 

45:5절을 읽겠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그렇습니다.

요셉으로 하여금, 형제들의 질투와 흉년이라는, 큰 환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 것처럼, 오늘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구속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도, 반드시 그와 같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확실히 믿어야합니다.

 

왜냐하면 만약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원리가 우리 인생에 적용되지 않는다면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만큼 허황된 말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어떻게 범사에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당신의 그릇으로 택하시셔서 예수의 피로 깨끗하게 하시고, 작은 일에든 큰일에든 사용하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에는,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 속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손해를 보는 일이나, 상처를 입은 일까지도, 그 일을 통해서, 반드시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약 이 원리에 근거해서, 모든 것을 생각할 수만 있다면,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의 삶 가운데, 불평거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긋나가는 자녀 때문에, 고민하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남편을 잘못 만나서, 평생 괴로워하는 아내들도 있습니다.

아내를 잘못 만나서, 고생하는 남편들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친구를 잘못만나서, 다시 일어설 수 없을 만큼, 피해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 우리는 이 원리를 기억합시다.

“나는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그릇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도 다 덕이 되게 하시고, 은혜가 되게 하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사용하실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오, 하나님 내가 손해 본 것도 감사합니다.”하는 기도가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의 삶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그렇게만 사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우리 인생의 어려운 문제를 다루는, 자세도 달라질 것입니다.

이것이 나를 구원하신 창조주요, 절대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신자들의 생활인 것입니다.

 

28:15-16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호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야곱은 우리 모든 믿는 자들의 그림자입니다.

형 에서를 속이고, 장자권을 빼앗고, 장자가 받아야 할 축복을 아버지 이삭조차도 속이고, 가로챘던 야곱입니다.

야곱은 허물이 많은 자요,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죽이려는 형 에서를 피해, 밧단아람 외가댁으로 도망가던 야곱이 해가 져서, 어두운 밤에 브엘세바라는 광야에서, 돌을 베게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광야는, 두려움이 있는 곳입니다.

광야는, 각종 맹수가 도사리고 있는 곳입니다.

광야는 메마른 곳이기에, 굶주림이 있는 곳입니다.

광야는, 오아시스 외에는 물이 없는 곳입니다.

광야는, 거친 땅이요, 척박한 땅이기에, 길을 잃을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야곱이 밤을 맞이하여, 초조하고 두려운 가운데, 지친 몸으로 돌을 베게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 야곱이 꿈을 꾸었는데, 28:12-13절에 보면 “사닥다리가 땅위에 서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축복의 약속을, 야곱의 신앙회복과 함께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았고, 예수부활의 생명을 가진 자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절대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 우주에 충만하신 창조자 하나님은, 내가 어떤 환경, 어떤 상황, 어떤 곳에 있어도, 거기에 계시고,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붙들고, 힘써 기도합시다.

 

또한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에 깨어 즉각적으로 순종하며, 선하신 주님의 때를 기다립시다.

 

온 우주에 충만하시며, 신실하신 주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인내하고, 참고, 기다리며,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요셉이 감옥에서 역전의 하나님을 만나 애굽의 총리가 된 것처럼, 우리들도 놀라운 축복의 날을 보게 될 줄로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