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메리 크리스마스 (누가복음 2:13~14)

Johnangel 2022. 12. 25. 17:56

메리 크리스마스 (누가복음 2:13~14)

 

성탄의 사건은, 인류 역사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가장 위대한 사건입니다.

인류역사를 BC와 AD로 구분하는,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힘찬 아기 예수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 후 2022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코로나팬데믹으로 말미암아 암울함 속에서도, 전지구촌에서 오늘 성탄절만큼은, 평화의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구세주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은 우리가 예수님이 태어나신 성탄을 기념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메리 크리스마스”하고, 인사를 서로 나누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셨다.”는 것은, 예수님과 하나님은 원래 본체가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탄생하신 사건입니다.

그런데 6-7절을 보면 “거기 있을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였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성탄은, 우리에게는 가장 행복한 감격의 날이지만, 하나님에게는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절을 읽겠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여러분은 기쁨의 좋은 소식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의 온 백성들이 “기다리던 구원자 메시아가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원래 우리 인간을 만드실 때,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섬기고, 자기와 교제를 나누는, 아름다운 파트너를 갖고 싶은 목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그 의도를 버리고, 제 각기 마음대로 가버렸습니다.

그 결과, 우리 인간은, 제 마음대로 산 죄 값을 짊어지고, 영원히 저주를 받은 허무한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실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인간들이 “나를 사랑하고, 나를 섬기고, 나하고 교제하는 것을 가장 행복으로 생각하는 거룩한 사람이 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셨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는 하늘보좌에 앉아서는 해결하실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 보좌를 버리시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것도 친히 인간이 되셔서, 베들레헴 말구유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흘리는 눈물을 흘려 보기를 원하셨고, 우리의 고통을 경험해 보시기를 원하셨고, 우리가 염려하고,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친히 체험하여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죄값을 대신 지시고, 친히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여 승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하나님이 오셨으니, 우리가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실제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모든 사람들이 기뻐했습니까?

아닙니다.

첫 번째 성탄에 기뻐한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성탄절을 맞이하여 “구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누가 기뻐할 수 있으며, 그를 영접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기뻐하고 영접할 수 있었습니까?

 

이 세상에서 무시당하고, 천대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아기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시도록 하는데, 쓰임 받은 요셉과 마리아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10대 후반의 결혼을 약속한 시골뜨기 청년들로서 “평생 목공소를 경영하면서 살아야지”하는, 그런 평범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목자들 또한 자신의 양떼를 양육하는 부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남의 양떼들을 밤을 새워가며 지켜주는, 천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 가서 예배를 드릴 때도, 바깥마당에서 서성거리다 돌아와야만 하는 천민들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영접하고 기뻐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옛날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는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은,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성공하셨고, 많은 재산을 쌓아놓고, 걱정없이 사는 분이라 할지라도, 그것들은 때가 되면, 모두 다 썩어 없어질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비우고, 낮아져야 합니다.

낮아지지 아니하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말구유에 오신 창조주 하나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겸손할 때만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님이 오셨다.”는, 사실에 앞에 감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지금도 죄악으로 인하여 “창조주가 인간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불신자들을 우리 하나님께서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다가가는 심정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만약 우리에게 그런 마음이 없다면,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할 수 있는 순수한 간증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불신자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해 반드시 주어야합니다.

이것이 성탄의 진정한 의미인 것입니다.

 

2.그렇다면 누가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습니까?

 

마태복음에서 요셉을 “의인”이라고 말한 것은, 그가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이었다.”는 뜻이고, 마리아를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경건한 처녀”라고 말한 것은, 마리아가 “구원자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뜻입니다.

 

목자들도 이 세상에서 기댈 언덕이 없었기에, 자기들을 구원하실 구원자가 오기를 날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구원자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하나있습니다.

그것은 아기 예수님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적으로 말하면 “그들에게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구원자 예수님이 오셨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가난했고, 여전히 목자였고, 사람들로부터 멸시받는 나사렛 동네에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태어나서,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실 30년 후까지 기다려야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30년을 기다리는 동안 요셉도 죽었고, 목자들 가운데 나이 든 사람들은, 이미 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시 말해서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누리지 못한 채, 이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모두가 다 기뻐했습니다.

 

탄생하신 예수님께서 30년 후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들이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거나, 귀족이 되었다거나, 건강하고, 장수해서 200살까지 살았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따라서 세상적으로 보면, 그들은 예수님이 오셨어도, 여전히 가난했고, 여전히 고통 속에 살았고, 여전히 질병들과 씨름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모두 다 기뻐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들은 이렇게 성탄을 기뻐했고 행복했을까요?

8:24-25절을 읽겠습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그렇습니다.

그들은 세상사람들이 보기에는 달라진 것이 없었어도, 그 구원자가 준비하신 하나님나라를 바라보며, 그 나라가 임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했고, 기뻐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예수 믿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것은, 아무리 아름답고 영화로운 것이라도, 그것은 모두 다 때가 되면, 아침 안개가 사라지듯이 없어질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그런 헛된 것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 없어지지 아니할 것,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토록 누릴 그 영광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할지라도, 예수님 때문에 내 생애 가운데 가장 좋은 날, 그 영광스런 주님의 재림의 날이 우리 앞에 있기 때문에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바라보고,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고, 약속대로 재림해 오시는 날에, 하나님나라가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딤전1:15절을 읽겠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여러분, 감격하여 이 말을 외치는, 바울을 한번 마음에 그려보십시오.

바울은 그 예수님을 위해 살다가, 목 잘림을 받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는, 실패자요,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기뻐하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여러분은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으로 사람들에게 구원의 문이 열렸고, 그 예수님 때문에 자기가 구원을 받았고, 그 예수님 때문에 자기 앞에는, 하늘의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바울만의 신앙고백이겠습니까?

우리의 신앙고백이요, 나 자신의 신앙고백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코로나팬데믹으로 말미암아 예년에 비해 암울하게 맞이한 이번 성탄절이지만, 모든 인류의 구원자 예수그리스도의 성탄을 기뻐하고, 복음의 증인된 삶을 살며, 하늘나라의 영광을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