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상상을 초월한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 (에베소서 2:1-7)

Johnangel 2023. 12. 15. 10:05

상상을 초월한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 (에베소서 2:1-7)

                                             

사도바울에게는 남다른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 욕심 앞에는 “거룩한”이라는 수식어가 따릅니다.

다시 말해서 거룩한 욕심이 있었는데 “세속주의의 물결이 출렁이는 그 현장에 살고 있는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남다르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에베소교회에 편지를 쓸 때 “충만”이란 단어를 여러 번 사용했습니다.

늘 부족하게 살지 말고, 충만하여 남을 도울 여유가 있기를 원하였습니다.

그 결정적인 부분이 사도바울의 기도에서 나타납니다.

엡3:18-19절을 읽겠습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깊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다시 말해서 “주님의 사랑을 알고, 주님의 사랑에 붙잡히고, 주님의 사랑에 깊이 빠지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교회 교인들이 사랑이 충만한 하나님의 모든 부요하신 자원을 받아 공급 받아 누리는 자처럼 살기를 기도했습니다.

주님은 교회에 말씀을 주시고, 성령을 주시고, 사랑을 주셨기 때문에, 교회 공동체 안에는 모든 하늘의 신령한 복이 다 있습니다.

우리가 그냥 각박하게 사는 것은 주님 뜻이 아닙니다.

 

4절 말씀은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사도바울은 이 말씀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긍휼”이란 단어와 “사랑”이란 단어는 표현만 다르게 했을 뿐이지, 본질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무한 광대하신 사랑, 조건 없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누구를 가릴 것 없이 풍성한 삶과 충만한 삶의 주인공으로 살 수가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 모든 자에게는 풍성한 삶이 허락이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있을 때 우리는 희망을 가진 존재가 됩니다.

그리고 이 주님의 사랑은 역동적입니다.

 

이 놀라운 사랑을 세 가지 동사에 담아 표현하였습니다.

 

1. “살리셨도다.” 동사로 나타납니다.

 

1절을 읽겠습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려 주셨습니다.

그러면 “살리셨도다.”라는 것은 어떤 표현입니까?

우리는 허물로 인하여 과거에 죽어 있었다는 것이고, 죽었다는 것은 영적으로는 무능하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생명과 접촉되어 있지 않고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찬송할 수도 없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도 못했습니다.

롬3:23절을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육체만 죽는 것이 죽음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무능한 자가 되는 것, 영적인 식물인간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사실을 직시했던 사도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과거의 끔찍한 모습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롭고 풍성한 삶을 사는 하나님의 축복받은 자녀가 되었는가?”를 대조하기 위해서 이런 단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연약한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우리를 살리기로 작정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살을 찢으시고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 우리는 과거의 모든 죽음 가운데서 단절이 되고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난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내가 받은 이 은혜와 축복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감격하면 감격할수록 그에 비례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셨다.”는 것에 대한 기쁜 깨달음이 있는 것입니다.

 

2. “또 함께 일으키사”라는 동사입니다.

 

6절을 읽겠습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셨습니다.

숨만 쉬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마음껏 감당하도록, 우리를 움직이는 자로 일으켜 주셨습니다.

존 브라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셨지만 우리의 죄는 부활하지 않았다. 우리의 죄는 그리스도의 무덤에 영원히 장사되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는 주님께서 죽으신 자리에서 영원히 장사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다시 일으킴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놀랍고 복된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분을 영광스런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3.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는 동사입니다.

 

6절의 “하늘에 앉히셨다”는 것은 “승리자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땅에 발을 딛고 영적인 싸움을 싸우며 살고 있지만, 우리는 영원한 승리자가 된 것입니다.

일시적으로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세상과 죄와 더불어 싸울 때 승리한 자로 승리한 자로 삼아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일으킴을 받았고, 예수님과 함께 하늘 영광의 보좌에 앉는 상을 우리 모두가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왜 우리를 살리시고, 일으키시고, 하늘에 앉히셨을까요?

 

7절을 읽겠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은혜는 한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그 은혜에는 “지극히”란 단어와 “풍성함”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을 은혜에 대하여 한계를 짓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과 맞닿아 있기를 축복합니다.

복음은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 실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동사로 표현해서 가장 생생하게 사도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알려 주기를 원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누리는 모든 영광은 모두가 다 일시적입니다.

사람은 예외 없이 죽음에 이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은혜는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심령 속에서 한없이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영광은 남이 우리의 어깨위에 얹어준 것이 아닙니다.

이번 특별새벽기도회에서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의 심령과 우리의 삶과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풍성함을 경험하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빌4:6-7절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전심을 다해 기도합시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