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하는 믿음 (누가복음 8:43-48)
리더십에 있어 탁월한 전문가인 워런 베니스(Warren Bennis)는 “역동적인 공동체는 그 구성원이 ①높은 자존감 ②전문성과 열정 ③공동체 사랑의 정신 ④자발적인 업무 감각을 특징적으로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교회 공동체에 속한 우리는 주님의 보배로운 피 값으로 죄 문제를 해결받고 구원 받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믿는데 전문성과 열정을 가진 사람들로서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된 사람들과 함께 믿음의 전진을 계속하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맡겨진 일들을 부담이 아니라 기쁨과 감격으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교회는 그 어떤 모임이나 단체보다 질적인 탁월성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교회생활을 통해 삶의 질적인 탁월성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교회생활은 반드시 즐거움과 믿음의 성숙함을 동반해야 됩니다.
따라서 삶의 질적인 탁월성이 있으려면 믿음의 뻗어 나감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시도하는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여인은 무명의 여인입니다.
그러나 멈추지 않고 한 걸음씩 주님께 나아간 “시도하는 믿음”으로 인하여 그녀는 육신적으로 치료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심령도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역사 2천년동안 이 여인의 사건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았고 다시금 믿음으로 일어섰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하여 시도하는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시도하는 믿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하는 믿음입니다.
43절을 읽겠습니다.
“이에 열 두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이 여인의 과거 12년은 너무나 슬픈 세월이었습니다.
많은 의사들을 만났지만 괴로움은 더했고, 있던 물질은 다 허비하였고, 효험 없이 병은 더 위중해졌습니다.
따라서 12년이란 긴 세월 속에 자신의 인생을 포기했음직도 합니다.
그러나 12년이 지난 어느 날 그 여인은 다시 일어서기로 작정했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도 어려운 일도 있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회당장 야이로가 자신의 죽어가는 외동딸 때문에 자신의 집에 예수님을 초청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쁜 걸음으로 회당장 야이로의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42절에 보면 “이는 자기에게 열두살 먹은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밀려들더라”고 했습니다.
여기 바쁜 걸음으로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집으로 가실 때에 “무리가 밀려들었다”는 것은 “그녀가 예수님께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도 억센 남자들을 뚫고 들어가서 예수님께 가려면 굉장히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의 바쁜 일정 때문에 그녀는 스스로 포기하려는 마음도 들었을 수 있습니다.
아마 그랬다면 이 여인은 결코 주님 앞에 나가지 못했을 것이고 기적과 축복은 체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이 우리가 믿음으로 시도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까?
아마 사회적인 지위, 경제적인 문제, 과거의 상처, 숨어 있는 죄, 마음의 부담, 믿음의 짧은 연수 외에도 우리가 믿음의 시도를 하지 못하는 더 많은 충분한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해 우리가 포기한다면 기적과 축복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은 대단한 존재인 것 같지만 여전히 연약한 존재입니다.
포기해야 될 핑계거리를 찾으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모든 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극복하는 믿음, 시도하는 믿음이야말로 포스트 모드니즘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얼마나 요청되는 신앙생활의 미덕입니까?
2. 시도하는 믿음은 한 걸음씩 내딛는 믿음입니다.
44절을 읽겠습니다.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사실 이 여인은 감히 예수님 앞으로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예수님의 뒤로 와서 그 옷자락에 손을 살짝 대었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의 옷 가에 손을 대었다”는 것은 “유대인의 전통에 따라 만들어진 옷자락에 달린 술에 손을 살짝 대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그녀가 할 수 있었던 작은 시도였습니다.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폭발적으로 대단한 믿음을 가지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가 영의 에버레스트 정상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지속반복하여 산을 올라가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마라톤의 완주거리인 42.195km를 달리기 위해서는 100m 달리기부터 지속반복하여 연습을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한걸음씩 내딛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달에서도 그 윤곽이 보이는 중국에 있는 만리장성은 한 번에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B.C 7세기부터 A.D 17세기까지 약200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벽돌 한장으로부터 출발하여 일만 이천 칠백리(6,350km)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벽돌 한장을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벽돌 한장의 시도가 없이는 위대한 건물은 결코 세워지지 못합니다.
이렇듯 작지만 한번의 믿음의 시도는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왕상18:44-45절에 보면, 엘리야 선지자는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 이스라엘을 위해 갈멜산 꼭대기에서 기도했습니다.
한번, 두번 시도하여 마지막 일곱 번째 기도했을 때에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 지며 큰 비가 내렸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작은 시도에 대해서 별로 가치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그 정도는 자신도 할 수 있다며 가볍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교회와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에 행하는 작은 시도는 하나님 나라에 보배롭게 쓰임 받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면 지체하지 말고 작은 일이라도 기쁘게 감당해야 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신앙에서 지금 내가 믿음의 벽돌 한장 쌓는 것이 시시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벽돌 한장이 빠지는 것 때문에 인생이 무너지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드리는 한 토막의 기도를 통해 나와 가정과 교회가 올바로 살고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OM(Operation Mobilization)선교회의 창설자 조지 버워(George Verwer)는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목사의 설교를 듣고 회심한 후 1957년에 혼자 몇 명의 동료를 데리고 멕시코 선교를 위해 떠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멕시코의 영혼들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이 발전해서 전 세계에 3천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영광스런 기관으로 발전했습니다.
만약에 조지 버워가 “자신보다 똑똑하고 일 잘하는 젊은이가 많다. 꼭 나까지 선교사가 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생각했다면, 3천명의 선교사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 자신을 드리겠다”는 그 믿음의 작은 시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은혜 중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여성들의 인권은 땅에 짓밟혔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여성들도 창조적인 믿음의 긴장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땅끝까지 뻗어나가기 위해서, 시도하기 위해서, 재도전하기 위해서, 우리 여성들의 창조적인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좀 사회적인 면에서 지위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올무가 되어서 공동체에 선뜩 뛰어들지 못하고 변방에서 맴도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 가운데 사회적인 지위계신 분들이 열린 마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시도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교회 성장프로그램인 4대 목회비전에 함께 믿음으로 뛰어듭시다.
우리가 믿음으로 시도하는 것을 방해하는 사회적 지위, 경제적인 문제, 과거의 상처, 숨어 있는 죄, 마음의 부담에 붙잡히지 말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모든 문제들을 믿음으로 극복합시다.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행복이 된다면 지체하지 말고 믿음의 작은 시도를 행하여 우리의 삶과 우리교회의 질적인 탁월성을 추구하는 “시도하는 믿음”의 소유자들이 다 됩시다.
현대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케리(Willim Carry, 1761-1834)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합시다.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시도합시다”
경험은 한번의 시도, 한번의 믿음의 만남, 한사람의 변화의 놀라운 영향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기 보잘 것 없는 무명의 한 여인이 시도하는 믿음으로 새로운 삶의 주인공으로 쓰임 받았다면, 우리들도 시도하는 믿음으로 새로운 믿음의 진보를 경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시도하는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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