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와 함께 걸어갈 것인가?(2) (마태복음 14:22-33)
군대생활을 하신 남자들은 “봉 체조”라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전봇대만한 굵은 나무를 8-10명이 잡고서 함께 아래위로 올렸다 내렸다가 하는 것인데, 체조라고 하지만 사실은 기합입니다.
이런 기합을 받을 때, 가장 유리한 사람은 키가 작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키가 작다보니 팔도 짧아서 그냥 왔다 갔다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키가 비슷한 사람들을 붙여주지, 키가 작은 사람은 한 팀에 끼워주질 않습니다.
왜냐하면 키기 비슷한 사람이 아니면, 키가 작은 사람이 써야할 힘까지 키가 큰 사람들이 모두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다른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믿음의 키가 똑같은 사람들끼리 있으니 문제가 생겨서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니 그들이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을 먹이시고 12바구니가 남는 큰 이적을 행하신 주님께서는 홀로 기도하시기 위해서 제자들에게 먼저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바로 큰 풍랑을 만나서 제자들이 탄 배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계속적으로 그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어려서부터 갈릴리 바다에서 배를 타고 고기를 잡던 어부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어떻게 노를 젓고, 바람의 방향이 어떤지를 알고, 배를 조정해 가는 데는, 이들을 따를 사람이 없을 만큼 전문가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지금 풍랑을 만나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맴돌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갈릴리 바다는 지면의 땅보다 약 200m 정도 낮은 곳에 있기에 이런 기상변화가 잦고 심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 배에 탑승하여 그 상황에서 제자들이 서로에게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다면, 정말 기가 막힐 것입니다.
“왜 배의 방향을 그렇게 돌리느냐? 돛대를 올려라 내려라. 노를 빨리 저어라. 노를 젓지 말라!” 등등... 온갖 이야기가 난무할 것이요. 그 상황은 엉망진창일 것입니다.
그들이 가진 배에 대한 지식과 갈릴리 바다에 대한 지식이 그들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더 힘들게 하고, 더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혹시 어려운 문제가 닥쳤을 때, 그것을 수습하려고 하는 여러분들의 수단과 노력과 방법 때문에 오히려 여러분들의 그 문제를 더 어렵게 하고 더 힘들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 제자들의 상황은 너무나도 힘이 듭니다.
당시 로마식 밤은 1경을 3시간씩 구분하여 나누었습니다.
그러므로 4경이라면 새벽 4-6시를 가르칩니다.
그런데 밤 4경 새벽에 그 깊은 물위로 누군가가 걸어오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너무나도 힘이 들어서인지 “그 물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서 유령이라고 무서워하고 놀랐다”고 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두려워하는 그들에게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이 말씀은 세상의 모진 풍랑에 힘들고 지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주님의 귀한 위로의 말씀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바람막이요, 믿음의 삶의 인도자요, 생명의 주관자인 주님과 함께 걸어가지 아니하고서는 이 풍랑 많은 세상을 우리는 결코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고현 믿음의 가족 여러분!
이 시간에 우리는 내 곁에서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시는 주님의 거룩하신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주님의 말씀에 “누구보다 주님을 가장 잘 알고 있다. 가장 믿음이 있노라.”고 자부하던 베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위를 걸어오라 하소서”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걸어오라고 하셨지만, 베드로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파도와 바람을 무서워하여 곧 물속에 빠져들고 맙니다.
이런 베드로에게 주님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여러분! 혹시 이것이 내 믿음의 삶의 모습은 아닙니까?
주님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고, 신앙생활에 대해서는 나는 너무나도 정확하게 주님을 알고 있다”고 자부하면서도, 가끔씩은 나의 능력을 의지하고, 나의 재주를 신뢰하다가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주인 주님을 잃어버리고, 나의 힘으로 나의 능력으로 살려고 할 때가 너무나도 많지 않는지 내 자신을 돌아봅시다.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직 주님만을 온전히 신뢰해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에서 우리가 얻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이 세상은 풍랑이 있는 곳이고, 위험한 곳임을 알아야 합니다.
제자들이 당한 갈릴리 바다의 풍랑, 이것은 그곳에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능히 일어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이 험한 풍랑과 요동치는 물결이 있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문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그 문제를 나의 힘으로 나의 노력으로는 도무지 해결 할 수가 없는 문제라는 것을 우리는 인식하여야 합니다.
둘째는, 이 험한 세상의 풍랑을 잠잠케 하고 고요하게 하실 분은 주님밖에 없다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배에 오르시니 그 바람이 잠잠하게 되는 것을 보고서 “진실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로다.”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창조자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 주님만이 이 세상의 모든 풍랑을 잠잠하게 하고 고요하게 하실 분임을 믿어야 합니다.
내 힘으로 내 의지로서는 안 됩니다.
요14:13-14절을 읽겠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이 약속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하늘보좌를 버리고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가 거할 처소를 예비하시기 위해 승천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그날까지 우리를 위해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를 향한 그 십자가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내 믿음을 평안하게 인도하시는 분은 오직 주님 한 분이심을 고백하고, 주 예수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분의 약속을 붙들고 전심을 다해 우리의 소원과 가정과 자녀 그리고 교회의 비전이 나의 비전이 되기를 위해 전심으로 기도합시다.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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