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그리스도인의 특권 (요한복음 1:12-13)

Johnangel 2023. 6. 24. 15:14

그리스도인의 특권 (요한복음 1:12-13)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 복 받는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그 복의 내용은 우리가 피상적으로 동양에서 말하는 오복이 아니라 더 근원적인 축복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물질 축복도 주시고. 건강의 축복도 주십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누릴 최후의 축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 믿는 것이란 “선한 사람이 되는 것, 착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완전한 선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환경적인 물질 축복이나 건강의 축복을 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를 조금 더 개조시켜서 우리의 생애에 더 본질적인 변화를 일으키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 본질적인 변화는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그렇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고 영접하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자녀가 됩니까?

13절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 분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믿으려고 그처럼 애를 쓰고 몸부림쳐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믿어지기 시작합니다.

그 분이 내 생애 속에 들어오셨습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여러분, 느낌이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느낌이 우리를 올바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제 아버지 어머니가 진짜 생부, 생모일까?”를 혼자 많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저만 그런 줄 알았더니 제 아들놈들이 언젠가 “정말 엄마 아빠가 나를 낳았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제 아내가 하는 말이 “내가 데려와서 키울 수 있었으면 너같이 못생긴 놈 데려왔겠냐? 잘생기고 똑똑하고 속 안썩일 놈 골라왔지”라고 말하니까 “맞다”고 그럽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감정은 우리를 속입니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지 모를 때 호적을 떼어보면 내가 누구 아들인 것이 확실해지는 것처럼, 성경에 “영접하는 너, 하나님 그 이름을 믿는 너, 너는 하나님의 자녀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확실한 증거입니다.

제 신분이 그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새 인생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모든 것을 함께 누릴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 신문에 많이 회자되는 정몽준씨, 그 사람이 무슨 특별한 재능이 있다든지, 돈을 벌기 위해 고생하며 열심히 벌었다든지 하는 기록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부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아버지가 정주영씨입니다.

가끔 이재용이라는 젊은 청년이 부자라고 신문에 납니다.

그는 어떻게 부자 되었습니까?

자기 아버지가 삼성그룹의 대표 이건희씨입니다.

대개 보면, 의사 집안의 자녀들이 의사 잘 되고, 법관 집안의 자녀들이 법관 잘 되고, 교수 집안의 아들이 교수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모로부터 그 특권을 자라가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을 내 것으로 소유하게 됩니다.

이렇게 “어떤 아버지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생애가 달라지고 특권을 함께 누리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요,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특권은 무엇입니까?

 

1) 죄 용서받는 특권입니다.

 

우리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죄입니다.

죄가 없으면 인생은 담대해집니다.

어떤 사람이 장난으로 50군데 무작위로 문자를 보내 “모든 것이 들통났다. 빨리 도망가라”고 하니까 50명이 모두 어디로 숨었답니다.

죄가 없다면 “누가 장난질 하나보다”그럴 텐데, 늘 죄의식과 두려움으로 살다가 누가 쿡 찌르니까 집에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죄는 우리 인생을 두려움으로 살게 만들고, 햇빛보다는 어둠 속에 숨어 살게 만듭니다.

그 죄가 가정에 들어가면 가정이 무너지고, 그 죄가 사회에 들어오면 사회가 모두 아파합니다.

죄는 언제든지 우리 인생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 죄는 우리 인생만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불행하게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이 맞도록 기도합니다.

그 간절한 기도 때문에 땀방울이 이마에 맺히더니, 마침내 땀방울이 변해서 핏방울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기도하면 내가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단 한가지의 기도를 듣지 않으셨는데 그것은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물리쳐주시옵소서”라고 밤이 새도록 부르짖은 기도였습니다.

이 기도는 예수그리스도의 목숨을 건 기도였습니다.

땀방울이 핏방울이 된 기도였습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을까요?

우리 전능하신 하나님이 할 수 없는 일이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죄의 값은 사망이고 피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여,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하고 외쳐대는 아들 예수의 소리에 귀를 막고 외면하시면서 끝까지 아들을 죽게 하는 아픔을 친히 당하셨습니다.

이렇게 죄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저주와 불행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불행하게 했던 그 죄 문제를 예수를 통해 십자가 위에서 모두 해결해주셨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삶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무엇이 나를 괴롭히고 있습니까? 정말 가난입니까?

제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하루에 한끼만 먹으면서도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부족들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서 음식이 적기 때문에 불행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어떤 부족은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고 삽니다.

우리가 볼 때, “야, 안됐다. 어떻게 저렇게 벌거벗고 사나?”그러는데 그 분들은 “아니, 이 복잡한 세상, 더운데 뭘 그렇게 많이 걸치고 사느냐? 당신 정말 답답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진정한 문제는 죄입니다.

그런데 그 죄를 십자가 위에서 해결해주셨을 뿐 아니라 내가 지금도 짓고 있는 죄를 자백하면 용서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때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녀가 “잘못했어요”라는 말만 하면 때리는 것을 중단합니다.

어떤 부모는 “야 이놈아, 제발 잘못했다고 좀 해라”고 정답까지 가르쳐주며 때립니다.

