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17:1-7)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돌에서 물이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돌에서 어떻게 물이 나오겠습니까?
암반수라는 말이 있지만, 그 말은 “암반 위에 지하수가 고여 있다”는 말이지 “암반 그 자체에서 물이 나온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물이 없을 것 같은 그곳에서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쳤더니 거기에서 물이 나와서 이스라엘 온 백성이 다 먹고도 남을만한 물이 나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도 이와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영원불변하신 하나님은 도저히 계시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여전히 그곳에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2절을 읽겠습니다.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이 말씀은 애굽에서 400년이 넘는 세월을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망각하고, 이제는 그들이 심판자의 자리에 서서 여호와 하나님을 정죄하는 모습입니다.
이럴 때 여러분이 만약 하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장에 그 백성들을 작살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행동은 우리의 상상이나 계산을 초월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배은망덕한 그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팡이를 잡고 호렙산에 올라 “한 반석”을 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그 반석을 치자마자 반석에서 의외로 목이 타는 백성들이 그토록 필요로 했던 샘물이 솟아나기 시작합니다.
사도바울은 “그 반석이 바로 그리스도의 사건을 예표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반석에서 솟은 샘물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1. 이 샘물은 희생의 샘물입니다.
르비딤 광야에서 그렇게도 절실하게 필요했던 물은, 뜻 밖에도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한 반석의 깨어짐을 통해서 예비되었습니다.
성경학자 아서 핑크(Arthur Pink)는 6절의 말씀에서 “얼마나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이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는가를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6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반석위에 서리라”고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 “지팡이로 반석을 치라”고 명령하십니다.
모세가 지팡이로 먼저 내리친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반석이 아닌 반석위에 서 계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고전10:4절을 읽겠습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렇습니다.
사실 그 지팡이로 모세가 쳐야할 것은, 은혜를 망각하고, 회개할 줄 모르고, 원망과 불평을 계속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가 내리친 지팡이는, 반석이신 하나님을 치신 것이요, 그리고 반석이신 하나님이 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 반석이 바로 “그리스도”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물과 피를 흘리신 희생의 결과로 바로 우리의 구원과 오늘의 자유의 삶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실 수 있었던 반석의 샘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요, 희생의 샘물이었던 것입니다.
2. 이 샘물은 은총의 샘물입니다.
반석에서 솟은 샘물의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는, 이 샘물이 하나님의 은총이었고, 하나님의 사랑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은총 혹은 은혜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지는 사랑입니다.
따라서 은혜를 모르고 원망과 불평을 계속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마땅한 대접은 지팡이요, 채찍이요,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백성을 치시는 대신에 반석이신 자신을 치시고, 그 반석이 쏟아 놓은 샘물을 값없이 그대로 마시게 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의미입니다.
엡2:8-9절을 읽겠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니라”
그렇다면 이 은총, 이 은혜를 경험한 우리가 할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오직 한 가지 감사할 일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감사함으로,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얻은 구원의 감격으로, 또한 복음을 전해준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희생을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만일 아직도 우리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구원의 의미를 모르고, 우리의 삶이 원망으로 점철되고 있는 인생이라면, 그 참된 감사를 배우기까지 우리의 이 땅의 광야의 여정은 좀 더 깊은 광야로 계속되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마시는 샘물은 이 물을 마실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은총임을 알고 마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마시는 한잔의 물이 바로 은총의 물이요, 이 하루의 삶이 은총의 삶이요, 오늘의 믿음의 행진이 바로 십자가의 은혜 때문임을 기억하고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을 감사함으로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이 샘물은 풍성한 샘물입니다.
목이 타는 사람들에게는 한 모금의 물도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가까스로 목을 축이는 모습을 보시는 것만으로 만족해하실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르비딤에서 제공하신 샘물은 풍성한 샘물이었습니다.
호렙산 깨어진 반석에서 솟은 샘물은, 한 두레박의 샘물이 아니라 르비딤 일대를 모두 적시는 강수의 물이었습니다.
그 증거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시105:41절 읽겠습니다.
“반석을 여신 즉 물이 흘러 나와 마른 땅에 강 같이 흘렀으니”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이제 오늘 본문의 사건의 큰 그림을 보십시오.
작은 반석에서 솟은 샘이라면, 그것으로 몇 사람이나 마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
강물처럼 마른 땅을 적시던 그 물로 그 많은 사람들이 해갈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10:10절에 보면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가장 정상적인 믿음의 행진의 도상에 있는 우리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풍성한 삶의 축복인 것입니다.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도상에도 고난이나 역경이 결코 낯선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렘29:11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하셨고, 애3:33절에서는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향한 이 땅의 모든 부모의 자연스러운 소원처럼, 우리가 풍성한 삶을 누리는 것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행복의 강수를 헤엄치며, 생의 찬가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잠시 동안이지만, 르비딤에서 주의 백성들은 그런 축복을 경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용기백배하여 새 힘을 얻고 회복을 경험했습니다.
“르비딤”이라는 의미는 “원기 회복”이나 “지원 받음”이라는 뜻입니다.
혹시 용기를 상실한 분들이 계십니까?
낙심하고 계신 분이 계십니까?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르비딤에 오십시오.
르비듬은 바로 주님께서 피로 사신 우리 고현교회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형제 교회들입니다.
거기서 예배와 찬송과 기도를 통해 반석 되신 주님을 만지십시오.
그리고 주님이 제공하는 성령의 강수에 젖어 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 모든 문제의 해답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형용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는 은혜와 회복의 은총이 충만하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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