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통의 복을 누릴 사람 (역대하 7:11)
많은 사람들은 “월급을 많이 주는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월급을 적게 주는 직장에 다니는 사람보다 더 충성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대우를 잘 받을수록 더 열심히 일한다는 인센티브 이론은 유효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에게 제가 질문하겠습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많이 받은 자의 감사지수가 높다고 단정할 수 있습니까?
실제로 하나님으로부터 큰 은혜를 받아 “환경이 상대적으로 더 좋은 사람이 정말 감사지수가 높은가?”를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진지하게 질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사는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우리의 과거는 모두 죽은 자들이요, 저주 아래에 있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친히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값으로 영원한 저주와 죽음에서 벗어난 자들입니다.
또한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늘나라의 기업을 소유한 하늘나라에 속한 자들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형통의 복을 받기를 갈망합니다.
그런데 11절에 보면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과 왕궁 건축을 마치고 솔로몬의 심중에 여호와의 전과 자기의 궁궐에 그가 이루고자 한 것을 다 형통하게 이루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형통하게 된다”는 말은, 일을 계획한 대로 성공적으로 잘 마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는 허겁지겁 일에 쫓기면서, 미완성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일을 다 이루어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형통한 삶을 살아 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형통의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문제는 형통의 복을 누리는 이치를 깨닫는데 있습니다.
주님 앞에서 어떤 자들이 형통의 복을 누리게 될까요?
1. 전심으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자들이 형통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1절을 읽겠습니다.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
그렇습니다.
솔로몬이 만조백관들과 백성들과 함께 주님 앞에서 주님을 즐거워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사람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여호와의 영광”이 불의 형체로 솔로몬의 성전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2절에 보면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제사장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수종드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얼마나 “여호와의 영광”에 압도되었던지, 그들이 성전에 들어가서 정상적으로 일들을 보지 못할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신앙생활을 율법적으로 오해하여, 벌을 받지 않기 위해 마지못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을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주님께서도 기뻐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의 기쁨이 됨과 동시에, 주님은 우리의 즐거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는 찬송하면서, 물질을 드리면서, 기도하면서, 주님을 즐거워하는 영적 즐거움이 배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①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은 먼저 자신을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3절을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모든 자손은 불이 내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위에 있는 것을 보고 돌을 깐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니라”
여기 땅에 엎드리는 것은 “자기 자신을 주 앞에 드려 예배하고 경배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형통의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자신의 얕은 지식을 가지고 주님에게 맞서는 사람은, 이 땅의 삶을 사는 한 평생 동안 갈등의 삶을 보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지혜, 주님의 전능하심, 주님의 사랑에 압도되어, 주님께 엎드리는 자에게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임합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 엎드립니다.
하지만 본문에 나타난 모든 백성들은, 하나님 자신, 하나님 존재 그 자체를 높이기 위해 엎드렸습니다.
고후8:1-5절에 보면, 사도바울도 고린도 교회를 권면하면서 마게도냐 교회의 사랑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이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무슨 말입니까?
마게도냐 교회는 극심한 가난과 환난 가운데서도 주님 사랑의 증거를 남겼는데, 그중 하나가 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은 먼저 자신을 주님께 드리고, 그 다음에 물질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따라서 우리들도 내가 주님께 “물질을 얼마나 드릴까?”를 걱정하기 앞서 “내 자신을 주님께 온전하게 드리고 있는가?”를 걱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②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은 최선의 예물을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5절을 읽겠습니다.
“솔로몬 왕이 드린 제물이 소가 이만이천마리요 양이 십이만 마리라 이와 같이 왕과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전의 낙성식을 행하니라”
그렇습니다.
솔로몬 왕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들이 혼연일체가 되어서,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엄청난 제사를 드렸습니다.
