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삶을 바꾸는 한마디 (요한복음 1:35-42)

Johnangel 2023. 6. 29. 16:02

삶을 바꾸는 한마디 (요한복음 1:35-42)

                                              

1978년에 개봉했던 영화 슈퍼맨(Superman)의 주인공으로서 전 세계 어린이들의 꿈과 스타가 되었던 크리스토퍼 리브(Christopher Reeve)는 승마를 하다가 낙마하면서 목이 부러져 전신마비가 되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장애자가 되어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가 어려운 형편에 빠진 그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저의 사랑하는 남편입니다. 그리고 난 당신을 변함없이 사랑해요”라고 고백한 그의 아내 다나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을 통해 “희망과 재활의 메신저”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 마음이 병든 사람, 신체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세우는 귀한 일들을 감당하다가 2004년 10월 10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렇습니다.

크리스토퍼 리브는 영화 속에서만 슈퍼맨으로 기억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우로서 수많은 사람들을 격려하는 놀라운 기여를 통해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슈퍼맨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말 한마디는 다른 사람의 정신을 장애우로 만들 수도 있고, 몸이 장애우인 사람을 다시 일으켜서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위로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상의 선물 중에 하나인 입술을 가지고 한마디의 말을 통해 인생의 중심을 잡은 내용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세례요한은 신앙고백을 통해 제자들을 격려했습니다.

 

35-36절을 읽겠습니다.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의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예비하는 “사막에서 외치는 자, 광야의 소리”라고 일컬어집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다니심을 보고 그를 가리켜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두 제자에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 용서를 위해 구약에서 약속하신 “메시아”를 의미합니다

요1:29절에 보면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는 신앙고백을 통해 세례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외모와 삶의 스타일, 그리고 예수 믿은 연수도 서로 다르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은 신앙고백을 통해 표현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앙고백에 우리의 전존재를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고백이야말로 우리 자신을 세울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영혼도 세웁니다.

신앙을 주님 앞에 분명히 고백할 때 우리 자신이 살고,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실 사람들을 살리고, 그들을 주님께로 이끌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세례요한의 신앙고백이 우리의 마음에 살아 움직일 뿐만 아니라 시의적절하게 고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최근에 여러분의 신앙을 누구에게 간증한 일이 있습니까?

있으시다면 누구에게 어떤 내용의 고백으로 이야기하였습니까?

진정한 신앙고백이 없이는 나를 얻을 수도 없고, 너를 얻을 수도 없습니다.

신랑은 신부에 대한 사랑의 고백을 통해 신부를 얻습니다.

신부는 신랑에 대한 동일한 사랑의 고백을 통해 신랑을 얻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고백으로 주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위에 우리의 신앙고백을 들어야할 이웃이 누구입니까?

 

2. 안드레는 진리에 대한 확신을 형제에게 전하였습니다.

 

40-41절을 읽겠습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제자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안드레는 세례요한의 제자중의 한사람입니다.

그는 형제 베드로를 찾아가서 “메시아를 만났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죄를 용서하시고 삶을 책임지시는 구세주를 만났다. 형도 내가 만난 주님을 만나야 되지 않겠는가?”하는 간절한 사랑의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남자다움은 근육질과 호기부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확신과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거리낌 없이 전하는 데 있습니다.

안드레라는 이름은 “남자답다, 강건하다”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안드레는 확신을 가지고 가장 가까운 형제 베드로에게 나아갔습니다.

안드레가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형제 베드로에게 하는 이 말은 단순한 말이지만, 그 속에는 담대함과 형제를 향한 눈물의 호소가 들어있습니다.

 

안드레가 하는 역할은 예수님께 나올 수 있도록 뒤에서 돕는 일입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수 년 동안 훈련받아서 전도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지식이 많아야 전도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생명의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피로 죄씻음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도 안드레처럼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소박하지만 강력한 복음전도자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를 만난 사람답게 “메시아를 만났다”는 고백을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의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한번은 중국의 위대한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를 찾아온 청년이 “저도 이제부터 세례도 받고, 본격적인 신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얼마나 읽어야 하고, 신앙의 연수는 얼마나 오래 되어야 합니까?”라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때 허드슨 테일러는 그 청년의 질문에 “촛불은 언제부터 빛을 발합니까?”라고 되 묻자 청년이 “그야, 양초에 불을 붙이는 순간부터 빛을 내지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을 잘 모른다”는 핑계로 이웃에게 전도하기를 시도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직분을 받지 않았다”고 하면서 복음을 확산시키는 것에는 손을 놓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교회출석연도가 길지 않다”고 말하면서 교회로 친구를 인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성경지식의 유무보다, 교회 안에서의 직분보다 더 중요하고 급한 것은 우리의 구원과 복음을 알리는 일입니다.

 

3. 예수님은 복된 말씀을 통해 사람들을 세우셨습니다.

 

38-39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니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게신 데를 보고 그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기 원하는 안드레와 요한을 보고, 그들이 추구하는 목적을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단순하면서도 직설적으로 안드레의 인도를 받아서 나온 베드로에 대해서, 42절에 보면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를 세우십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장차 주님께서 베드로를 반석처럼 들어 쓰시겠다는 용기와 확신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립을 부르실 때도 “나를 따르라(Follow Me!)”고 단순하지만 강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영광스럽고 복된 말씀을 통하여 사도들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말의 영향력에 대해 우리 스스로 과소평가 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위대한 일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해서 한마디의 축복의 말 때문에 일어납니다.

우리는 세례요한과 안드레 그리고 예수님의 일을 통해서 한마디의 격려의 말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말이 지닌 영향력은 무엇입니까?

 

①말에는 흡인력이 있습니다.

말은 사람을 잡아당기기도 하고 밀어내기도 합니다.

식당 종업원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사람들을 음식점으로 이끌어 들입니다.

우리 교회가 따뜻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들의 언어가 따뜻해야 하고, 비전 있는 말, 용기를 주는 말, 움직이는 말을 통용해야 합니다.

 

②말에는 각인력이 있습니다.

말은 가슴에 새겨집니다.

부정적인 말로써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축복의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③말에는 예언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말대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말에 담긴 예언하는 능력을 과소평가해선 안 됩니다.

 

④말에는 성취력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 때문에 삶이 변하든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진리에 대한 말은 축복으로 남습니다.

 

팩스턴 후드(Paxton Hood)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 세상의 거의 모든 문제가 말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말을 누구에게 사용하기를 원하십니까?

축복된 말 한마디를 누구에게 전해야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혀는 복음을 증거 하는 혀입니다.

세례요한은 자기 제자들에게, 안드레는 먼저 자기 형제 시몬에게, 빌립은 한동네 이웃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 시간에도 베드로와 나다나엘 같이 우리의 복된 소식을 듣고 주님을 만나야 될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는 신앙고백을 통해 우리 자신의 영혼을 세울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영혼도 세우십니다.

담대한 확신과 형제사랑의 눈물을 가지고 복음의 진리를 전합시다.

삶을 바꾸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축복의 말을 통해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위로하여 이 시대의 또 다른 안드레와 빌립을 일으켜 세웁시다.

이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혀는 복음을 증거하는 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