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치료하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15:22-27)

Johnangel 2023. 5. 6. 20:39

치료하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15:22-27)

 

자라나는 아이들의 약 3분의 1정도가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성장통이라는 병이있습니다.

이 병은 한 밤중에 아픔을 호소하다가도 아침이 되면 아무렇지도 않게 되는데, 특별한 치료책이 존재하지 않고, 다만 맛사지나 찜질, 진통제 정도가 다소 도움이 될 뿐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의 여정에도 이런 성장통이 경험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가 갈라지고, 그들을 포로로 삼았던 바로의 압제에서 온전히 해방되는 그들의 전 생애를 통해 가장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의 홍해 체험은 일종의 구원 체험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을 만끽하며 홍해를 건넌 후 찬송을 불렀고 춤을 추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던 낮에는 구름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그 백성들을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신바람 나는 새 인생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감동체험은 불과 사흘을 지속하지 못했습니다.

홍해를 건너 사막을 행군한지 사흘 만에 목마름에 지친 그들이 마라라는 땅에 도착하여 우물에서 물을 마시던 순간 그들의 모든 꿈은 사라졌습니다.

그 물은 마실 수 없는 쓴 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러는 병들어 누웠고, 더러는 그 쓴 물을 토해내며, 원망하고 고통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의 성장통의 경험이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때 그들 곁에 찾아오신 분이 “여호와 라파” 즉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경험을 통해 이 시대의 우리가 믿음의 여정에서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 배우고 물어야 할 중요한 질문을 얻게 됩니다.

 

1. 구원 후에도 광야길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22절입니다.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디서 나와서 어디로 들어갔습니까?

홍해에서 나와서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홍해에서의 구원이 광야여정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그들은 가나안이라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까지 매우 길고 긴 광야 길을 걸어야 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경험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은 말할 것도 없이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말은, 신앙의 여정이 막 시작된 것을 의미하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결코 짧다고만 할 수 없는 인생의 광야 길을 통과하여 천국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은 것은, 우리 인생의 그 어떤 사건에도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경험이요, 위대한 경험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실 것이 있습니다.

이 구원의 경험은 놀라운 경험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경험은 자주 두 가지로 비유됩니다.

하나는 출생의 비유요, 또 하나는 결혼의 비유입니다.

한 생명의 탄생은 경이로운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 잘 자라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탄생은 성장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해피데이에서 우리가 인도한 많은 베스트들이 예수를 주로 부르고 영접했다면 그들은 이런 위대한 탄생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그들의 성장이요, 성숙입니다.

그들의 성장을 우리 모두가 도울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또 하나의 비유는 결혼입니다.

예수님을 내 인생의 신랑으로 맞이하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결혼이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듯이 나와 예수님의 관계도 긴 여행의 시작에 들어서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번에 주님을 만나신 분들이 기억하실 것은, 이제 나에게 새로운 인생 길, 곧 광야 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광야 길을 통해 영원한 약속의 땅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2. 그리고 이 광야 길에서 제일 먼저 배우실 것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부르짖는 기도를 배우셔야 합니다. 

 

왜 부르짖어야 합니까?

부르짖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인생의 길에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홍해 바다를 기적적으로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래하고 춤을 춥니다.

그러나 불과 사흘 길을 걷지 못해 그들은 다시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노래하던 입술에서는 원망과 불평이 나오고, 춤추던 손으로 그들은 가슴을 치며 탄식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성경은 결코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기 때문에 인생의 고통이나 위기에서 면제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요16:33절에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바는 환난의 면제가 아니라, 환난에서의 승리였습니다.

이 승리의 방편으로 주께서 주신 처방이 부르짖는 기도라고 저는 믿습니다.

기도에는 여러 형태의 기도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앞으로 여러분은 여러 형태의 기도를 배우시게 될 것입니다.

특히 중보기도학교 훈련은 이런 여러 형태의 기도를 학습하는 장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위기와 환난에 대처하는 가장 효율적인 기도는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저는 신앙생활의 첫 걸음을 걷는 분들에게는 먼저 이 부르짖는 기도를 배우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25절에 보면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르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부르짖다”는 말은 내 속에 있는 것을 다 쏟아 내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 여호와가 “우리를 고통에서 건지시겠다. 우리를 곤경에서 구하시겠다. 우리를 사망에서 건지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렘33:3절을 읽겠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여러분, 모세가 부르짖었을 때 어떤 일이 생겼습니까?

하나님께서 해결책으로 “나무 조각을 던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쓴 물이 달아졌습니다. 샘이 치유된 것입니다. 기도가 응답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사건이후 26절에서 자신을 “치료하시는 여호와”로 계시하십니다.

따라서 저와 여러분의 어떤 고통이 치유되지 못했다면, 그 이유는 본문에 의하면 단순합니다.

우리가 충분히 부르짖어 기도하지 못한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주님의 보좌 앞에 나아와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부르짖어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3. 우리가 광야 길에서 이 부르짖는 기도와 함께 또 하나 배울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도 말씀에 순종함을 배우셔야 합니다. 본문 25-2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의 기도를 응답하시면서 단순히 치유의 역사만을 행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고 지키며 의를 행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마라의 샘터에서 이스라엘에게 이런 고통을 허락하신 이유도, 그들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시험할 의도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상황이 좋을 때 맑은 하늘 아래서는 누구나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역경이요, 고통의 밤일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수 있다면 그는 진짜 믿음의 사람일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분들이 기도와 함께 제일 먼저 배울 것은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딤후3:16-17절에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초기에 성경과 더불어 사는 것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교회를 평생 다녀도 그의 인생에서 진정한 믿음의 간증도 능력도 없이 사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는 일에 힘쓰시고 어떤 상황에도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셔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치유의 은혜를 베푸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26절을 읽겠습니다.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라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치유의 은혜는 그런 의미에서 조건적인 은혜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우리가 병 고침을 받고 기도 응답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을 자세히 성찰해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우리의 인생에 고통과 관련하여 이중의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방이요, 또 하나는 치유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교회 믿음의 식구 여러분!

고통에서 자신을 지키기를 원하십니까?

고통에서 속히 건짐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사는 것을 배우십시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단해 보십시오.

위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성장통을 통한 하나님의 축복인 것입니다.

 

마지막 27절을 읽겠습니다.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사막 광야에서는 물샘 하나도 정말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물샘이 12개, 종려나무가 70그루, 이 정도면 환상의 오아시스입니다.

엘림은 마라에서 남쪽으로 불과 11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오아시스를 예비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라에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엘림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에비하신 엘림은 보이지 않아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렇습니다.

희망의 내일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희망의 내일을 준비하십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하고 말씀을 붙들고 살 각오만 되어 있다면, 만일 우리가 순종의 삶을 결심만 하신다면, 그는 오늘 마라의 쓴물을 먹고 토하고 주저앉아 절망하는 우리 곁에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병든 몸을 치유하십니다.

병든 마음도 치유하십니다.

우리의 관계도 치유하십니다.

가정문제도 자녀문제 치유하십니다.

우리의 직장도 사업장도 치유하십니다.

그의 이름은 여호와 라파, 치유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