이 놀라운 특권을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심판주입니다.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하나님의 자녀인 나에게는 그분이 아버지입니다.

내가 잘못했다고 구하면 언제나 죄를 용서해주시는 아버지입니다.

 

2)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인 평화를 누립니다.

 

평화의 진짜 뜻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평화라는 단어의 뜻은 “올바른 관계”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가 아니라 “바른 관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였습니다.

우리 반에 강심장인 친구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선생님이 숙제를 내주면 절대로 숙제를 안 하는 친구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숙제를 걷는다고 하면 그 친구는 종아리를 걷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가 제 짝이 되었습니다.

멀리서 볼 때는 이 친구가 선생님께 꾸지람을 듣고, 매맞는 것이 문제가 안되는 것 같아 보여 제가 대단하게 생각했던 친구입니다.

그런데 제 짝이 되어 가까이 보니까 “숙제”라는 말만 나오면 얼굴이 파르르 떨립니다.

그래서 하루는 이 친구를 꼬셔서 우리 집에 데려가 “내 숙제 좀 도와달라”고 청해놓고 새 노트에 숙제를 하도록 했습니다.

다 끝난 후에 “내일 이것 가지고 가라”고 주었습니다.

처음으로 같이 숙제를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옆에 앉은 이 친구는 얼마나 행복해 했는지 모릅니다.

초등학교에서 담임선생님과 바른 관계가 안 되어도 그처럼 떠는데, 창조주 우리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아닐 때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성경은 “죄인에게는 평화가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평화가 없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안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돈으로 못삽니다.

평화는 지위로 얻지 못합니다.

공부로도 평화는 얻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원수된 자들에게 예수께서 화목제물이 되어주십니다.

그분이 화목제물 되셔서 하나님의 모든 진노를 내 대신 온 몸에 다 받으시고 내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게 해주셨습니다.

 

그 다음부터 갖는 첫 번째 예수 믿는 느낌은 “평화”입니다.

 

제가 예수 믿고 나서 가장 놀랐던 것은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데 이런 평화가 세상에 있는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요14:27절을 읽겠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은 평화입니다.

그 평화를 가진 사람들은 근심도 두려움도 내어쫓는 평화라고 말합니다.

어두운 밤 그 어둠을 해결하기 위해서 몽둥이를 아무리 휘둘러도 어둠이 도망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냥불 하나 켜면 어둠이 사라집니다.

여러분, 불안하십니까? 근심이 있습니까? 문제가 무엇입니까? 해결책이 무엇입니까? 평화입니다.

어둠은 오직 빛만이 해결합니다.

근심, 걱정의 정답은 오직 주님이 주시는 평화입니다.

 

빌4:6-7절에 보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했습니다.

물론 염려, 근심, 걱정거리는 예수 믿는다고 없어지는 것 아닙니다.

문제 하나가 해결되면 다음에 또 문제가 옵니다.

걱정거리가 지나가면 다시 또 걱정거리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께서는 “이 문제와 걱정거리를 해결해주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으로 내 마음을 지켜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관심은 우리의 문제나 우리의 소유가 아닙니다.

바로 “나” 자신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나를 감싸 주시고, 안아주십니다.

어떤 문제 속에서도 빼앗을 수 없는 평화로 채워주십니다.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은 평화로 내 심령을 붙잡아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최대, 최고의 관심은 내 자신이고 내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그 고통과 문제를 우리 주님 앞에 감사함으로 아뢰기 시작해보십시오.

제가 자식들 문제로 몹시 고통을 받은 때가 있었습니다.

새벽 3시도 안되어 일어나서 아침시간까지 거실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제 마음에 강물처럼 넘치는 평화로 채워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당하는 문제를 풀어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내 생애 속에 평강으로 채우시는 하나님입니다.

 

저는 이 시간 여러분에게 하나님 자녀의 특권 두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이 특권과 축복을 내가 놓치고 사는 부분이 없는가?”를 다시 점검하십시오.

죄 때문에 고민하십니까?

주님 앞에 고하십시오.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십니다.

삶의 문제는 나를 산처럼 짓누르고 있습니까?

그것은 죄는 아니라 근심거리고 걱정거리입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하나님 앞에 고하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을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으로 먼저 지켜주십니다.

여기서부터 내 인생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게 살도록 축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놀라는 것은 “저 사람도 나처럼 똑같이 무너져야 되는데 어떻게 저런 평화를 가지고 사는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지배하는 삶이요,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특권인 것입니다.

이 특권을 누리며 단 한번뿐인 이 땅의 인생의 여정을 승리하시고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천국에서 영원히 영생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영접기도

 

사랑의 주 예수님, 저는 죄인입니다.

이 시간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 또 주님으로 내 마음에 모시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님, 지금 내 마음에 들어와 주십시오.

나의 모든 죄를 십자가 위에서 다 해결하신 예수님, 나를 용서하시고 내게도 영생을 주옵소서.

이제 예수님은 나의 구원자 또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되시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나를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영원토록 나와 함께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