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복음의 위력 (갈라디아 3:13-14)

Johnangel 2023. 7. 1. 23:16

복음의 위력 (갈라디아 3:13-14)

                                               

우리가 엘리베이터를 탔더라도 원하는 층수를 누르지 않으면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의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영적수준과 목적을 정하고 우리의 의지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은혜의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받았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고 그 상태에서 안주하려고 하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구원의 능력을 온전하게 누리며 영의 자유함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갈라디아서 3:1절에 보면, 이미 예수를 믿는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하여 바울은 그들에게 전혀 어울리지 “어리석도다”라는 말로 책망합니다.

“어리석다”는 말은 “사려깊지 못하다”“영적으로 둔감하다”는 뜻입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이런 책망을 듣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복음의 약속과 은혜가 분명한데도 잘못된 율법주의의 유혹을 받아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진리에 순종하지 못하도록 유혹하는 거짓교사들의 권면이, 마치 누룩이 반죽그릇에 퍼지듯이 갈라디아 교인들의 영혼에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갈5:1절에서 바울은 그들에게 “주님의 은총 속에 주신 자유를 굳게 지키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왜냐하면 성도가 복음의 자유를 잃어버리면 율법의 억압 속에서 살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변질은 믿음의 위기를 반드시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오늘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는 복음의 위력을 세 가지 관점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복음은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완전히 단절시킵니다.

 

초대교회시대나 지금의 우리들이나 여전히 잘못된 사상의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얼마 전 한국교회의 일각에서 “조상의 죄가 후손들에게 내려와 우환이 된다”는 여러 종류의 책들이 출판되어 “가계의 저주” 신드롬이 일어났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계의 저주”는 그 뿌리를 샤머니즘에 두고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무속적인 신앙이 많은 성도들의 신앙에 어두운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조금만 어려움이 생기거나 자녀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조상의 죄를 탓하거나, 환경을 탓합니다.

또한 과거의 잘못이나 사건이나 상처에 얽매여 마음에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저주를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신령한 사람을 찾아가 특별기도를 받아야 하고, 안수를 받아야 한다”는 교묘한 처방을 내리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잘못이 조상들로부터 대물림한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고후5:17절에 보면,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되었으며,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신다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갈2:20절에 보면 “이제 우리는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2. 복음은 우리를 참된 자유인으로 해방시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와 저주가 공존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셨다”는 사실에 주목하시오.

13절을 읽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여기에서 “저주”는 율법을 준수하지 못했을 때 받는 저주를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저주를 다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받을 저주는 없습니다.

당시 갈라디아 교인들은 십자가의 복음과 율법을 겸하여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은 복음을 훼방하는 것이요, 주님의 구원사역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남은 저주는 100% 해결되었습니다.

조상들로부터 대물림할 저주는 더 이상 우리에게 없다는 말입니다.

복음은 그 자체로 완전합니다.

주님의 사역은 완전하고 충만한 사역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율법의 정죄와 저주에서 해방시킨 자유인입니다.

롬8:1-2절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이 모든 일이 과거에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별력을 가지고 복음의 은혜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주님이 주신 자유를 누리고 그 자유를 전파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 압박감과 저주에 대한 공포심에서 해방되십시오.

영적인 자유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복음은 그리스도인의 고난을 재해석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렇다면 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우환질고를 겪습니까?”라고 질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닙니다.

단지 천국을 준비하는 광야생활일 뿐입니다.

그곳에는 만나와 메추라기와 반석의 생수를 체험하기도 하지만 타는 갈증도 겪는 곳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순례의 길을 가면서 겪는 눈물과 아픔과 고난은 저주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법 안에 있지만 또한 자연법칙의 다스림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얼마든지 우리 그리스도인도 자연재해를 겪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자연재해나 자기의 잘못이나 자기 인격의 부족함이나 개인적인 유혹과 시험으로 겪게 되는 어려움은 저주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이 겪는 고난 중에는 사단의 공격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믿기 때문에 핍박받는 것은 상급이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 믿기 때문에 받는 핍박은 저주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식을 향한 회복과 회개로의 부르심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해석되지 않는 어려움이 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높은 섭리를 다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해되지 않을 때에는 억지로 해석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믿음의 수준이 성장하면서 깨닫게 될 수도 있고, 또한 이 땅에서 그 답이 주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서는 그때에는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저주에서 축복으로 바꾸시는 복음의 위력을 경험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돌이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온 과거를 청산하십시오.

그리고 주님과의 관계에서 막혀있는 문제가 없도록 회개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가까이 하십니다.

이를 위해 깨어 기도하십시오.

기도를 회복하십시오.

우리의 삶이 메마르지 않도록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많은 핍박과 도전과 환난을 이기는 힘입니다.

 

셋째, 저주의식이 아니라 은혜와 축복의식 속에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당대에 예수 믿는 사람의 경우에 샤머니즘적인 생각이 나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 안에 축복을 약속하신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넷째, 다른 사람들의 고난을 쉽게 판단하지 마십시오.

예기치 않은 육체적, 가정적 어려움이 있을 때 함께 울어주십시오.

심판대의 자리에 서지 말고 위로하고 도와주며 동병상련의 아픔을 함께 나누십시오.

설령 징계를 받는다 할지라도 그의 손을 잡아주고 기도해주는 사랑의 짐을 함께 나누어지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가 복음의 위력을 체험하게 하시고, 주님의 놀라운 은혜가 우리를 이끌어 주실 줄 믿습니다.

따라서 조상탓 하지 말고 마음껏 주님을 찬송하는 자로 살아가십시오.

예수 안에 있는 우리를 사탄도 율법도 저주하거나 정죄하지 못합니다.

복음의 영광이 나를 이끌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갑시다.

복음의 자유와 은총을 향유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