7절에 보면, 하나님께 얼마나 드린 제물이 많았던지, 능히 그 번제물과 소제물과 기름을 담을 수가 없어 임시방편으로 특별공간을 마련해서 제물을 쌓아두는 특별법을 만들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내가 예산하고 계산한 것만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계산을 초월해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물론 계획을 세우는 것이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반드시 영적인 파격이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이 주신 은혜의 세계는 우리의 상식의 세계에 갇히질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 솔로몬과 모든 백성들은 주님에 대한 사랑에 그 한계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힘 닿는 대로 최고, 최선의 예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③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은, 은사를 극대화해서 받은 직분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6절을 읽겠습니다.
“그 때에 제사장들은 직분대로 모셔 서고 레위 사람도 여호와의 악기를 가지고 섰으니 이 악기는 전에 다윗 왕이 레위 사람들에게 여호와께 감사하게 하려고 만들어서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을 찬송하게 하던 것이라 제사장들은 무리 앞에서 나팔을 불고 온 이스라엘은 서 있더라”
여기 “여호와의 악기”라는 것은, 여호와의 영광을 위하여 악기를 만들었기 때문에 “여호와의 악기”라고 말씀합니다.
대하5:11-14절에 보면, 각자 악기를 맡은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공교하게 악기를 연주하며 소리를 높여 노래할 때, 하나님은 너무 기뻐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단편적으로 하나의 음률만 있어선 안 되고, 오케스트라가 되어야 됩니다.
따라서 우리의 직분, 은사, 주님을 믿은 연도, 깨닫는 믿음의 정도가 여러 면에서 다르지만, 전체가 어우러져 여호와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찬송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직분을 받았든지, 그 직분에 충성할 때, 우리 고현교회 전체가 조화로운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는 자들이 형통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8절에 보면 “그 때에 솔로몬이 칠일 동안 절기를 지켰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전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 앞에 영광과 찬송을 돌릴 뿐만 아니라, 믿음 안에서 함께 주님을 기뻐하는 감사절기로 장막절, 수장절,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10절을 읽겠습니다.
“일곱째 달 제 이십삼일에 백성을 그들의 장막으로 돌려보내매 백성이 여호와께서 다윗과 솔로몬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
감사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가슴에 새기고, 기뻐하며 즐거워함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우리 교회 안에서 만 국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교회지역화 현상을 극복하고, 이 세상의 모든 형제교회들과 손을 잡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감사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좀 더 적극적으로 주님께 받은 은혜를 가지고 지역사회 안으로 침투해야 됩니다.
그리고 형제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성도들의 마음에 생기는 교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미심쩍어하는 부분을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기독교의 문화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세속의 문화가 기승을 부리지만, 우리는 익산지역에 우리 고현교회를 통해 복음의 문화, 생명의 문화가 확산되게 만들어야합니다.
11절을 읽겠습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과 왕궁건축을 마치고 솔로몬의 심중에 여호와의 전과 자기의 궁궐에 그가 이루고자 한 것을 다 형통하게 이루니라”
그렇습니다.
솔로몬은 여호와 앞에서 작은 자가 되어 주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드리기를 힘썼습니다.
이 때 솔로몬은 모든 범사가 다 막힘없이 형통했습니다.
하지만 훗날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큰 자로 인식했을 때, 그는 우상숭배에 빠지게 됩니다.
골3:5절에 보면 “우상숭배는 곧 탐심이요, 자신을 하나님 보다 앞세우고 하나님보다 높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에겐 배우자나, 직업이나, 자식이나, 물질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탐심의 우상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극복해 내기 위해 우리와 관계된 모든 것을 마땅히 주님 앞에 드려져야합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존재 그 자체를 높이기 위해, 먼저 우리 자신을 주 님 앞에 드려 예배하고 경배합시다.
내년에도 우리의 계획과 한계를 초월하여 최선의 예물을 드립시다.
우리가 이미 주님께 받은 은사를 극대화해서 받은 직분에 최선을 다합시다.
자신과 물질과 직분을 통해, 하나님을 영원히 즐거워함으로 우리 모두 형통의 복을 누릴 뿐 아니라 이웃과 함께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감사합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 우리나라와 사회를 형통하게 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됩시다.
우리는 자손만대로 형통의 복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자존감을 갖고, 주님 그 존재 자체를 즐거워하고 감사하며, 모든 범사에 형통함을 체험하고 누리고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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