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사용하는 사람 (고린도후서 12:5-6)
성경에 보면, 우리에게 있는 고정관념이 굉장히 많이 깨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가 “하나님은 약한 자를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고전1:26-27절을 읽겠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여기 “택하사”라는 말씀은 “고의적으로 선택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은 약한 자를 고의적으로 택하여 쓰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주님의 능력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제일 좋은 사람은, 인간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때 가망성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여덟 아들 중에 제일 부족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여덟 번째 아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은 것이 아니라 여덟 번째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택함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다윗의 집을 찾아왔을 때, 그 아버지 이새도 첫째부터 일곱째가지는 소개했지만 여덟 째 다윗은 소개할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다윗을 “하나님이 들어서 쓰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약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바 되면, 쓰임 받지 못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오늘 여러분도 힘을 얻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자신의 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성경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로마서 보면 “우리는 인간은 완전한 죄인이다, 따라서 소망이 없는 존재다”라고 우리의 자아를 초토화시켜버립니다.
다시 말해서 “무능한 인간이라는 한계를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런 자각이 있기 전에는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이라는 말 자체에는 “한계에 빠져있는 존재”라는 뜻이 있습니다.
첫째, 신체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만 무리해도 우리의 육체는 아프고 넘어집니다.
둘째, 인간관계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좋아 보이는 사람도 사귀어 보면 독이 있고 섭섭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인간이구나.”생각하게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셋째, 지성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많이 배운다 할지라도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이런 한계와 약점을 그대로 인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보면, 고난 중에 있는 분들도 있고, 위기 가운데 빠져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고난과 위기로 말미암아 어떤 사람을 보면, 굉장히 겸손해 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그런 위기를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약함을 인정하고 철저히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의 능력이라는 것은 오십보백보입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했느냐?”는 것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지는 것이지, 우리 속에 있는 어떤 힘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참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 있게 자기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왜 우리가 약함을 인정해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능력으로 채우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 있게 자기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 어떤 면에서 자신감입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자기 약점을 자꾸 숨기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불신자들이 왜 자기 약점을 숨기려고 하는지 아십니까?
자기의 약함을 토로하면, 아무 것도 자기를 가려줄 것도 없고, 채워질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의 약점을 자꾸 숨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왜 그런 이방인과 같은 방법으로 살아가야 합니까?
우리는 절대 버려진 고아가 아닙니다.
모든 것을 채워주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큰 믿음이 무엇입니까?
우리 구주 예수님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내게도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나를 사용하기를 원하신다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내 신앙의 연조가 길지 못해도, 내 경험이 크지 못해도, 내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 해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그 믿음을 사용하면 태산이라도 옮겨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의 한계와 약점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을 위해 나아가는 첫 번째 발걸음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고후1:8-9절을 읽겠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때로 심각한 고난이 임하게 하시는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고난이 임할 때, 무조건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대부분 언제 기도하게 됩니까?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주님을 의지할 때부터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기도는 게을러서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말고 다른 것을 믿는 교만함이 있기 때문에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능력을 믿고 기도하는 마음이 제일 좋은 마음인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마음은 “상한 심령”이라고 했습니다.
상한 심령이란, 주님 외에는 채워지지 않는 상하고 병든 심령을 말합니다.
그런데 왜 주님께서는 이런 상한 심령을 가장 기뻐하실까요?
상한 심령을 가져야만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수 있는 자세, 기도할 수 있는 환경,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이 최고의 축복인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약함을 싫어합니다.
약함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저도 생글생글 웃는 얘가 예쁘지, 밤낮 질질 짜는 얘들은 예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묘한 것은, 그렇게 보기 싫은 그 약점 때문에 평생 겸손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시각으로는 보기 싫은 것처럼 보이는데, 그 사람을 끝까지 유지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그 약함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울도 이렇게 소리치며 말합니다.
“내가 약할 그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다!”
모든 연약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삶 가운데 임하게 만듦으로 말미암아 약하지만, 강하게 쓰임 받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다른 사람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나도 약하지만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다 약하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약한 나를 사용하신다면, 약한 그들도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고 절대로 무시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대부분 강하다는 사람들의 약점이 무엇입니까?
독선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남을 무시하고 남들과 협력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무도 필요하지 않다, 나는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약한 자를 통해서 주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그 사람의 약함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약함 속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고 그들과 함께 손을 잡고 협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서 이런 약한 사람들끼리 하나씩 모여서 하나님의 능력을 이루어 가는 것이 바로 교회공동체인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어떤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교회는 약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하지만 약한 자 위에 주님의 능력이 부어질 때 “얼마나 큰일을 하게 되는가?”하는 것을 경험하고 깨닫는 것이 바로 교회공동체입니다.
그런 동역의 능력과 기쁨을 체험하시는 고현의 가족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기독교의 뿌리를 이루는 두 가지 중요한 고백이 있습니다.
마16:16절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베드로의 고백과 행14:14-15절에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는 고백입니다.
이 두 고백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자신들의 연약함을 토로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만이 최고”라는 고백 위에서 가장 능력 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 앞에서 쓰임 받기 위해서 이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의 연약한 사람들의 가치를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약함 중에 주님으로부터 강력하게 쓰임을 받읍시다.
나의 주변의 연약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때는, 저들도 능력 있게 쓰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협력합시다.
그리고 이렇게 선포합시다.
“나는 예수 이름으로 보호받고 축복 받고 치유 받았음을 선포하노라”
“나는 이 세상에서 범죄하고 실수하고 넘어졌지만 예수 보혈로 용서받았음을 선포하노라”
“나는 사탄에게 빼앗겼던 모든 권세를 회복했고 이 땅을 정복하는 모든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이 내 안에서 회복되어졌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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