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내가 만난 예수그리스도 (요한계시록 1:9-20)

Johnangel 2023. 6. 21. 16:29

내가 만난 예수그리스도 (요한계시록 1:9-20)

                                                

우리가 어떤 사물의 가치를 이야기할 때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내가 무엇을 얼마나 투자했는가?”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됩니다.

마치 돌멩이와 금강석을 얻기 위해 “각각 어떤 값을 치뤘는가?”에 따라 돌멩이와 금강석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시기 위하여 예수님의 생명을 희생하는 대가를 치루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주님을 소유하기 위하여 값을 치루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사도요한은 예수님의 제자들 중 순교하지 않고 가장 오랫동안 생존하여 교회를 돌본 사도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있어서 예수그리스도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9절을 읽겠습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예수를 믿는 것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예수 때문에 희생하고, 예수 때문에 핍박과 능욕을 받는 것이, 우리의 삶에 실제적인 예수사랑의 증거가 되어야한다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도요한은 예수를 뜨겁게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생명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로마황제의 핍박을 받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하는 것은, 여러분이 주님 때문에 “어떻게 희생하고 무엇을 헌신했느냐?”가 말해줍니다.

왜냐하면 예수사랑은 “예수를 위한 희생”에 비례하기 때문입니다.

 

속담에 “사람과 믿음은 겪어봐야 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 평안한 시대에 예수를 믿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의 본질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과 환난이 닥치면 그 신앙의 본질이 드러나게 됩니다.

지난 50년대 공산치하의 평양교회는 공산당의 갖은 회유와 핍박을 받자 끝까지 헌신된 믿음과 변질되는 믿음이 구별되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위해 삶의 고난과 핍박과 연단이 올지라도 기쁘게 감당하며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불타는 심정을 갖고 복음 전하는 현장에서 고난을 감당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영적인 신비인 것입니다.

어떤 가수가 말하기를 “노래는 내 삶의 전부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수가 모든 대중의 인기를 받는 프로가수가 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 믿는 것도 프로가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는 내 삶의 전부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요한은 왜 예수님을 소아시아 일곱교회에 알리기를 원했습니까?

11절을 읽겠습니다.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그렇습니다.

주님은 요한을 통하여 일곱 교회에게 주님 자신과 주님이 하실 일에 대해 알려주시기를 원했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주님은 교회의 주인이시며, 소아시아에 위치한 일곱 교회를 뜨겁게 사랑하신 분이십니다.

그 주님은 지금도 이처럼 변함없이 동일하게 우리 고현교회에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잃어버린 교회는 본질을 잃어버린 교회입니다.

주님을 더 이상 섬기지 않는 교회, 주님의 관심이 집중되는 곳에 관심이 없는 교회는 본질을 잃어버린 교회입니다.

물론 교회가 사회사업이나 문화사업도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예수를 잃어버린다면, 아무리 화려한 프로그램과 유력한 인사들이 출입한다 할지라도 그 교회는 이미 생명을 잃어버린 교회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의 에베소 교회는 주님을 처음 믿을 때에 불타올랐던 첫사랑을 잃어버림으로 모든 것을 상실해버린 교회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사도요한에게 자신을 계시하신 예수님은 우리와 교회가 주님을 올바로 만나고 주님을 잘 알고 그분의 심정을 알게 되기를 더 원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삶과 우리 교회의 중심에 예수그리스도가 계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주님의 복음이 더욱 편만하게 전파되고, 더욱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우리와 우리 고현교회가 전하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익산시에 사는 많은 시민 중에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고 사는 자들이 주님을 만나고 생명을 얻는 현장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사도요한에게 자신을 계시하신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 해방 자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롬5:8절을 읽겠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우리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뜨겁게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갈2:20절에서 바울은 이 사랑을 깨닫고 “이제 내가 사는 것은 오직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십자가에서 내어주신 예수를 위하여 사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추상적인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의 살과 피를 흘려 우리를 죄에서 자유하게 하시고, 이제는 예수를 믿고 주님의 사랑 받는 자로 살아가도록 해방시켜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해방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날 때, 더 이상 우리를 얽매고 있는 과거의 삶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치유받고 거듭난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이 만난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신 흔적이 있는 주님이십니다.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신 주님이십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세우신 영광의 주님이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의 값을 주님의 값으로 매겨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는 이 세상 어느 것과도 비길 수 없는 “예수 명품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만날 때에 내 삶의 방향과 안목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위해 살 때,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절망의 탄식을 하더라도 우리는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2. 심판 주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18절을 읽겠습니다.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렇습니다.

인간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열쇠를 가지신 전능자 예수님이십니다.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구세주요, 우리의 힘이요, 우리의 능력이요, 우리의 반석이요, 우리의 피난처요, 우리의 소망입니다.

뿐만 아니라 8절에 보면, 예수님은 “장차 다시 오실 재림 주”로 오십니다.

예수님께서 초림하셨을 때는 어린아이의 모습과 섬기시는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재림하실 때에는 세상의 모든 왕과 정복자들을 다스리시고 믿는 자들에게는 상급과 천국으로, 불신자들에게는 형벌과 지옥으로 심판하시는 심판주로 오십니다.

그리고 6절에 보면 주님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과 제사장의 영광스러운 직분”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 땅의 제사장인 것입니다.

여러분, 제사장이 어떤 분이십니까?

제사장은 더 이상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백성을 위해 중보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인 우리는 백성의 탄식과 구원의 호소를 듣고 그들을 위해 중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사장인 우리가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구원받지 못하고 죄의 저주로 말미암아 고통하고 있는 영혼들을 향하여 침묵한다면, 누가 저들을 구원할 수 있으며, 누가 저들의 중보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자아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괜찮은 조건 때문에 당당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로 당당하게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아무리 분주한 삶을 산다 할지라도 삶의 핵심이신 예수님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비록 여러분이 세상적인 지위와 지식은 다소 부족하다 하더라도 내가 만난 예수님에 대해서만큼은 분명한 지식과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요한에게 주신 예수그리스도의 계시가 분명한 것처럼 예수를 사랑하는 증거가 분명한 성도가 되십시오.

예수님을 확실히 붙잡으십시오.

예수님께 집중하십시오.

예수님을 위하여 힘 있게 사십시오.

예수님의 불타는 심정을 소유하십시오.

갈6:17절에서 사도바울이 “나는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 모두 예수의 흔적을 가지고 사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에 남는 것은, 오직 하나 예수님을 사랑하고 헌신하여 전도하여 얻은 생명의 열매, 재생산의 흔적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요한이 만난 예수님을 우리도 동일하게 만나서 우리의 삶이 가치 있고 미래의 소망이 넘치는 예수명품 인생으로 당당하고 경건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는 마음을 주십시오.

날 위해 살을 찢으시고, 피흘려 주신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의 영혼과 삶을 압도하도록 도와주십시오.

그 사랑이 의미가 되게 하시고, 그 사랑이 감격이 되게 하옵소서.

그 감격이 영혼과 삶에 주님 사랑의 흔적으로 새겨지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 자체가 예수님 사랑의 기념비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 기쁨이 되셨듯이, 우리 또한 주님의 기쁨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